비행기만 타면 탈이 나요
어느덧 한 달이 흘러 돌아가는 날. 아들 집에서 밤 12시에 나와 페어뱅크스 공항에 도착했다. 새벽 2시 비행기를 타고 시애틀로 간다. 시애틀에서 6시간을 기다린 후 다시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페어뱅크스 공항은 텅텅 비었다. 승객들을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 천장에 비행기 모형 매단 거 말고는 사진 찍을 것도 없네. 그래도 여행자 모드를 끌어올려 알래스카 글자 앞에서 마지막 사진을 박았다.
입국장 안 면세점은 작디작았다. 둘러보다가 무지갯빛 반지 하나를 샀다(엣다 기념이다). 이제부터 시작될 긴 여정에 한숨이 나온다. 아들을 데리고 처음 여행을 시작했던 마흔 살. 그때는 비행기를 타는 게 얼마나 즐겁던지. 비행시간이 길면 길수록 더 신이 났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오십 후반. 작년에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 바르샤바로 가던 날. 프랑크푸르트에서 벌써 진이 다 빠졌다. 딱 쓰러지기 직전 상태였다. 이젠 장거리 비행이 너무나 힘들다. 어찌나 데었는지 이번 알래스카 방문은 생전 처음으로 비즈니스석을 끊었다. 훠얼씬 낫더라.
알래스카 항공을 타고 약 4시간 정도 걸려 시애틀에 착륙했다. 한 달 전에 와봤다고 시애틀 공항이 익숙했다. 밤새 자지 못했기에 쉴 수 있는 라운지를 찾았다. 아침밥도 먹어야 했다. 올해 6월에 새로 오픈한 델타 원 라운지. 기존의 델타 스카이 클럽보다 상급의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챗지피티가 알려 주었다.
오픈 시간이 8시라 그 앞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 파인 다이닝 수준이라니 꼭 들러야지. 내가 비즈니스 석을 탈 기회가 또 있을지 알 수 없고요.
8시 땡 치자마자 들어갔다. 오오. 역시. 내가 들어가자마자 한국인 직원이 전담 마크. 이건 거의 5성급 호텔의 서비스 같았다. 그는 친절하게 아침밥 메뉴를 설명하고는 그 외 원하는 게 있으면 바로 자기를 부르라고 했다.
커피도 완전 맛있어! 나는 그가 추천하는 메뉴를 맛보고 칵테일도 한 잔 마셨다. 어차피 비행기에서 잠을 못 자는 체질이라 커피도 술도 오케이다.
한가했던 라운지가 점점 붐빈다. 손님들이 꽉 들어찼다. 아까의 파인 다이닝 분위기는 온데간데없다. 역시 일찍 오길 잘했군.
몇 시간을 잘 쉬고 대한항공 비행기에 올랐다. 또 위와 장이 말썽이다. 비즈니스 기내식을 조금씩 맛만 보았는데도 속이 부글부글 난리가 났다. 비상약을 먹고 비장의 무기 핫팩을 윗배 아랫배 옮겨가며 자가 치료를 했다. 11시간의 비행 끝에 드디어 인천 공항 도착.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한 달 알래스카 생활 동안 얻은 건 손녀를 향한 무한한 사랑이요, 잃은 건 어깨와 허리 건강이로다. 일주일은 집에서 꼼짝 않고 쉬었다. 지금은 열심히 침을 맞으러 한의원에 다닌다. 내년에 두 달을 있으려면 무엇보다 체력을 길러야 한다.
아들아, 비즈니스석은 사준다고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