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빈집을 문화공간으로 꾸민 이유

빈집은 고쳐서 뭐 할라구?

by 내우주

꿈에 그리던 시골 빈집을 구해 고향에 터를 잡았습니다.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본채와 창고가 마주 보고 있는 구조였습니다. 충청도 말로 창고를 '광'이라고 합니다. 농기계를 보관하던 허름한 광은 오랜 세월 방치되어 을씨년스러웠습니다. 지붕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쥐 소리는 공간의 적막함을 더욱 강조했습니다.


텅 빈 창고를 보며 그곳에 앉아 있을 관객들의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내벽을 허물고 커다란 통창을 내면 공간이 훨씬 밝아질 것 같았어요. 삽교 평야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마당극. 예산에서만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순수 로컬 창작극을 이곳에서 만들어보고 싶다는 도전의식이 생겼습니다. 오래된 농기계 창고가 창작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시골집에서의 공연은 어떤 모습일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심정으로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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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감나무집(창고 수리 전과 후)



“창고는 고쳐서 뭐 할라구? 그냥 부수고 새로 짓지 그려.”


다 무너져가는 창고를 뜯어고치는 저를 보고 동네 어르신들이 지나가며 한 마디씩 거들었습니다. 뭐 하러 공연히 돈 들여서 창고를 고치느냐는 거였습니다. 차라리 깔끔하게 철거하고 컨테이너박스를 갖다 놓는 것이 어떠냐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저는 호기심 가득한 주민 어르신들에게, 이곳에서 마을 이야기를 담은 창작극을 만들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창고는 관객석이 되고, ‘ㅁ’자형 안마당은 배우들의 무대가 될 것입니다. 기껏해야 30여 명 앉으면 꽉 찰 공간이지만, 무대와 객석의 거리를 최대한 좁혀 고향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지역 고유의 콘텐츠를 발굴하고, 고향의 정서를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특색 있는 공연장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그리는 로컬 콘텐츠의 본질은 ‘진짜 로컬’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연극을 보러 오는 관객들은 마을회관에 차를 대고 걸어서 공연장까지 오게 됩니다. 창고와 안마당이 공연장이 되지만, 연극을 보기 위해 마을길을 걸어오는 과정 자체가 로컬 콘텐츠이고, 고향 경험의 일부가 되는 것이죠.


제가 살고 있는 예산군 봉산면의 올해(2025년 1~7월) 출생아수는 고작 1명에 불과합니다.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 마을에서 제가 가장 어린 주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우리 지역은 고령화와 함께 오랜 침체를 겪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문화소외지역인 봉산면에서 시골 빈집을 개조해 문화공간을 꾸미겠다는 저의 계획이 무모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진짜 로컬의 이야기를 가장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공간적 배경이 바로 이곳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마치 고향 할머니댁에 온 듯한 푸근함을 느낄 수 있는 오래된 시골집. 점점 희미해져 가는 ‘고향’이라는 의미를 이곳에서 되살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예산 지역 고유의 이야기를 담은 순수로컬창작극 <어떻게 온겨?>가 시골 빈집에서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방문객들에게는 잊혀 가는 고향의 정서적 기능을 경험케 하고, 지역 주민들에게는 문화적 자긍심을 선사하는 따뜻한 이야기. 로컬 콘텐츠의 허브이자, 이들을 연결하는 입체적인 고향경험플랫폼. 스튜디오 감나무집은 그렇게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스튜디오 감나무집 조성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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