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못 갚으면 어떻게 되나요 | 소주전쟁

모든 영화에는 부동산이 있다

by 오성범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1997년 한국이 국가부도 위기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면, 영화 <소주전쟁>은 구제금융으로 겨우 국가부도에서 벗어난 이후 한국 기업들이 부채를 상환하기위해 구조조정하는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영화의 주인공 격인 "국보그룹"은 당시 '진로그룹'이며 국보그룹의 인수 및 구조조정을 시도하는 글로벌 투자회사 "솔퀸"은 '골드만삭스'입니다.


당시 진로그룹은 현재 '하이트진로'가 되었죠. 다들 아시는 것처럼, '하이트'는 맥주, '진로'는 소주입니다. 그런데 2005년 맥주기업인 하이트가 소주기업 진로를 인수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진로그룹은 한보, 삼미, 해태, 기아와 같이 1997년 경제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매각된 기업입니다.


사실 진로는 소주만 만드는 기업은 아니었습니다. 1988년 이래 탈소주 정책을 펼치면서 맥주, 양주시장에도 진출했는데, 이때 출시한 맥주가 바로 '카스(Cass)'입니다. 진로그룹의 'Cass'는 오비맥주의 'OB'와 경쟁관계였지만, 카스 맥주 역시 1999년 경쟁사인 오비맥주에 인수되었니다. 즉 진로그룹은 1997년 경제위기 이후, 맥주사업을 먼저 매각하고(1999년) 결국 핵심 사업인 소주사업까지 매각하게 된 것이죠(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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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그룹은 1924년 설립되어 희석식 소주를 만들며 인기를 얻었는데 1960~80년대에는 소주시장에서 압도적 점유율을 차지하며 '국민소주'라고 불렸습니다. 1970년대 한때 '자도주 의무 구입제'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소주를 팔 때 자기 지역에서 생산된 소주를 우선적으로 팔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전라도는 '잎새주', 경상도는 '참소주·좋은데이', 충청도는 '이제우린', 강원도는 '처음처럼', 제주도는 '한라산'이라는 공식은 이때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가장 인구가 많은 서울·수도권의 지역 소주가 바로 진로그룹의 '진로'(現 참이슬)였습니다. 진로그룹 입장에서는 상당한 호재였죠.


그런데 1980년대 들어 자도주 의무 구입제가 폐지됩니다. 소주시장의 자율경쟁을 제한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진로그룹 입장에서는 일종의 독점적 지위를 잃게 된 셈이니 '국민소주'의 자리가 불안하게 느껴졌으리라 생각합니다. 더구나 1980년대는 한국 경제가 전례없는 호황을 누리던 시기였습니다. 진로는 1988년 정학영 회장 체제에서 '탈소주'를 선언하고, 건설·중공업·유통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합니다. 주류사업에서도 소주 외에 맥주, 양주로 사업을 확장하게 되고요.


사업을 확장한다는 건 하나의 기업을 새로 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시설부터 인력에 이르기까지 많은 자금이 필요했을 것이고, 손익분기점을 넘길 때까지 상당 기간의 이자비용과 영업손실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진로그룹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1997년의 국가적 경제위기와 부채상환 압박이었죠. 한국이 국가부도를 막기 위해 IMF의 구제금융을 선택했듯이, 진로그룹 역시 기업부도를 막기 위해 우선 화의신청을 합니다. 화의는 법원의 중재 하에 채권자가 채무 상환기간을 일시적으로 조정해주는 제도이고요.


골드만삭스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진로그룹의 채권을 사모으기 시작합니다. 진로그룹에 돈을 빌려준 채권자 입장에서는 진로가 부도라도 선언하면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니, 화의 상태인 지금이라도 골드만삭스에 채권을 넘기는 대신 원금 일부라도 회수할 수 있다면 손실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렇게 원 채권자들로부터 진로그룹의 채권을 인수한 골드만삭스는 진로그룹의 최대 채권자가 됩니다. 즉 진로그룹이 채무를 상환해야 할 대상은 골드만삭스가 된 것이죠.


화의는 어디까지나 채권자-채무자의 협의에 해당합니다. 약속된 이자와 원금을 받지 못한 채권자는 협의를 끝내고 강제 절차인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 있죠. 법정관리가 받아들여지면 채무자인 기업은 채권자의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아껴쓰고(정리해고) 내다팔며(구조조정) 채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업의 기존 경영진이 제살을 깎아내지 못하면 경영권마저 뺏기게 되고요. 진로그룹은 그렇게 경영권을 잃었고, 결국 맥주사업은 경쟁사인 오비맥주에 소주사업은 하이트에 매각되고 말았습니다.




<소주전쟁>

2025


1997년 IMF 외환위기, 국내 소주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인 국보소주가 자금난에 흔들린다.

글로벌 투자사 솔퀸의 인범(이제훈)은 기업부도를 막을 수 있는 금융 컨설팅을 명목으로 국보그룹 재무이사 종록(유해진)에게 접근한다.

한평생 몸바친 회사를 지키려는 종록과 그 회사를 삼키려는 목표를 숨기고 종록에게 접근한 인범. 서로 다른 목적의 두 사람은 소주 하나로 점차 가까워지는데..


"소주는 대한민국 술의 자존심입니다. 대한민국 소주가 망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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