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영화에는 부동산이 있다
영화 <빅쇼트>는 <마진 콜>, <라스트 홈>과 함께 2008년 발생했던 미국의 금융위기를 돌아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당시 사건을 '서브프라임모기지'라고 부르는데, 'Sub-prime Mortgage'는 소득이나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말합니다. 미국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대출을 받는 사람이 이자나 원금을 잘 갚을 수 있는지 소득을 따집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 받는 사람의 소득이 높을수록 부실위험이 없는 안전한 대출이 되는데, 당시 미국에서는 소득의 높고낮음을 가리지 않고 대출을 해주었다가 금리(이자)가 올라갈 때 대규모 부실이 발생한 사건입니다.
<빅쇼트>는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 <마진 콜>은 금융위기 직전가 발생한 '직후', <라스트 홈>은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후를 다루고 있습니다. <빅 쇼트>는 일종의 프리퀄인 셈이죠. "1970년대까지 은행은 굉장히 따분한 곳이었다."로 시작하는 첫 장면이 굉장히 인상깊었는데, 당시 도입된 '주택저당증권'이 은행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택저당증권(MBS, Mortgage Backed Securities)은 은행이 보유한 주택담보대출 채권을 사고팔 수 있도록 만든 제도입니다.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면 매월 이자를 납입하고 나중에는 원금도 상환해야 하잖아요. 은행이 돈을 빌려준 채권자로서 이자와 원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있게 한 것이죠.
이 제도가 '따분했던' 은행을 '신나는' 은행으로 바꿔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제도 덕분에 은행은 주택담보대출이라는 상품을 더 많이 팔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팔 수 있는 주택담보대출의 양이 정해져 있었어요. 모든 은행은 대출총액이 예금총액의 일정 수준을 넘어가지 못하도록 규제를 받습니다. 예를 들어 은행 금고에 100억의 예금이 있다면, 대출은 예금의 10배인 1,000억까지만 할 수 있죠. 그럼 1,000억의 한도 내에서만 대출을 할 수 있으니, 10억씩 100명에게 대출을 해주고나면 더 이상 팔 수 있는 상품이 없는 것이죠. 안정적으로 이자와 원금을 받을 수는 있었지만 벌 수 있는 돈의 양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택저당증권이 도입되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100명에게 해준 주택담보대출 채권을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있게 되었으니, 다시 100명에게 대출을 해줄 수 있게 된 것이죠. 할 수만 있다면 무한정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팔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출을 하는 만큼 돈을 벌 수 있으니 은행간 대출 경쟁도 치열해집니다. 이전까지는 대출심사를 통해서 소득이 높은 사람들에게만 담보대출을 했지만(Prime Mortage), 이제 소득이 낮은 사람들에게도 담보대출을 해줍니다(Sub-prime Mortgage). 그리고 언제 이자를 연체할지 모르는 위험한 담보대출채권은 은행의 손을 떠나 다른 사람에게 팔려나가고요.
저런 걸 누가 사나 싶지만
이런 주택저당증권을 누가 샀을까요? 바로 전문 투자자들입니다. 손실을 감수하고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투자은행이나 사모펀드는 그렇다 쳐도, 고객의 예금, 보험금, 연금을 지켜야 하는 상업은행, 보험사, 연기금 등도 주택저당증권을 매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에서도 대거 동참했고요. 당시에는 미국 주택시장에 대한 낙관론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고위험 고수익의 투자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이자가 연체되거나 부실이 발생할 거라는 의심은 미처 하지 못했을 겁니다.
주택저당증권에 대해 세계적인 투자 붐이 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파생상품과 신용평가였습니다. 파생상품은 말 그대로 원래 상품인 주택저당증권을 가공한 상품입니다. 주택저당증권을 '백반', 파생상품을 '비빔밥'이라고 생각하시면 간단합니다. 주택저당증권은 반찬이 제각각 그릇에 담겨 있는 백반입니다. 반찬을 하나하나 먹으며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파생상품은 모든 반찬이 한 그릇에 섞여 있는 비빔밥입니다. 절대미각이 아닌 한 반찬 하나하나의 맛을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1980년대 개발된 CMO, CDO 같은 파생상품에는 언제 연체될지 모르는 주택저당증권이 여기저기 섞여 있었지만, 마치 비빔밥에서 버섯과 고기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처럼 투자자들도 이를 제대로 구별할 수 없었던 것이죠.
여기에 더해 신용평가회사들도 투자자들의 눈을 흐리게 했습니다. 신용평가는 채권, 주택저당증권 같은 금융 상품에 대해 제3자 관점에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신용등급(위험도)을 표시해 투자자들이 제대로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들도 결국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으로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이 섞인 파생상품에도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해줍니다. 소득이 낮은 사람에게도 주택담보대출을 팔았던 대출모집인 → 위험한 주택담보대출도 주택저당증권으로 팔았던 은행 → 위험한 주택저당증권을 우량한 파생상품으로 포장해 준 신용평가회사까지, 마치 공장에서 불량 제품을 생산하는 전 과정을 지켜보는 듯 합니다.
2008년 주택저당증권에 투자했던 미국 투자은행 2곳(리먼 브라더스, 베어 스턴스)이 파산했고, 영국과 독일에서도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막대한 손실을 입은 투자기업은 헐값에 매각되거나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았습니다. 당시 미국 정부가 집행한 구제금융 규모는 7,000억 달러(약 1,000조)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결국 미국 시민들이 주택가격 폭락, 주가 폭락, 구제금융까지 모두 떠앉아야 했던 것이죠.
<빅쇼트> | The Big Short
아담 맥케이 감독, 2016
2000년대 중반, 미국 주택시장은 호황이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집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고 믿는 상황에서, 보수적 투자자인 마이클 버리(크리스찬 베일)와 펀드매니저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은 비우량 주택담보대출과 이에 기반한 주택저당증권에 부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신용부도스와프(CDS)에 투자한다.
2008년 이들의 예측은 현실이 된다. 대규모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주택시장이 무너지는데...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