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빌라왕 vs 미국 빌라왕 | 라스트 홈

모든 영화에는 부동산이 있다

by 오성범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샀는데 제때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가장 쉽게 떠올리시는 것이 경매일 겁니다. 맞습니다. 경매에는 '임의경매'와 '강제경매' 두 가지가 있는데, 주택담보대출 관련한 경매는 임의경매입니다. 임의경매는 등기부에 설정된 근저당권에 따라 권리자가 신청만 하면 바로 이루어지는 경매를 말하고, 강제경매는 개인적인 금전 관계가 있거나 세금을 체납한 경우 권리자가 신청을 하고 법원이 받아들여야 경매가 이루어집니다.


미국의 제도도 비슷합니다. 한국의 강제경매처럼 은행이 법원에 신청하면 법원명령으로 경매를 하는 경우도 있고, 임의경매처럼 법원을 거치지 않고 경매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도 한국처럼 별도의 사법절차가 필요한 강제경매보다 임의경매가 일반적이고요. 다만 차이점이 있습니다. 한국의 임의경매는 등기부상 근저당권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미국의 임의경매는 근저당권이 아닌 신탁권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즉 한국에서 국가기관인 등기소가 하는 일을 미국에서는 민간기관인 신탁사가 하고 있는 것이죠.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은 근저당권 설정 대신 신탁권에 의한 대출이 다수를 차지합니다. 신탁권에 의한 대출은 은행이 법원의 명령 없이도 임의로 경매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절차도 간편하고 비용도 적게 들지만, 정부가 등기사항에 대한 보증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민간기업에서 이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내용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추적과 입증은 모두 당사자의 몫이 되고요. 한국 사람들이 받아들이기는 조금 어려운 제도입니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로 주택시장이 폭락하면서 주택 경매가 큰 폭으로 늘어났는데, 대부분 국가기관인 법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매가 아닌 민간기업인 신탁사에 의해 이루어지는 공매였습니다. 책임있는 국가기관의 개입이 없다보니, 민간기업의 실수로 대출금을 연체하지 않은 집이 경매에 잘못 부쳐지는 일도 여러 건 발생하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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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빌라왕 vs 미국 빌라왕


영화에서 릭 카버(배우: 마이클 섀넌)는 이런 상황에서 공매에 나온 집을 싸게 매입한 후 기존 거주자를 퇴거시키고 다시 되팔아 차익을 남기는 투자자입니다. 미국은 공매를 통해 소유권이 이전되면 현재 거주하고 있는 거주자에게 일정 기간 내에 퇴거할 것을 통지한 후 거주자가 퇴거하지 않으면 경찰을 대동하여 강제 퇴거 시킵니다. 법원의 인도명령을 받아 법원 집행관이 집행하는 한국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경찰을 대동한 강제 퇴거에 의해 기존 거주자들은 상황이나 사정에 상관없이 집에서 쫓겨났고, 의탁할 곳이 없는 이들은 근처 모텔이나 거리로 내몰리게 됩니다. 릭 카버는 이렇게 집을 확보한 뒤, 집을 보수한다는 명목으로 정부 보조금까지 받은 후 이를 다시 매각합니다. 주택시장 붕괴 이후 미국 정부는 저소득층의 주거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주택 리모델링 비용을 보조금 형태로 지원했는데, 기존 거주자들이 퇴거한 집에서 떼어낸 설비를 대신 설치하는 방식으로 보조금까지 횡령한 것이죠.


수백 채의 집을 가진 릭 카버는 마치 한국의 '빌라왕'을 떠올리게 합니다. 막대한 레버리지를 활용해 시세차익을 노렸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차이점이 있습니다. 우선 한국 빌라왕은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을 이용했지만, 미국 빌라왕은 은행의 대출을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빌라왕은 주택가격이 상승하는 시기에 나타났지만, 미국 빌라왕은 주택가격이 하락하는 시기에 나타났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빌라왕은 주택가격이 더 이상 오르지 않자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고 파산했지만, 미국 빌라왕은 주택이 팔리지 않자 은행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파산합니다.


미국은 한국과 비교했을 때 소득 대비 주택가격은 낮고 자가보유율은 높은 나라입니다. 미국에서 주택 문제는 초당파적인 문제라고 합니다. 국민들의 주택 소유를 늘려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따로 없습니다. 2000년대 공화당 출신인 부시 대통령이 저소득층의 주택 구입을 지원하는 정책을 발표했을 때도 정당을 떠나 모든 국회의원이 이를 지지했고요. 그 결과 미국의 자가보유율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고 한국보다도 5%p 가량 높습니다.


문제는 주택가격이 낮고 자가보유율이 높을수록, 주택이라는 상품의 수요와 가격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또한 저소득 지역일수록 고소득 지역에 비해 주택가격의 변동성도 더 클테니까요. 저소득 지역에서 주택가격이 하락하는 경우라면 주택 소유는 주거 안정이 아닌 경제적 손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미국 빌라왕의 최후는 어떻게 될까요?



<라스트 홈> | 99 Homes

라민 바흐러니 감독, 2016


공사장 일용직 노동자인 데니스 내쉬(앤드류 가필드)는 주택담보대출 연체로 단 몇 분만에 홈리스로 전락합니다. 그리고 데니스 가족을 퇴거시키기 위해 찾아온 부동산 투자자 릭 카버(마이클 섀넌)를 만나게 됩니다.

데니스는 결국 집에서 쫓겨나고, 생계가 막막해진 그는 릭에게 일자리를 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릭으로부터 주택시장에 쏟아지는 경매 매물을 활용해 돈을 버는 방법을 배웁니다. 빼앗긴 집을 되찾기 위해서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내쫓아야 하는데...


"미국은 패자를 구제하지 않아. 미국은 승자를 위한 나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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