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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범 Oct 17. 2021

혁신이라는 마타도어

어느 감정평가사의 변명

싸움을 붙이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

4차 산업혁명과 기술의 시대에, 우리는 어느 때보다 '혁신'이라는 수식어와 친숙하다. 혁신이라는 수식어를 선점한 사람들은 반대편에 '기득권'이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혁신은 좋고 기득권은 나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이분법의 세계는 갈등을 만들고 소비하기에도 용이하다. '규제가 새로운 산업의 성장을 저해한다'는 수준을 훌쩍 넘어서 아예 '혁신을 가로막는다'고 선언하기도 한다. 기존 산업은 순식간에 고루한 것이 되어 버린다. 해당 산업과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은 싸움 구경을 즐긴다. 여론은 대체로 기존 산업의 주체들에게 불리하다. 싸움 구경이 재밌으려면 체급이 서로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타다는 무엇을 혁신한 걸까

혁신을 자처하는 이들이 말하는 규제는 산업의 진입장벽으로, 면허나 자격이 대표적이다. 자격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자격을 취득한 사람에게는 업을 영위할 수 있는 독점권이면서, 자격을 부여한 사람에게는 통제의 수단이다. 산업 갈등의 대명사로 소비되고 있는 '타다'의 경우도 단순히 택시산업과 갈등했다는 수준으로만 인식되고 있지만, 2018년 당시 타다는 택시(여객자동차운송사업자)가 아닌 렌터카(자동차대여사업자)로 등록되어 있었다.  렌터카로 등록된 타다가 차량을 대여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택시의 영역인 서비스까지 제공했기 때문에 시작된 문제였다. 과연 타다는, 별도의 등록절차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편리하게 타다 서비스를 이용했던 사람들은, 타다가 무등록 운송사업자라는 사실을 알았을까.


타다의 승합차 렌트 서비스 '타다 베이직' @한국경제


여객운수법은 렌터카의 유상운송을 금지하고 있다. 법은 버스, 택시 같은 대중교통 수요에 맞춰 공급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균형을 맞추고 있는데, 쉽게 말해 국민들이 버스나 택시를 너무 기다리거나 이용에 불편하지 않도록 공급자들을 통제하는 것이다. 그 시작은 면허와 등록이지만, 수급계획, 요금정책, 영상기록, 서비스품질, 교육준수에 이르는 총 20개 조항에 달하는 관리 규정이 뒤따른다. 렌터카의 유상운송을 금지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타다가 승용차 대신 승합차 서비스를 제공한 것은, 이런 유상운송 금지조항의 예외규정을 활용한 것이었다. 외국인, 장애인, 노인 고객을 위해 렌터카도 예외적으로 운전자 알선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장기 법인렌트와 승합차 렌트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법률 전문가는 아니지만, 법률의 허점을 활용한 것이 불법이나 처벌의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입법 취지에 맞지 않다면 정당한 법률 개정을 통해서 통제하는 것도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2018년 당시 등록 택시는 25만 대, 타다 베이직으로 추가 공급된 승합차가 약 1만 대였다. 기존의 운송사업자 면허와 등록을 통해서도 충분히 제공할 수 있었던 서비스를 혁신적인 신산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중교통 수급계획에 따른 공급 조절책이 낡은 규제가 되고, 20개 넘는 관리 규정을 준수했던 택시 사업자들이 하루아침에 기득권이 되는 건 왜일까. 택시기사가 불친절해서, 피곤한데 자꾸 말을 걸어서 그런 걸까.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내 아버지가 택시운전수이기 때문일까.

@포토뉴스

눈떠보니 기득권

2020년 한국감정평가사협회는 '빅밸류'라는 기업을 고발했다. 당시 빅밸류는 시중은행에 연립·다세대주택에 대한 추정시세를 제공하고 있었는데, 협회는 이를 감정평가사가 아닌 자에 의한 유사감정평가행위로 판단했다는 것. 개인적으로 무척 유감이었다. "제2의 타다 사태", "신산업 갈등", "혁신금융 제동".. 눈떠보니 기득권이 되어 있더라.


물론 빅밸류는 감정평가업을 영위하는 감정평가법인이 아니다. 빅밸류는 부동산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2019년 금융위원회의 혁신금융서비스에 지정되면서 금융기관에 아파트, 연립, 다세대주택에 대한 정보 서비스를 제공했을 뿐이다. 협회에서는 유사 감정평가행위라고 했지만, 빅밸류는 감정평가서를 발행한 적도 없고, 종종 유사 감정평가서로 활용되던 시세 확인서를 발급한 적도 없다. 설사 시세 확인서를 발급했다 하더라도, 공적 증거력을 사칭하지 않는 한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 혁신금융서비스를 시험하고 있는 금융위원회의 잘못일까, 빅밸류의 추정시세로 대출을 시행한 은행의 잘못일까. 잘못도 아닐 뿐더러, 협회가 문제를 제기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다. 주택담보대출에 있어 반드시 감정평가액을 기준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금융감독원의 「은행업감독업무시행세칙」은 담보대출의 기준이 되는 가치에 대해서 외부의 공신력있는 평가결과를 사용하도록 규정하면서 ①국세청의 기준시가 ②감정평가사의 감정평가액 ③KB국민은행의 부동산시세를 나열하고 있을 뿐이며, 그나마 아파트 외에는 3가지 방법을 참고하여 자체적으로 기준을 정하도록 했다. 은행이 선택할 사안이자, 금융감독원의 정책 사안이라는 것이다.


한국감정평가사협회와 빅밸류의 갈등을 보도하는 기사들


가치평가는 감정평가사의 전유물이 아니다

부동산 가치평가는 부동산 시장 참여자의 몫이다. 직접 하든 용역을 맡기든, 각자의 사정에 맞게 다양한 수준의 가치평가가 있을 수 있다. 가치평가가 감정평가사의 전유물인 것도 아니다. 이미 부동산 PF 금융에서도 신용평가회사, 회계법인이 참여해 다양한 가치평가를 수행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정답이 존재할 수 없는 가치평가의 특성상, 수행주체의 공신력, 의뢰인을 보호할 수 있는 공적인 신용이 강조된다. 감정평가사제도는 감정평가결과를 통제하기 위한 여러 규정을 두고 있다. 총 43개 조항으로 구성된 법의 절반 이상이 자격, 의무, 징계, 과징금, 벌칙 등에 관한 내용이다. 감정평가 시 실지조사의 의무, 작성한 감정평가서에 대한 서명과 날인 의무가 부여된다. 규모나 실적을 갖추지 못하면 업무 수임에 제한이 있을 수 있으며, 원칙과 기준을 위반한 감정평가에는 징계가 따른다. 감정평가결과가 잘못되어 의뢰인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 호가나 탐문조사 수준의 주관적 정보로 감정평가액을 결정할 수 없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의뢰인에게 책임을 미룰 수 없다. 한 권의 감정평가서는 이런 통제절차를 거쳐 생산된다.


이러한 공신력을 제공하는 것은 공급자이지만, 공신력을 요구하는 것은 결국 의뢰인이다. 의뢰인이 요구하는 수준에 따라, 빠른 시간에 저렴하게 제공되는 가치평가 서비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실지조사, 탐문조사, 심사과정을 생략했으니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개별 데이터에 대한 검증을 알고리즘으로 대체했으니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분석결과에 대한 공신력은 서비스 당사자가 상호 합의로 결정하면 된다. 이런 수준의 가치평가가 금융기관의 담보대출같은 공공의 영역에 활용될 정도의 공신력을 갖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시장참여자의 선택이 다양해 질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환영할 일이다.


필자가 개발한 시세추정 서비스, 랜드바이저(Landvisor)


자동평가모형은 앞으로 가치평가 시장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겠지만, 혁신산업이라기 보다 틈새시장에 가깝다. 가치평가의 활용범위는 공신력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혁신을 경쟁을 위한 마타도어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혁신은 산업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을 때, 수단의 개선은 본질적 가치가 지켜질 때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끝>


※ 용어 해설

- PF 금융 : Project Financing, 프로젝트 파이낸싱. 부동산 개발사업에서 사업성에 기초해 건축비 등을 대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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