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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범 Oct 09. 2021

한국에만 있는 이상한 감정평가방법

어느 감정평가사의 변명

한국에만 있는 이상한 감정평가방법

몇 년 전에 싱가포르 대학의 부동산학과 교수님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한국의 감정평가제도에 대해 궁금하다며 이런저런 질문을 했는데, 특히 공시지가기준법을 몹시 흥미로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시지가기준법은 오직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평가방법이기 때문이다. 공시지가기준법은 토지를 평가할 때 사용하는데, 해당 토지 인근에 있는 표준지공시지가(공시가격)를 기준으로 우열을 비교해 토지가치를 산정하는 방법이다. 한국처럼 공시제도를 시행하며 부동산 가격을 정기적으로 공시하는 국가들은 많이 있지만, 감정평가를 할 때 공시가격을 활용한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만, 토지를 감정평가 할 때는 공시지가기준법을 우선적으로 사용하도록, 심지어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외국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 사실을 알면 한국 사람들부터 어리둥절 할 수 있다. 토지를 매매한다면 주변에서 유사한 토지의 거래가격을 참고하면 될 일이지,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토지를 매매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게다가 현재 공시지가는 시세의 60~80% 수준이니,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감정평가했다고 하면 그 결과도 시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수 밖에. 실제로 공익사업지구에 토지가 편입되어 보상 감정평가를 받거나, 재개발사업에 토지를 출자해 종전자산 감정평가를 받는 소유자들이 공시지가기준법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일요신문, 뉴시스


그래서 였을까. 2016년, 토지의 감정평가방법을 규정하고 있는 감정평가사법 제3조 "감정평가법인등이 토지를 감정평가하는 경우에는 그 토지와 이용가치가 비슷하다고 인정되는 표준지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하여야 한다." 규정에 단서조항이 추가되었다. "다만, 적정한 실거래가가 있는 경우에는 이를 기준으로 할 수 있다."


물론 오해는 있다

표준지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토지를 평가한다고 해서, 공시가격 수준으로 감정평가액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공시가격과 시세와의 격차를 보정하기 위해 몇 가지 보완장치를 사용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그 밖의 요인'과 '거래사례비교법'이다. 그 밖의 요인 보정치는 공시가격 현실화율의 역수라고 생각하면 간단한데, 현실화율이 70%라면 그 밖의 요인 보정치는 1.43(= 1 / 70%)가 된다. 반대로 그 밖의 요인이 2.0 이상이라면, 그 지역 공시지가의 현실화율은 50%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 밖의 요인은 공시지가기준법 산식의 마지막 항목으로, [표준지공시지가 × 시점수정 × 지역요인 × 개별요인 × 그 밖의 요인]으로 결정된다. 그러니 공시지가기준법을 사용했다고 시세보다 낮다고 오해하실 필요는 없다.


또 한 가지는 거래사례비교법이다. 시장에서 실제 거래가 이루어진 거래가격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방법이고, 산식은 [거래사례 × 시점수정 × 지역요인 × 개별요인]이다. 앞의 산식과 비교해보면, [거래사례 = 표준지공시지가 × 그 밖의 요인]이 된다. 감정평가액은 공시지가기준법에 의한 가격과 거래사례비교법에 의한 가격이 서로 유사한 경우에만 결정할 수 있다. 


감정평가서의 공시지가기준법 산식


왜 한국은 공시지가기준법을 고집하는 걸까

정부는 공시제도를 운영하기 위해서 연간 1,000억 원 가량을 사용한다. 국토교통부 전체 예산의 0.4% 수준이다. 이렇게 나온 결과물은 재산세 부과를 비롯해서 60여 개의 행정목적에 사용된다는데, 부동산 평가 역시 60개의 목적 중 하나가 된다. 정부도 하나의 경제주체로서 예산을 집행할 때 소위 '가성비'를 따질 수 밖에 없는데, 공시가격이 다양하게 활용될수록 가성비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표준지공시지가의 정보가치가 전제되어야 가능한 얘기지만.

공시가격 활용 현황 @국토교통부


부동산 정보의 관점에서, 시장의 실거래가격과 정부의 표준지공시지가를 비교해보자. 양적으로는 실거래가격이 압도적으로 많다. 연간 350만 건의 실거래가격 중에서,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 거래가격 130만 건을 제외하면 220만 건 정도의 정보가 생산된다. 반면 표준지공시지가는 50만 필지이니 실거래가격의 1/4에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단순 합계 대신 세부 항목으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부동산 거래가 집중된 수도권이나 도시지역에는 여전히 실거래가격 정보가 많지만, 비수도권이나 비도시지역에서는 표준지공시지가의 정보량이 많다. 실제 비교해보면, 전국 시군구의 20%에 해당하는 45개 시군구에서는 토지 거래량보다 표준지 필지수가 더 많았다. 행정구역에서 더 좁혀 특정 지역의 분포까지 고려하면 편차는 더 심해지는데, 표준지공시지가는 해당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인위적으로 표집한 샘플이니 고르게 분포할 수 밖에 없지만, 실거래가격 정보는 어디에 어떻게 찍힐지 알 수가 없다.


내용적 차이도 있다. 실거래가격은 거래당사자 2인의 합의로 결정하고, 표준지공시지가는 감정평가사 2인의 평가로 결정된다. 거래가격은 당사자의 합의 외에는 어떤 것도 공개하거나 입증, 설명되지 않지만, 표준지공시지가는 이해관계가 배제된 제3자의 판단으로 공개되고 입증, 설명해야 하는 정보이다. 탈세를 목적으로 하는 이해관계인의 고의적 위법행위만 아니라면, 저가로 사든 고가로 사든 거래당사자의 마음에 달려 있다. 나란히 붙어 있는 토지가 서로 다른 가격에 거래되는 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모두 표준지공시지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시민단체에서는 대기업의 사옥이나 자택의 공시지가가 낮다며 특혜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는데, 공시업무의 특성상 특정 필지의 가격만 인위적으로 올리거나 낮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해당 지역 전체를 올리거나 낮춘다면 모를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공시지가기준법

공시지가기준법은 감정평가사의 주관이나 재량을 통제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거래사례비교법은 어떤 거래사례를 선정했는지에 따라 산정가격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공시지가기준법은 표준지 선정에 주관이 개입되기 어렵다. 표준지는 분포밀도를 고려해서 고르게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표준지 선정 기준을 적용하면 정답처럼 한 개의 표준지만 남거나, 두 개의 표준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정도가 된다. 고의, 과실을 떠나 표준지 선정을 잘못한 경우에는 감정평가사법에 따라 행정처분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비교표준지 선정에 있어 감정평가사의 주관이 개입되기 어려운 구조이다. 표준지와 대상의 우열도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공시지가기준법에서 감정평가사의 재량은 우열의 항목과 내용을 파악해 이를 계량화 하는 수준으로 축소된다.


표준지공시지가와 실거래가격


한국감정평가사협회에서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몽골 등 아세안 지역의 국가들의 감정평가사나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교류하면서 한국의 공시제도나 감정평가방법을 알리고 있다. 공시지가기준법이 한국에만 있는 감정평가방법으로 남을지, 한국에서 개발된 감정평가방법이 될지 문득 궁금해진다. <끝>


※ 참고문헌

1. <예산서 각목명세서> (국토교통부, 2021년)

2. <부동산 가격공시에 관한 연차보고서> (국토교통부, 2020년)

3. <부동산 거래현황 통계> (한국부동산원,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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