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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범 Sep 29. 2021

뛰는 공시가격, 나는 시세

어느 감정평가사의 변명

가격을 낮춰달라는 민원도 있더라

감정평가 관련 민원은 '시세보다 낮다, 높여달라'는 것이 대부분인데, 오히려 '시세보다 높다, 낮춰달라'는 민원도 있으니 대표적인 경우가 공시가격이다. 공시가격은 매년 4~5월경 공시하면서 그 전후로 의견청취와 이의신청 절차를 두고 있어 많은 민원 전화를 받게 되는데, 정말 민원이 집중되는 시기는 실제 재산세가 부과되는 7월이다. 토지 가격을 담당하는 토지과 공무원과 감정평가사들의 사정은 조금 낫지만, 주택 가격을 담당하는 세무과 공무원들과 한국부동산원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한다.


정부나 한국은행이 물가상승률 통계를 발표했다고 국민들이 민원을 제기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어떻게 보면 부동산 공시가격 역시 '공시(Government announce)'라는 뜻 그대로, 정부가 조사 발표한 부동산 가격자료일 뿐인데, 행정 목적의 조사발표가 민원의 중심이 되었다. 세금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공시가격을 열람할 수 있는 '공시가격 알리미' 사이트


공시가격이 시세보다 낮은 이유

우리나라가 '공시지가'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1989년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지가에 대한 조사체계가 있긴 했지만, 정부 부처별로 각자의 목적에 따라 제각각 산정하고 있던 것을 하나로 통합하고, 지가 조사에 대한 실무권한도 국토교통부가 갖게 된다. 건설부(현 국토교통부)의 기준지가, 내무부(행정안전부)의 과세시가표준액, 재무부(기획재정부)의 감정시가를 이어 받은 공시지가는 출범 당시 시세의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고, 이러한 수준은 2000년대에도 계속 되었다. 모든 세금은 [과세표준 X 세율]에 의해 결정되는데, 과세표준인 공시지가가 시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니, 당연히 실효세율(=세금 ÷ 시세)이 낮을 밖에 없었다.


공시지가의 시세 반영률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것은 2005년인데, 토지와 별개로 주택의 공시가격을 결정하면서부터이다. 근거 법령의 명칭도 '지가 공시'에서 '부동산 가격 공시'로 변경되었고, 토지에 국한되었던 '공시지가'라는 용어도 '공시가격'으로 확장된다. 과거에는 토지와 건물가격을 각각 산정해 합산했지만, 이제부터 토지와 건물을 한 번에 산정하게 된다. 제도의 시행 첫 해에만 공시가격의 현실화율이 70% 가까이 대폭 상승했으니, 당장 세금이 세 배 넘게 상승할 판국이었다. 그래서 정부가 꺼내든 카드가 세율 인하였다. 과세표준이 세 배 넘게 상승한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0.8% 수준이었던 재산세율을 절반 이하로 낮춘다. 지금도 적용되고 있는 0.2~0.4% 수준의 재산세율은 이 때 조정된 것이다. 과세표준을 올리고 세율을 낮춘 효과는 실효세율, 즉 직접적인 세금 부담은 소폭 상승하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누구는 높다고, 누구는 낮다고

공시가격의 현실화율은 그 이후에도 현재까지 60~80% 구간에 머무르고 있다. 2005년 이후 15년이나 지났지만 계속 제자리 걸음인 셈이다. 공시가격의 현실화율을 높이려면 공시가격의 상승률이 부동산 가격 상승률보다 높아야 하는데, 국민들 입장에서는 물가보다 세금이 더 오르는 결과가 되어 버리니 설명하기 난처한 문제였으리라. 그 결과가 제자리 걸음이었다.


@포토뉴스


공시가격 현실화 문제에 다시 불을 붙인 건 시민단체였다. 시민단체에서는 고위공직자 재산, 대기업 사옥과 총수의 자택을 소재 삼아 지속적으로 공시가격의 현실화를 주장해왔는데, 2016년 정동영 국회의원이 국감을 통해 '공시가격 현실화로 부동산 부자들에 대한 특혜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서울시에서도 공시가격의 현실화율을 90%까지 올려야 한다는 취지로 중앙정부에 건의를 하면서 전면전이 된다. 결국 국토교통부는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발표하게 되는데, 향후 10~15년 내에 현실화율을 90%까지 올리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10년씩 기다릴 필요도 없다

공시업무를 제외한 거의 모든 감정평가업무는 응당 시세를 기준한다. 굳이 10년을 기다리지 않아도, 공시가격도 지금 당장 시세에 맞춰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이렇게 하기 위해서 딱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실효세율에 변동이 없어야 한다. 실효세율을 유지하려면, 2005년에 했던 것처럼 공시가격을 올린 만큼 세율을 낮추면 된다. 반대로 말해 세율이 고정되어 있다면, 공시가격은 여과 없이 세금이 된다. 현실화를 하면 민원에 시달리고, 하지 않으면 정치에 시달리는 외통수에서 행정 실무자들만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연합뉴스


과세라는 경제정치적 영향에서 자유롭게 해줘야 행정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공시가격은 독립적인 전문가가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산정한 통계로 사용되어야 하고,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미 우리 세법은 공시가격과 과세표준 사이에 '공정시장가액비율'이라는 조정장치를 마련하고 있는데, 행정입법 대상인 시행령 조항이다. 지금 당장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100%가 되더라도, 공정시장가액비율에 대한 행정입법을 통해 얼마든지 현실화율을 조정할 수 있으며, 세율에 대한 국회입법을 통해 얼마든지 실효세율을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무자의 일은 실무자에게 맡기고, 정부, 국회가 해야할 일을 해주시기를. <끝>




※ 참고문헌

1. 「부동산 가격공시에 관한 연차보고서」 (국토교통부, 2020년)

2. 「주택의 조세부담에 관한 연구」 (박정현, 2014년)

3.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국토교통부,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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