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대화의 '코드'를 감지한다. 이 코드라는 것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개인 성향과 만남 당시의 상황과 마음 상태에 따라 완전히 핀트가 어긋날 수도, 동질감을 느낄 수도, 호기심이 일어날 수도 있다.
간혹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대화 흐름, 자신의 에너지 레벨과 다른 속도로 방향의 에너지를 가지고 마주 오는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느끼며 소위 '코드가 안 맞다'라고 단정 짓는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중심적 사고가 탑재되어 있어 '나에게 좋게 느껴지는 것은 다른 사람도 그럴 것'이라는 착각을 전제로 상대방을 대한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과 빠르게 친밀감을 쌓고 싶고, 상대방이 빨리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초면에 너무 많은 에너지와 사적인 자기 이야기를 쏟아내기도 한다. 그리고 상대방과 친해지고 싶다는 과한 관심과 감정을 보여준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적극적으로 먼저 자신을 오픈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반가울 수도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유형의 사람은 관계형성의 기초를 다지는데 '시간'이라는 절대 변수가 필요하기에 이렇게 다가오는 사람이 부담된다. 왜냐면 그런 사람은 상대방도 '나'라는 사람의 특성 이해하기 위해 시간 조금씩 들여가며 한 발자국씩 다가서는 방식으로 알아가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두 번째 유형의 사람은 모든 인간관계의 첫 시작부터 적응하기까지 어색함이 필수적으로 요구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감정의 높고 낮음은 아주 친말한 관계가 되기 전까지는 서로 적정 수준의 레벨이 지켜지기를 원하며,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보다 말을 선별하며 가려하는 것을 '배려'라고도 생각한다.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두 번째 유형의 사람을 만났을 때 원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가까이 가기 어렵다', '내가 노력하는 만큼 마음을 열지 않고, 반응해주지 않는다'며 실망을 느낄 것이다.
첫 번째 유형은 어떻게든 친해보려고 본인의 방식을 계속 던져보지만 그럴수록 두 번째 유형의 사람은 거리 두기를 하거나 더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고 단정 지어 버리게 된다.
세상은 맞지 않는 사람과 인간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모든 맞지 않는 인간관계가 그렇게 치부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랑 똑같은 사람이 내 앞에 있다면 나랑 잘 맞을까? 절대 아닐 것이다. 사람은 모두 다르고, 충돌되는 다름이 존재한다. 상대방이 악하거나 나에게 의도적으로 상처 주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나와 맞지 않아'라고 단절하기보다는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합의점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게 인간관계이고, 그렇게 해야 사회가, 공동체가 순기능을 하며 유지될 수 있지 않을까.
'나'에 대해서 아직 알지 못한 채 막연한 생각으로 서툴게 다가오는 상대방을 '맞지 않다'라고 단정 짓기보다는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 '나는 사람을 이렇게 알아가는 게 편해요'라고 말해준다면 상대방도 어느 정도 맞춰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고, 그저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거나 피한다고 생각하는 오해와 어려움을 덜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