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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을 걷다 Mar 19. 2019

제주를 걷다 - 8

제주 올레길 10, 10-1 코스

2018년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제주 올레길을 걸었다. 16개 코스 220km 정도를 걸었는데 완주하지 못한 아쉬움보다는 내가 걷고 싶은 올레길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음에 더 행복함을 느낀다. 어느 때고 난 이 길을 걷기 위해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떠나다'의 사전적 의미(표준국어대사전 참조)는 네 가지다.   

    있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다.     

    있던 곳이나 사람들한테서 벗어나다.     

    일이나 사람들과 관계를 끊거나 관련이 없는 상태가 되다.     

    어떤 일을 하러 나서다.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고, 직장을 떠나고, 가족을 떠나기도 한다. 내가 떠나기도 하지만 다른 것이 나를 떠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거나, 잠시 이별을 하는 것도 떠나는 것이고 떠나보내는 것이다. 또 떠나는 것은 버리는 것, 죽는 것,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떠나는 것에는 부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서 사람들은 자연을 찾아 여행을 떠나고,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한다. 새로운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나서는 것도 떠나는 것이다. 


올레길을 걷는 동안 난 늘 새롭게 떠난다. 떠나고, 머물고, 또 떠난다. 내가 떠나는 것이고, 전날 머물렀던 곳을 떠나는 것이고, 새로운 올레길을 보고, 느끼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10코스 : 화순금모레해수욕장 - 하모체육공원, 17.5km (5-6시간 소요)


10코스에는 화순금모레해수욕장, 사계리 해안도로, 송악산, 샛알오름 등이 있어 아름다운 올레길 코스로 손꼽힌다. 


전날 송악산 입구까지 걸은 덕분에 남은 거리는 8.3km.


화순금모레 해변을 지나 걷다 보면 산방산이 보인다. 산방산은 출입이 통제되어 산을 뒤로 돌아 걸어간다.


10코스의 마을길


올레길에는 많은 농작물 밭을 볼 수 있는데 제주에는 무, 양배추, 당근, 마늘, 양파 등을 많이 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한때 즐겨 먹었던 콜라비도 많이 볼 수 있었다.


10코스는 화순곶자왈 생태탐방 숲길 입구를 지나가는데, 그냥 지나쳐 버렸다. 다음 제주 여행에는 오름과 곶자왈만 따로 걷는 일정을 세워볼까 한다.


곶자왈은 '곶'은 숲을, '자왈'은 덤블을 의미한다. 주로 제주의 동서부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제주시에서 관리하고 있는 곶자왈이 제주 전체 면적의 약 6.1%라고 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아름다운 사계리 해안도로 전경


머물고 싶어 지는 길이다


뒤돌아 보니 산방산이 보인다.


올레길은 정방향과 역방향으로 걸을 수 있다. 정방향으로만 걸을 것 같지만 의외로 역방향으로 걷는 사람도 많이 만난다. 한쪽 방향으로만 걷다 보면 다른 방향에서 보이는 전경을 놓친다. 그래서 가끔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또 다른 전경을 바라보게 된다.


영화 '와일드'를 보고 내 배낭이 너무 작게 느껴졌다.


송악산에 오르는 길


송악산에서는 바다와 함께 다른 산과 섬들을 볼 수 있다. 산방산이 보이고 형제의 섬이 보인다.


해변 바위 절벽과 바다가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자아낸다.


바다 저 너머로 마라도, 가파도 두 섬이 가까이 보인다.


가파도는 모슬포에서 5.5km, 마라도는 11km가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섬이다. 가파도, 마라도 지명에 대한 유래가 궁금하여 찾아봤는데 , 마라도는 '칡넝쿨이 우거진 섬'이란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 하고, 가파도는 섬 전체가 덮개 모양이라는 데서 따온 개도, 개파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가파도(갚아도)되고 마라도(말아도) 된다는 우스갯소리 유머도 있다.


개보다 더 무서운 것이 풀어져 있는 말이다. 송악산을 오르다 보면 방목하는 말들이 있다.


나무 데크로 만든 계단과 길을 따라 송악산 산책길을 걷는다.


여유롭게 시간을 두고 걷고, 멈추고, 사진을 찍는다.


저편으로 운진항이 보인다. 운진항에서 가파도, 마라도 가는 배를 탈 수 있다.


송악산을 내려오면 '다크투어리즘'이란 안내 표지가 보인다.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은 '전쟁, 학살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나 엄청난 재난과 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하여 떠나는 여행'이라고 한다. 알뜨르 비행장과 격납고, 지하벙커, 4.3 제주항쟁 이후 양민학살이 자행되었던 섯알오름과 고사포 진지 등을 둘러보는 코스다



지금은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지인 제주지만 지나온 역사를 돌이켜 보면 제주는 아직까지도 원과 한을 풀지 못한 슬픔을 가진 섬이기도 하다. 제주는 일제강점기를 지나, 4.3 사건과 6.25  당시 섯알오름 양민학살 사건 등 죄 없는 수많은 제주 주민들이 학살당하고 암매장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전쟁의 진짜 참혹함은 같은 민족임에도 이권이나 사상 때문에 서로를 죽이고, 박해한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죄 없는 주민들이 무수히 희생되었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 중 일부는 "전쟁이란 다 그런 것이라고, 제주도도 다를 것이 없다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문제는 제주가 더 특별해서가 아니라 제주의 이런 아픈 역사는 그동안 교과서에서도 외면되었고, 진상규명과 미확인 희생자를 찾고,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련의 노력이 너무 늦게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아직도 제대로 반성하고 있지 못하는 일본이다.


이러한 사실을 처음 알게 되어 너무 부끄러웠다.


대나무를 이용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평화를 상징하는 '파랑새'란 이름의 조형물이다.


마음속으로 깊은 추모를 드리고, 무거운 마음으로 계속 길을 걸었다.


밭 사이의 이 작은 길도 올레길이다.


점심은 보말칼국수


대정읍에 있는 향토음식점 옥돔식당. 이곳도 많이 알려진 맛집이다.


10-1코스 가파도 상동포구 - 가파 치안센터, 4.3km (1-2시간 소요)


가파도 코스는 올레 코스 중에서 가장 짧다. 빠르게 걸으면 1시간에도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1시간 안에 돌아오는 사람은 이 아름다운 경관은 안 보고 걷기 운동만 한 사람이다.


섬을 가로지르는 길이 있어 가파도 올레길이 멋지고 아름다운 길로 완성되었다.


상동포구에서 바라본 송악산


상동포구에서 조금 걸으면 바로 마을로 들어간다.


마을을 지나면 해안 도로를 따라 걷는다.


가파도에서 바라보는 한라산 전경


가파도 전경


청보리밭과 이제는 눈이 거의 녹은 한라산이 저 멀리 보인다.


가파도 코스는 섬 해안도를 반쯤 걷고, 섬을 가로질러서 간다. 다시 해안이 나오면 반대편 해안 도로를 걷는 코스다.(S자 형태)


이처럼 아름다운 섬인데 겨울의 가파도, 태풍이 올 때의 가파도 모습은 상상이 안된다.


가파도에서는 많은 풍경 사진을 찍었다.


선착장에 있는 가파도 표지석. '친환경 명품 섬' 이란 말로는 가파도를 반의 반도 표현하지 못한다.


떠남은 끝이 아닌 새로운 출발의 의미이다. 새로운 출발을 위한 떠남에는 설렘이 있고, 떠났기 때문에 새로운 자연과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하루를 출발하여, 어느 곳에 머물다가 다시 떠나는 일을 반복하였다. 제주의 아픈 과거를 만나기 위해 떠났고,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가파도란 아름다운 섬을 보기 위해 떠났고, 그 섬을 떠나 다시 되돌아왔다.


떠남의 반대말은 도착하거나 머무는 것이다. 하지만 여행에서 떠남의 반대는 되돌아오는 것이고 되돌아오기 위해서는 머물렀던 곳에서 다시 떠나야 하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다시 되돌아오기 위해서가 아니다. 현재에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떠나는 과정을 연습하기 위해서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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