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내가 원했던 것이 정말 이것이었을까 싶은 순간이 있다. 내가 원한 것은 B였는데, 다른 사람들이 더 좋다고 하니까 A를 선택해 놓고 막상 살아 보면 이게 아닌데 하는 깨달음의 순간이 올 때가 가끔식 있다. 문제는 나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가 더 많다는 점이다.
전승환 작가가 쓴 <내가 원하는 것을 나를 모를 때> 책에 보면 '잃어버린 나를 찾는 인생의 문장들'이 있다. 나도 내 맘을 모를 때는 전승환 작가가 소개한 책의 문장에서 답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033672
사람은 누구나 다 외롭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 속에 있어도 외로울 때가 있다. 그런데, 사실은 사람은 어느 정도는 외로워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이 힘이 필요하다.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다가는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다.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이 둘이서도 잘 살 수 있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라는 시에 보면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라고 하고 있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외로움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책을 읽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알지 못했던 많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들을 알게 된다.
살다 보면 지치는 시간이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한잔의 차이다. 옛날에는 커피만 마셨다. 홍차나 녹차 같은 차는 맛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차 수업을 받게 되었다. 몇 달간 일주일에 한 번씩 차에 대해 배우며 다양한 차를 마셨다. 그때 내가 그동안 맛없는 차를 마셨기 때문에 차가 맛이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은 차를 제대로 우려내 마시면 차가 달고 맛있다는 이야기가 절로 나온다.
차 수업을 받고 나서 사무실에 자그마한 다기세트를 갔다 두었다. 드물게 손님이 오면 차를 내려 주기도 한다. 천천히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때면 커피를 마실 때 보다 좀 더 정감 있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커피만 달랑 한 잔 줄 때 보다 차를 직접 내려 주고, 다과도 곁들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좀 더 환대하는 느낌도 든다.
전승환 작가는 사람들과 차를 나누는 일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쓴 책으로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를 소개하고 있다.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것 또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것, 그가 편안하게 '사람'을 연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하여 그를 다시 한번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사회 안에 자리를 갖는다는 것 외에 다른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을 연기하려면 최소한의 무대장치와 소품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누군가를 초대할 수 있는 공간, 갈아입을 옷, 찻주전자와 차를 살 돈 같은 것 말이다. 그러므로 환대는 자원의 재분배를 포함하기 마련이다.
대학원 다닐 때 지도교수님은 일이 잘 안될 때면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종점까지 갔다 온다고 하셨다. 그러다 보면 어수선했던 마음도 잡히고 새로운 생각도 떠오른다고 하셨던 말씀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내 경우에는 산책을 나간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어수선했던 마음도 잡히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떠 올랐다.
남편과 산책하는 것도 좋아하기는 하지만, 혼자서 하는 산책이 더 좋을 때가 많다. 남편은 이왕 산책하는 것 빠르게 걸어서 운동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에는 느리게 천천히 걷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씩 혼자서 딱히 어디까지 가야겠다는 정해진 목적지도 없이 걸을 때가 있다. 걷다가 지치면 편안한 카페에서 맛있는 차도 한 잔 마시며 쉰다. 살다 보면 목적 없이 무작정 걷고 싶은 날들이 있다.
이애경 작가는 에세이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에서 산책이 가지는 최고의 매력이 다른 목적이 없다는 것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모든 걸음에 반드시 목적지가 있어야 할까?
인생도 산책하듯 그냥 걷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은데
보통 돈키호테를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불가능한 꿈을 꾸는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대비되는 인간형으로는 햄릿이 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살 것이냐, 죽을 것이냐'를 고민한다. 고민할 시간에 행동했으면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무언가는 되었을 것 같은데, 아까운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내 경우에는 보통의 경우에는 햄릿에 가깝다. 온갖 경우의 수를 오랫동안 소심하게 고민한다. 그렇지만 가끔은 돈키호테처럼 나 자신도 믿기지 않을 정도의 무모해 보이는 일을 시작할 때가 있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이 아니라, 내가 도달하고 싶은 저 하늘의 별을 쳐다본다. 내가 가진 꿈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저 하늘의 별을 잡자"(돈키호테를 읽는 명언의 향연, 세르반테스의 말)
카카오의 김범수 의장은 <무엇이 성공인가>라는 시를 즐겨 읽는다고 한다.
무엇이 성공인가
-랠프 월도 에머슨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들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 때 이곳에서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사실 인생은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비극적인 현실의 가림막일 수도 있고,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안에 있으면 잘 알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몰라 헤매었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한참 헤매다가 돌아보니, 내가 원하는 것을 이미 내가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다. 대학교 다닐 때 화학을 부전공한 적이 있었다. 과학자가 되는 것이 오랫동안 내 꿈이었고, 인류를 위한 새로운 물질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화학 실험을 하면서 나는 과학자로서의 소질도 관심도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인류를 위한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화학약품으로 환경만 오염시키고 있었다. 그래서 대학원 전공을 환경으로 확 바꾸었다.
그런데 지금 더 나이 들어 생각해 보니, 식품에도 관심이 많고 음식도 좋아하니 식품영양이 더 적성에 맞았던 것 같다.
<행복한 사람은 있는 것을 사랑하고, 불행한 사람은 없는 것을 사랑한다>는 '가끔씩 흔들리는 당신을 위한 50가지 인생 수업'이라는 책이 있다. 인생이 아름다워지려면, 내가 가진 것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417232
글 : 이계원(공유경제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