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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원 Sep 06. 2020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7년 전에 십여 년간 다녔던 회사를 관두었다. 3년 전에는 연구소를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나서는 뭐 하시는 분이냐는 질문에 대답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연구도 하고, 글도 쓰고, 강연도 하니까, 연구원, 작가, 강연자?  다 맞다고 할 수도 없고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적합한 직업분류는 프리랜스 주부이다.


내가 주부라고 이야기하면, "집에서 노시는구나?"라는 약간 독특한 뉘앙스의 대답이 돌아올 때가 가끔 있다. 회사 다닐 때만큼 풀타임으로 일하지는 않지만, 집에서 논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집에서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아이들도 돌보고, 틈틈이 책도 쓰고, 강의 준비도 하고, 가끔씩 회의도 가고, 출장도 다닌다.


나처럼 '집에서 논다'라는 말의 공격을 받은 정아은 작가가 쓴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이라는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345012




정아은 작가의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이라는 책은 열다섯 권의 책을 통해 '집에서 논다'라는 말의 기원을 사회, 역사, 경제적으로 찾아가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15권의 책 중에서 나도 경험했기 때문에 내 마음에 더 와 닿았던 5권의 책도 같이 소개하고자 한다.


" 너 집에서 논다며?"

 이 책의 저자는 큰아이가 다섯 살일 때 다니던 회사를 관두었다. 이유는 복합적인데 둘째를 가진 상태였고, 둘이나 되는 아이를 맡길 엄두가 나지 않았고, 직장에서 보조적인 일만 하는데 회의가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 때문에 직장을 관두지는 않았다. 내가 회사에서 3년 동안 온 힘을 다해 하려고 시도했던 신사업이 이 회사에서는 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 되었기 때문이다. 3년 동안 '전기차 카셰어링'이라는 신사업을 해 보려고, 100번 가까이 회사 안팎으로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다. 심지어 회사 발표 대회에도 나가 최우수상을 수상했지만, 사업은 실행되지 못했다. 삼성은 '바퀴 달린 것은 대형 냉장고 빼고는 안 한다'라는 기사를 메일로 받고 나서는, 내가 이 회사에서 이 사업을 할 수는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3년을 고민했지만, 결정은 3일 만에 단호하게 내렸다. 남편에게 내가 회사를 관두어도 되겠냐고 물어보았다. 남편은 내가 뭘 고민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신이 원한다면 그만두어도 된다고 바로 대답해 주었다. 회사에 퇴사한다고 이야기했더니 그 당시 상사였던 상무님이 걱정을 많이 해 주셨다. 회사 내에 다른 일을 해도 되고, 직장을 관두고 나면 재취업도 쉽지 않을 수 있으니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생각을 해 보라고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회사에서 참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10년 전에 전기차를 그것도 공유차량으로 사업 모델을 이야기했으니, 내가 시대를 앞서가도 너무 앞서갔다는 생각이 지금은 든다. 여하튼 나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도 아니고, 그만한 추진력도 없었다.


퇴사를 하고 나니까, 생각지 못했던 행복이 찾아왔다. 그 당시 5살 유치원생과 9살 초등학교 저학년 남자아이 둘의 엄마였던 나는 아이들과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같이 누리기 시작했다. 책도 많이 읽었고, 동네 산책도 많이 다녔고, 국내외로 여행도 많이 다녔다. 그러다가 남편 회사가 공공기관 지방이전으로 멀리 나주 혁신도시로 이전을 하게 되었다. 나도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 전체가 나주로 이사를 왔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린아이 둘이 있고, 남편회사가 멀리 지방으로 갔기 때문에, 내가 퇴사하고 따라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남편이나 아이들을 위해 퇴사 결정을 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결정을 한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나와 우리 가족 모두에게 더 행복한 결정이 되었을 뿐이다.


퇴사하고 나서 전업주부로 살 때 친척들이나 친구들이 '너 집에서 논다며?'라고 걱정 반 부러움 반의 반응을 보였다. 박사나 되면서 집에서 놀면 안 된다고, 공부한 게 아깝지 않냐는 반응도 많았다. 사실 나는 회사 다닐 때만큼 풀타임으로 열심히 일하지는 않았지만 집에서 놀지는 않았다. 집안일을 했고, 아이 둘을 돌보았고, 책을 많이 읽었다.

 

다시 돌아간다면 그때도 회사를 그만둘 것인가

레슬리 베네츠,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정아은 작가는 엄마들이 넷이 모인 자리에서 모인 엄마들이 "취직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전업주부였던 경단녀였던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회사로 돌아가고 싶은지 잘 생각해 본다. 그 생각 속에서 레슬리 베네츠가 지은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내용에 대해서 언급한다.


책에서 여성이 직장을 관두는 선택이 경제적 의존을 불러일으키고, 남편 혼자 생계를 부양하는 것은 남편의 실직, 변심, 사망과 같은 다양한 변수에서 위험할 수 있다고 언급한다. 또 아이들이 어릴 때는 엄마 손길이 필요하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일하는 엄마가 더 바람직한 여성상이 될 수도 있고, 더 민주적인 가정 분위기 조성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한다.


정아은 작가는 이 책의 내용에 공감하면서도 다시 돌아간다면 그때도 회사를 그만둘 것인가?라는 질문에 선택의 순간이 다시 와도 회사를 나올 것 같다고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 이디.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443549


나는 왜 요리를 싫어하게 되었을까

라문숙, <전업주부입니다만>


라문숙 작가의  <전업주부입니다만> 책은 나도 참 좋아하는 책이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글을 보게 되었다가 글과 사진이 좋아 책으로 읽어 보았는데, 느낌이 참 좋았다. 평범한 전업주부의 삶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자 고유의 정제된 문장과 명징한 단어 사용으로 깊이가 있는 책이다. 이렇게 살 수 있으면 전업주부로 살아도 좋지 않을까 하는 부러움을 주는 책이다.


사실 나는 전업주부라고 하기에는 정체성이 안 맞을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내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40이 넘어 전업주부로 몇 년을 살아 보니 나는 요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전에 내가 요리를 좋아한다고 착각을 한 것은 내가 요리를 전담하지 않아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혼 전에는 엄마가 해 주셨고, 결혼하고 맞벌이를 할 때는 입주 아주머니가 계셨기 때문에 하루 3끼 내가 밥 할 일이 없었다. 나는 다만 1주일에 1~2번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맛있게 만들어 가족들이랑 즐겁게 나누어 먹는 것을 좋아했던 것이다.


올봄에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수업으로 집에 있는 아이들과 가끔씩 재택근무 때문에 집에 있는 남편 때문에 밥 3끼와 간식 2번까지 하루에 5끼를 준비한 적이 많았다. 돌밥이라는 용어의 정의를 명확히 알게 되었으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내가 하지 않은 밥이다'라는 엄마들이 말하는 농담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휴대폰에 배달앱을 2개 깔았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459157

 

왜 가사 노동에 임금을 지불해야 하는가

실비아 페데리치, <혁명의 영점>


가사노동은 일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일의 대가를 지불받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적 지위도 없고, 사회적 목소리를 내지도 못한다. 가사 노동에 임금을 부여하면 여성이 집에서 하는 일을 노동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고, 더 이상 집에서 논다는 말을 듣지 않게 되고, 사회적 약자에서도 벗어나게 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정아은 작가는 반찬 만들기 봉사 활동 같은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보수 봉사 활동에도 이의를 제기한다. 특히 학교나 종교 단체에서 기혼여성들을 대상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무보수 봉사 활동에 참여시키는 것에 대해, 이것이 각 가정에서 주부들이 행하는 무보수 가사 노동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도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녹색 어머니회부터 시작해 다양한 봉사활동 참여 제안을 받았다. 회사 다닐 때 보다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참석 해서 도와주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아이 학교 앞 사거리에서 교통 깃발 들고 서 있는 것부터 시작해, 학교 화장실 청소까지 하게 되었다. 화장실 청소는 학교에서 고용한 청소부가 하든지, 직접 사용하는 아이들이 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맞지 엄마들이 무보수로 해 줄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회에서 부탁해 어쩔 수 없이 나도 참여하고, 내가 다른 엄마들에게 참여 요청 전화도 했다. 하면서도 이건 아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내 노동력이나 다른 엄마들의 노동력을 돈으로 환산해서 지불해야만 한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무보수로 동원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가족이나 사회에 대한 사랑이니 봉사니 하는 고상한 용어들이 동원되지만,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은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래서 집에서 실컷 일 하고도 '집에서 논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이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395622


비구니가 <아빠 수업>이라는 책을 낸다면 어떤 반응을 받을까

법륜, <엄마 수업>


옛날에 법륜 스님의 책을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엄마 수업> 뿐만 아니라 <스님의 주례사>라는 책도 좋아했었다. 자신의 마음이 성숙되어 있으면 길거리의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하고 결혼해도 잘 살 수 있다는 내용이다. 결혼이 본질적으로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일 수 있다는 점을 책에서 잘 지적해 주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황당한 내용들도 많았다.


생각해 보면 결혼도 해 보지 않고 애도 안 낳아 본 스님이 결혼생활과 아이 키우는 것에 훈수를 두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다. 직접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디테일을 정말 알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그런데 또 한편에서 생각해 보면 그 속에 있으면 함몰되어 보이지 않던 것이, 한 발짝 떨어져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면 다르게 보이는 것들도 있다.


내가 경험해 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들도 있지만, 내가 경험한 것만이 다는 아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390556


비혼 여성과 기혼 여성은 연대할 수 있을까

김하나 황선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이 책은 나도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 둘이 같이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자취하면서 좁은 집에 살았던 두 사람은 경제력을 합쳐 따로 살 때보다 더 넓고 좋은 주거여건의 아파트를 구입해 같이 살아가기 시작한다. 서로 취향과 성격이 정반대인 두 사람은 공동생활을 하면서 많이 싸울 것 같지만, 의외로 서로의 다른 점을 보완해 가면서 잘 살아간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은 요리를 좋아하고, 지저분하다. 다른 사람은 집 청소를 좋아한다. 왜 청소를 안 하냐고, 쓸데없는 물건을 왜 자꾸 사들이냐고 싸우는 대신에 점점 서로의 장점을 고맙게 받아들인다.


결혼 생활도 이렇게 이상적이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결혼생활은 상대방의 장점보다는 단점에 집착하게 된다. 동성 친구끼리 살아도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 최근에 공유 주거에 대해 인터뷰하면서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랑 한 공간에서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혼자는 외롭고, 둘이 있으면 괴로운 일이 벌어진다. 결혼 안 하면 외롭고, 결혼하면 괴롭다.

그런데, 혼자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둘이 되어도 잘 살 수 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531771


글 : 이계원(공유경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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