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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원 Oct 20. 2020

나는 말하듯이 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하기는 쉽게 생각하지만, 글쓰기는 어려워한다. <대통령의 글쓰기>와 같은 베스트셀러 글쓰기 책을 쓴 강원국 작가는 말하듯이 글을 쓰 보라고 한다. 작년에 강원국의 남과 다른 글쓰기라는 특강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강원국 강사가 했던 이야기들이 올해 나온 <나는 말하듯이 쓴다>라는 그의 책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가 실시간으로 말하는 느낌이었다. 말하기는 결국 글쓰기로 이어진다.

강원국의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법을 내가 말하기와 글쓰기에서 겪었던 경험과 함께 소개해 보고자 한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384868



출력의 질 좌우하는 입력 : 책벌레가 되자


강원국 작가는 독서는 글쓰기 밑천이라고 했다. 또한 독서는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범을 보여준다고 했다. 작가는 읽기가 먼저라면서 집요하게 읽어라고 했다. 한 작가를 정해 놓고 그의 모든 작품을 읽는 '전작주의'를 할 수도 있고, 특정 테마나 주제에 관한 책을 모두 읽는 '테마주의' 독서 방법도 있다고 했다.


또 어렵지만 뿌듯한 고전 읽기를 추천했다. 마크 트웨인은 "고전은 누구나 한 번쯤 읽기를 바라지만, 사실은 아무도 읽고 싶어 하지 않는 책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내 경우에는 올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읽기에 도전하고 있다. 1주일에 한 권 정도씩 1년 동안 50권 고전 읽기 목표를 세웠다. 재미있는 책도 있지만 읽기 어려운 책도 있어, 브런치에 계속 책 서평을 쓰기가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https://brunch.co.kr/brunchbook/book25


나는 사실 글을 잘 쓰지는 못한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해 수만 권의 책을 읽었지만, 본격적으로 글을 쓴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내가 글을 못 쓰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학교 다닐 때 자연계생이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회사에서 주로 파워포인트로 발표를 했다는 것이다. 자연계생이었던 나는 대학 다닐 때 일주일에 3개씩 실험 리포트를 썼다. 실험 리포트는 풀어쓰면 안 된다. 수치와 그래프로 사실 그대로 요약해서 써야 한다. 긴 문장의 문학적 수사는 금물이다.(예를 들어 '약품 2g을 비커에 넣어 200도의 온도에 45분간 가열한다'라고 쓰야지, '약품 한 숟가락을 정갈한 그릇에 담아서 뜨거운 온도에서 녹을 때까지 뭉근히 가열한다.' 이런 식으로 썼다간 실험실에서 당장 나가란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회사에서는 박사라는 이유로 발표와 강연을 많이 했다. 그런데 발표 자료들은 100% 파워포인트로 만들어졌다. 그림이나 단어나 짧은 문장으로 된 파워포인트 화면을 띄어 놓고 주로 말로 풀어 설명했다. 그래서 아직도 문장을 풀어 글로 쓰려면 잘 되지 않는다.


강원국 작가는 독서를 많이 했다고 반드시 글을 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고등학교 때 영어를 많이 공부했다고 외국인과 의사소통을 잘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냐며, 잘 쓰려면 '읽기'에 길든 내 머리가 '쓰기'에 익숙해지도록 상태를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글이 글을 낳는다


강원국 작가는 글은 일필휘지 하기 쉽지 않지만, 조금씩 쓰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다고 했다. 처음부터 잘 쓰려는 욕심을 버리고 일단 뭐라도 써 놓고 계속 추가하는 것이다. 그는 회사 다니면서 써둔 10여 장의 글이 책이 되는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영화 <기생충>의 명대사가 절로 떠오른다고 했다. "나도 다 계획이 있구나."


내 경우에는 <공유경제>라는 첫 책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회사 다닐 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공유경제에 대한 책을 써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몇 년을 그냥 생각만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목차부터 잡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단 쓰기 시작하니까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생각은 몇 년을 했지만, 쓰는 것은 몇 달 안에 끝냈다.


사실 나는 책을 쓰기 위한 글쓰기 연습으로 1년 동안 일기를 썼다. 나주에 이사 와서 첫 1년 동안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처음 일기를 쓸 때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내용도 어설펐다. 시간이 지날수록 글 쓰는 속도도 빨라지고 내용도 다채로워졌다. 브런치에도 작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쓸 때 시간 오래 걸렸고 표현이 쉽지 않았다. 1년 동안에 80여 개가 넘는 글을 연달아서 쓰고 나니까, 요즘은 글 쓰기에 속도감이 좀 붙는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강의를 참 잘한다


강원국 작가는 강의 실력은 크게 네 단계로 진화한다고 말한다.

 

첫째 단계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지 못하는 단계다. 형편없이 강의하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못하는지 모른다.

둘째 단계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아는 단계다. 쭈뼛쭈뼛하고 위축되어 있다. 듣는 사람이 조마조마하다. 

셋째 단계는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알고 그것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계다. 하지만 작위적인 느낌이 들어서 듣는 사람이 편안하지 않다.  

넷째 단계는 의식하지 않고도 무심결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단계다. 능력이 몸에 배어 자연스럽다.


내 경우에는 글쓰기보다는 발표가 나은 편이다. 처음부터 내가 발표를 잘했던 것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소심했던 나는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또 목소리가 작아서 학교 다닐 때는 자발적인 발표 같은 것은 결코 하지 않았다. 그런데 회사에 들어오니까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회사에 들어간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제안 발표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제안서는 다른 팀에서 써 놓았으니까, 나는 그냥 발표만 해 주면 된다는 거였다. 관련 박사학위를 소지했으니 좀 더 전문성 있어 보일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공공기관 제안 발표장에서 나는 발표를 하려고 연단에 서 있었다. 내 발표에 앞서 회사 제안팀에서 준비한 3D 시연 동영상 프로그램을 먼저 보여주고, 그 다음에 내가 파워포인트로 제안 발표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3D 동영상이 돌아가다가 갑자기 멈추어 버린 것이었다. 화면에는 아무것도 안 나오고, 나는 빈 화면 앞에서 멍하게 서 있었다. 시연 컴퓨터는 단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영겁과도 같았던 시간이 흐르고 회사 프로그래머가 컴퓨터를 다시 부팅하여 화면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내 발표를 시작했다. 결국 그 제안은 떨어졌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도 아니었고, 내가 제안서를 쓴 것도 아니고, 나는 단지 발표만 했을 뿐이라서 사실 내 책임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위기상황에서 멍하게 연단에 서 있을 것이 아니라,  내가 보다 잘 대응을 했었으면 하는 아쉬운 생각이 계속 들었다.   


10년의 세월이 흐르고 이런저런 발표와 강의를 많이 하게 되었다. 한 번은 교수 연수회에 참석한 교수들을 대상으로 IT 강의를 하게 되었다. 파워포인트 화면을 띄어 놓고 한참 강의하고 있는데, 화면에 몇 분 뒤 배터리가 나간다는 경고 표시가 나왔다. 강의 듣고 있는 교수들을 보니까 교재 책자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웃으면서 곧 배터리가 나갈 것 같으니까 교재로 강의 진행을 하겠다고 알려 주었다. 교재를 보면서 강의 진행을 하고 있으니까 담당자가 노트북 충전기를 가지고 와서 연결해 주어서 화면이 돌아왔다. 굉장히 자연스럽게 강의가 이어졌고, 내 첫 제안 발표 이야기도 해 주었고 박수도 받았다.


나를 낳아주신 엄마조차도 소심한 당신 딸이 남 앞에서 발표를 잘한다는 사실을 아직도 믿지 못하신다. 내 발표의 비결은 많은 연습과 실전 경험이다. 처음에는 내 발표자료를 읽는 것만도 급급했는데, 이제는 말하듯이 자연스럽게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 회사에서 삼성에서 가장 발표를 잘하는 사람으로 발표와 강의의 달인으로 소개된 적도 있었다. 심지어 회사 발표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적도 있다.


불효자는 씁니다 : 글쓰기의 즐거움


강원국 작가는 술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하루는 인사불성이 되어 택시에 실려 집에 왔는데, 승강기가 없는 5층 아파트에 살았던 그를 집까지 끌고 올라갈 수 없었던 아내가 새벽에 그의 아버지 댁에 던져 놓고는 출근했다고 한다. 점심때쯤 정신이 들었는데 발밑에서 그의 아버지가 울고 계셨다고 한다. "내가 너를 이렇게 키우지는 않았는데....." 너무 부끄러워진 그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술을 끊기로 했다고 한다. 술을 끊으려면 매일 할 일이 있어야 해서 날마다 글을 썼다고 했다.


그는 '술 끊기와 아버지에게 추한 모습 안 보이기'라는 목적을 이루려고 열심히 썼다. 그 결과로 그의 아버지에게 취미가 하나 생겼다. 집 가까이에 있는 대형 서점에 가는 일이다. 아들 책이 잘 진열되어 있는지, 얼마나 잘 팔리는지 알아보는 재미로 서점에 가신다. 아들 책을 구매하는 기특한 젊은이가 있으면 저자가 내 아들이라고 말도 거신다고 한다. 술 끊고 글 쓰면서 효도하고 있는데, "이게 글쓰기로 누리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라고 이야기한다.


나의 아버지는 약대를 나와 약국을 하시다가 관두고, 중학교 국어 선생님을 하신 특이한 경력을 가지신 분이다. 약사가 귀했던 시절이긴 했지만, 장사에 소질이 없어 약국이 잘 안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중고등 학교 다닐 때 국어과목을 좋아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교원임용시험을 쳐서 중학교 국어 선생님으로 학생들을 가르치셨다. 오랫동안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싶어 하셨지만, 소심하셔서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셨다. 아버지가 오랫동안 써 놓았던 글들을 모아 <해바라기>라는 한 권의 책으로 내가 출판해 드렸다.


아버지가 직접 말하시지는 않으셨어도 나에게 가진 꿈이 커셨다는 것을 안다. 내가 대학시험에 떨어져 재수를 할 때 편지를 한 장 쓰셔서 주셨다.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을 해도 된다고 따듯하게 위로해 주셨다.

글쓰기의 즐거움을 물려주신 아버지에게 감사를 드린다.


글 : 이계원(공유경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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