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애증의 대상은 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운동은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맛보게 해주는 애증의 대상일 것이다. 도서관에 책 빌리러 갔다가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라는 원형 제목에 수영장에서 아쿠아로빅 하는 여자들의 모습이 해맑게(?) 그려진 책을 빌려왔다. '하찮은 체력 보통 여자의 괜찮은 운동 일기'라는 부제목이 마음에 와 닿았는데, 읽다 보니 내 이야기를 어찌 알고 쓴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간헐적 단식'이 아니라 '간헐적 운동'을 하는 작가의 행태는 나와 유사하였으나, 코믹한 글솜씨는 나보다 훨씬 나았다. 그래서 이진송 작가의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책 내용을 내가 겪은 다양한 운동 경험과 같이 소개해 보고자 한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619978
살면서 가장 생존에 관련된 배움이 무엇일까? 아마 수영일 가능성이 높다. 요즘은 초등학교에서도 '생존수영'이라는 이름하에 기본적인 것은 가르쳐 준다. 내가 어릴 때는 주변에 실내 수영장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대학교 때 처음 수영을 배우게 되었다. 계절수업으로 수영 과목을 들었는데, 학교 근처의 오래된 실내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웠다. 수영을 배우면서 느낀 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운동은 가르쳐주는 선생님의 인성이 참 중요하구나 하는 거였고, 두 번째는 수영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나의 몸이 타자화되기 쉬운 운동이라는 점이었다.
처음 수영을 배울 때는 겁을 먹어 물에 뜨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런데 처음에 수영을 가르쳐 주던 선생님이 "사람은 기본적으로 물에 뜨는 존재이다"라고 과학적 확신을 알려 주셨다. 선생님 말씀을 믿고 몸을 편안하게 뻗은 순간 물에 뜨기 시작했다. 기분 좋게 물에 둥둥 떠 있으니까 신세계가 열린 것 같았다. 그런데 딱 그기까지였다. 선생님에게 무슨 사정이 생기셨는지 조교가 수업에 대신 들어왔다. 부드럽고 친절한 선생님과는 달리 조교는 학생들에게 무안을 주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해 나갔다. 나 스스로도 내가 몸치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것도 못하냐? 드럼통도 학생보다는 낫겠다'는 지적을 대놓고 받으니까, 창피하기도 하고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선생님의 칭찬은 학생을 춤추게 하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처음 선생님이라고 내가 못하는 것을 모르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어제 보다는 오늘 더 나아졌다는 부드러운 칭찬에 조금씩 힘을 내던 나의 수영 진도는 선생님이 바뀌고 나서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결국 나는 호흡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중간에 계속 멈추면서 수영 수업을 끝내게 되었다.
또 수영은 생각보다 몸이 타인의 시선에 노출되기 쉬운 운동이다. 내가 수영장에 있는 모습이 주요 일간지 사회면에 조그마하게 실린 적이 있었다. 대학교 수영 수업 시간에 수영장 물속에서 준비 운동을 하고 았었는데, 큰 카메라를 멘 사람이 수영장 가장자리 레인 옆에서 계속 나를 따라오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날 평상시처럼 집에 배달된 신문을 보고 있는데, 내 눈길을 끄는 기사와 사진이 있었다. 서울대에서 계절학기로 수영 수업을 시작했다는 것과 여학생도 몇 명 수영 수업을 같이 받고 있다는 내용의 사회면 조그만 기사였다. 기사 옆에 아주 자그만 사진으로 수영장 사진이 있었는데, 그 속에 내가 있었다. 그 전날 누가 카메라 들고 나를 찍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어서 나란 것을 짐작할 수 있었지, 사진만 보아서는 나라는 것을 나조차 인지 할 수도 없는 아주 작은 사진이었다. 몇십 년 전이긴 했지만, 그래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것도 흥미성 기사로 낼 정도인가 싶어 착잡했던 기억이 났다.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책의 저자인 이진송 작가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유럽 여행 갔다가 크루즈에서 바다에 집어던져지는 체험을 한 후 선원에게 "학교에서 수영 안 배웠어?"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자유형, 배영, 접영 같은 영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위급 시에 물에 뜰 수 있고, 평상시에는 물에서 즐기며 운동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진송 작가는 물속에서 하는 아쿠아로빅을 시작한 것 같은데, 내 경우에는 아쿠아로빅은 해 본 적이 없다. 엄마가 오랫동안 아쿠아로빅을 다니셔서 그냥 나이가 드신 분들이 수영 대신 물속에서 하는 쉬운 운동 정도로만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꼭 속도 경쟁하는 수영이 아니더라도 아쿠아로빅도 좋을 것 같다. (*수영장에 가서 꼭 끼는 수영복 갈아입는 번거로움만 없다면 말이다.)
수영 다음으로 띄음 띄음 배운 것이 요가였다. 요가를 한 햇수는 오래되었지만, 요가는 아직도 잘하지 못한다. 옛날에 한 요가 학원을 1년 넘게 다닌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요가 선생님이 바뀌었다. 새로 오신 요가 선생님이 수업 마치고 나서 나를 따로 부르더니 "요가 처음 시작하셨어요?라고 물었다. 창피해서 요가 학원에 1년 넘게 다녔다는 이야기는 못하고 얼마 안 가서 요가 학원을 관두었다.
요가는 역사도 오래되었지만 돌고도는 유행이 있다. 인도처럼 아주 더운 환경을 흉내 낸 핫요가가 유행한 시절이 있었다. 40도가 넘는 실내에서 한 시간 정도 요가를 하고 나면 땀이 비 오듯이 흘렀다. 요가의 운동 효과가 아니라 숨 막히는 더위에 내가 줄줄 흘린 땀방울 때문에 열심히 운동한 것 같다는 착각을 하곤 했다.
그다음에 다닌 요가 학원은 플라잉 요가도 했다. 해먹 같이 생긴 천을 공중에 매달아 놓고 그 위에 올라타서 하는 요가 동작은 서커스에서 하는 동작 같았다. 나는 천에 올라타기도 힘든데, 옆사람들은 선생님의 지시에 맞추어 온갖 묘기 같은 동작들을 공중에서 연달아하고 있었다. 플라잉 요가 시간에 내가 가장 좋아한 시간은 끝날 때쯤 공중에 매달린 해먹에 누워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었다. 잔잔한 음악 소리가 들리고 그네 같은 천 해먹에 누워서 앞 뒤로 몸을 천천히 흔들고 있으면 엄마 뱃속에 들어온 것처럼 편안했다.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의 이진송 작가의 아버지는 "운동하는데 와 돈을 쓰노?"라고 헬스클럽에 돈 내고 운동하러 다니는 사람들(딸을 포함)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작가의 아버지는 새벽에 일어나 등산이나 조깅을 하러 다니셨다고 한다. 사실 운동하는데 돈이 꼭 필요하지는 않다. 특히 요가의 경우에는 집에서 요가매트 하나 깔아 놓고 TV 보면서 따라 하면 된다. 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바보라서 헬스클럽이나 요가학원에 쓸데없는 돈을 갖다 바치고 있을까? 운동 학원에 등록을 하면 낸 돈이 아까워서라도 운동을 하러 가게 되고, 귀찮더라도 일단 가면 강사의 구령에 맞추어 하는 시늉이라도 내게 된다. 코로나 전에는 사무실 근처의 여성전용 피트니스 센터에 1년 회원권을 끊어 놓고 다녔다. 특히 운동 끝나고 하는 사우나는 삶의 휴식이었다. 코로나 이후 헬스센터도 다니기 힘들어졌다. 집에서 혼자 TV 보면서 하다 보면 웬만큼 독하지 않고서는 운동을 지속하기기 어렵다. 우리 집 요가 매트는 구석에서 먼지가 쌓인 지 오래이고, 폼롤러는 아들이 죽부인 대신 껴안고 자고 있다.
수영이나 요가만큼 테니스를 간헐적으로 배운 역사도 유구하다. 처음 테니스를 배운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테니스 선수 출신이었던 체육 선생님은 열심히 테니스를 가르쳐 주셨지만, 운동신경이 약했던 나에게는 무리한 운동이었다. 대학교 체육시간에 테니스가 의무적으로 배정되었다. 두 명씩 짝을 지어 연습했는데, 파트너에게 공을 한 번 잘 못 날려 맞추고, 파트너가 잘 못 날린 공에 얻어맞아 다칠 뻔한 이후로 모든 의욕을 상실했다.
그러다가 대학원에 들어와서 테니스를 잘 치는 선배들을 보고 부러워하다가, 집 근처 테니스장에서 개인 레슨도 받았다. 역시나 체력이 바닥인 나에게는 힘차게 공을 치는 테니스는 무리였다. 대세를 전환하여 가벼운 날개 달린 셔틀콕을 치는 배드민턴으로 전환하였다. 배드민턴은 그나마 치기가 나았다. 일단 가벼워서 힘이 덜 들었고, 학교 건물 옆이나 집 주변 공터에서도 아는 사람들이랑 가볍게 치기가 좋았다.
이진송 작가도 어릴 때 배웠던 배드민턴을 치면서 서먹했던 외할아버지와 교감을 나누었던 순간을 이야기한다. 운동은 남 눈에 멋있어 보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본인의 체력에 맞으면서 시공간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운동이 좋을 수도 있다. 그러면서 가족이나 지인들이랑 같이 즐길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운동 신경이 많이 부족한 내가 그나마 오랫동안 꾸준히 좋아서 하는 것은 자전거 타기이다. 맨 처음 자전거를 배운 것은 10살 전후였던 것 같은데, 어린이용 작은 자전거로 처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겁이 많았던 나는 뻗으면 내 발이 바닥에 닿았던 작은 자전거를 안심하고 탔던 것 같다. 그러다가 13살 정도 된 어느 날 갑자기 어른용 큰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 문제는 자전거 타는 법은 알고 있었지만, 자전거에서 내리는 법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냥 브레이크 잡아 멈추고 뛰어내리면 되는 것이었지만, 내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다는 공포에 휩싸여 차마 자전거에서 내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 당시 내가 살고 있던 소도시를 한 바퀴 돌고 교외까지 간 다음에 다시 돌아오기를 한 시간 가까이한 후에야 길거리에 있는 교통순경을 보고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교통순경이 내 자전거를 잡아 준 이후에야 겨우 자전거에서 내릴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코미디 같지만 어린 시절에는 공포체험이었던 그 자전거 타기를 경험한 후에 트라우마가 좀 남았다. 지금도 큰 자전거 타기는 약간 무서워 큰 내 키에 좀 자그마한 자전거를 주로 타고 있다. 자전거 타기는 그 후에도 계속 이어져 요즘은 집 주변을 넘어서 영산강 종주도 하였다. 내가 사는 나주에서 목포까지는 자전거길로 60km 정도인데 혼자서 하루에 다녀온 적도 있다(* 비결은 내 자전거가 전기 자전거라는 점이다. 사실 한번 충전하면 20km 정도 전기로 갈 수 있기 때문에, 40km 정도는 내 힘으로 바퀴 굴려서 간 셈이다.)
올해는 섬진강 종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코로나가 끝나면 아마 가장 많이 늘어날 것이 여행일 것 같은데, 자동차가 아니라 자전거로 4대 강 종주도 해 보고 싶다.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의 이진송 작가는 미혼인데, 결혼하지 않고 혼자 잘 살기 위해서는 '남편보다 체력이 필요하다'라고 이야기한다. 기혼인 나에게도 사실 남편보다 체력이 필요하다. 평생을 운동을 잘하는 것 하고는 담쌓고 살아왔고, 꾸준히 하는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 외에 없는 자칭 책벌레인 나에게 체력은 생존의 문제로 점점 다가오고 있다. 요즘은 체력이 안 받혀 줄 것 같아 새로운 일을 하기가 망설여질 때가 많다.
그런데 사람의 삶에는 반전이 있는 법이라서, 타고난 저질체력인 나 같은 사람도 미래의 어느 날 철인 3종 경기를 하는 철인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 궁금한 사람은 이영미 작가의 <마녀체력>이라는 책을 한번 읽어 보기를 권한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607905
글 : 이계원(공유경제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