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저트가 땅기는 날이 있다. 살다 보면 뜨거운 국밥이 필요한 날이 있고, 달달한 디저트가 필요한 날이 있다. 뭔가 지치고 위로가 필요한 날에는 당 충전이 필요하다.
김보통 작가가 쓰고 그린 <온 마음을 다해 디저트> 책에는 '대단할 것 없지만, 위로가 되는 맛'으로 다양한 디저트와 그에 얽힌 에피소드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의 책은 단순한 디저트 소개가 아니라 삶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어, 똑같은 디저트에 대한 나의 다른 추억과 같이 소개해 보고자 한다.
김보통 작가는 복숭아 병조림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복숭아 산지로 유명했던 이모집에 방학 때마다 가서 여름방학에는 과즙이 뚝뚝 떨어지는 복숭아를 먹었고, 겨울에는 이모가 병조림으로 만들어 놓은 복숭아를 먹었다고 한다. 그에게는 복숭아 병조림은 모든 부조리를 극복하는 절대적 사랑이다.
나에게도 복숭아에 얽힌 기억들이 많다. 사실 나는 복숭아 털 알레르기가 있어, 복숭아를 만지지 못한다. 누가 복숭아 껍질을 까 주어야만, 복숭아를 먹을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복숭아 털 알레르기가 있지만,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 복숭아다. 어릴 때는 엄마가 열심히 복숭아 껍질을 까 주셨다.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에게 복숭아 껍질을 까 달라고 하기가 뭣해서 복숭아를 잘 사 먹지 않게 되었다. 남편이 뭐라 그러는 것도 아닌데, 귀찮게 하는 것 같아서 뭔가 눈치가 보였다.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나서 입덧은 거의 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먹고 싶었던 것은 복숭아였다. 마트에서 복숭아를 사려고 보았더니 겨울이라서 생각보다 많이 비쌌다. 복숭아 네 개가 들어 있는 조그마한 과일 팩 하나를 들고 살까 말까 망설였다. 옆에 있던 남편이 '먹고 싶으면 사지' 그러는 것을 '너무 비싼데' 하면서 내려놓고 왔다. 사실 그 당시 월급도 많이 받고 있었고, 복숭아를 마음 놓고 못 사 먹을 정도로 가난했던 것도 아니었다. 나 스스로 그래 놓고도 나중에 임신 중에 복숭아 하나 못 사 먹었다고 가끔씩 남편에게 원망 아닌 원망을 했다.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왜곡되기 쉽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내가 친정집에 가면 엄마는 복숭아를 박스채 사놓고 껍질을 까 주신다. 남편은 엄마가 아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어릴 시절 아플 때는 복숭아 통조림을 먹었다. 감기 몸살 같은 것이 걸려 입맛도 없고, 밥도 잘 넘어가지 않을 때 황도나 백도 같은 달콤한 복숭아 통조림을 먹고 있으면 기운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나에게도 복숭아는 어떤 형태이던지 절대적인 사랑인 것 같다.
핫초코 : 과외로 배운 세상
핫초코 : 김보통 작가 그림
김보통 작가는 과외로 세상을 배웠다고 한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을 다니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과외를 했다고 한다. 대개는 평범한 가정의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희소병을 앓는 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그 학생은 병을 앓다 보니 정서가 불안정해 과외 선생님이 자주 바뀌었는데, 김보통 작가는 피카추를 그려주면서 아이를 몇 달간 웃게 해 주었다고 한다. 그 아이는 직접 핫초코를 타주기도 했다고 한다. 작가는 '과외를 통해 알게 된 세상 속 아이들이 무탈하게 자랐길, 그동안 세상은 좀 더 나아졌길 바랄 뿐이다'라고 적었다.
내 경우에는 대학교 다닐 때 몇 년간 과외를 했다. 아버지가 교사 셨기 때문에 집이 등록금을 못 낼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언니와 남동생까지 셋이 다 대학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 부담을 좀 덜어 드리고 싶었다. 주로 엄마 친구분들의 아들, 딸 들을 가르쳤다. 그런데 지금도 후회되는 일이 있다. 겨울 방학 때 집에 내려갔다가 고등학생 남학생 몇 명을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중 한 학생에게 공부도 못하고 성실해 보이지 않는다고 과외하기로 한 첫날 거절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 본 학생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 많이 미안하다. 똑같은 말도 부드럽게 해 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인생에 공부가 다도 아니고, 처음 보는 사람의 성실성을 한눈에 판단하는 것도 오만한 일이다. 실수도 있었지만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대부분 좋아했고, 시간 약속도 잘 지키고 성실하게 잘 가르치려고 내 나름대로 노력도 했다. 세월이 많이 지나 이름도 잊어버린 학생들도 있지만, 그 학생들이 모두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
과외로 엄마 친구 분이 딸을 가르쳐 달라고 해서, 고등학교 3년 정도를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 그분이 나중에 내가 노처녀로 나이 들어가니까, 본인의 친척이라고 남편을 소개해 주어서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사람의 인연은 어디로 이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베이글 : 세상을 버틸 작은 힘
베이글 : 김보통 작가 그림
김보통 작가는 살면서 가장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무기력했던 시기가 회사를 그만두기 직전이었다고 한다. 그때 종종 빵을 만들어 회사로 가져가 부서원들과 나눠 먹었다고 한다. 베이글도 만들었는데, 베이글은 생각보다 제대로 만들기 힘들어 부서원들 반응이 "이게 뭐냐?' 수준의 비관적이었다고 한다. 반응에 상관없이 빵을 만드는 일이 하루를 버틸 작은 힘이 되었고, 스콘이나 비스킷 등을 제법 그럴싸하게 만들어 내가 '뭐라도 할 수 있는 인간'이란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내 경우에는 처음으로 회사에 다니다가 체력이 다 고갈될 정도로 너무 힘들어 3년 만에 관두려고 했다. 사직서를 써 가지고 인사 담당 상사에게 갔다. 그분이 회사를 관두는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 일단 휴직을 하고 좀 쉬어 보는 것은 어떠냐고 권하셨다. 그래서 사직서를 내려다가 휴직계를 내게 되었다. 그 당시 회사에서 휴직이 가능한 사유가 2가지였다. 대학원에 가거나, 어학연수를 가는 거였다. 나는 박사학위가 있어서 대학원 진학 휴직에도 해당이 안 되었다. 1년간 어학연수 명목으로 휴직을 했다. 일단 미국에 어학연수를 가서, 포닥을 하고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날씨가 좋을 줄 알고 캘리포니아로 갔는데, 막상 가 보니 11월 초겨울이라서 그런지 아주 춥지는 않아도 주변이 회색빛으로 쓸쓸했다. 이때 자주 먹었던 음식이 베이글이었다. 베이글 전문점에서 금방 만들어 주는 베이글은 생각보다 따듯하고 맛있었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낯선 도시에서 혼자 사는 삶은 외로웠다. 먼 남의 나라에서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지 하는 생각도 자주 들었다. 1년 예정이었던 어학연수를 몇 달 만에 그만두고 회사로 다시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부서도 바꾸고 남편을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 놓았다. 처음에 힘들어서 회사를 3년도 못 다닐 줄 알았는데, 그러고도 십 년을 더 다니다가 회사를 관두었다.
지금도 지칠 때면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발라 먹는다. 잘 구운 베이글에 고소한 크림치즈를 발라서 따듯한 커피랑 먹고 있노라면 살만해진다. 조금은 세상을 버틸 힘이 생기는 것 같다.
밀크티 : 쏘리 쏘리 쏘리 쏘리
밀크티 : 김보통 작가 그림
김보통 작가는 대만으로 도망친 적이 있다고 한다. 감당도 못할 정도로 일을 많이 맡았다가, 급기야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 일하다 말고 도망친 것이다. 처음 만화를 시작할 때는 특별한 기대도 없었고, 몇 달이라도 돈을 벌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지만, 상도 받게 되고 생각보다 일도 많이 들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혼자서 다 할 수 없어 직원도 늘리고, 그러다 보니 직원들 월급도 주어야 해서 점점 더 많은 일들을 맡게 되고 나중에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감당이 안 되었다고 한다.
너무 지쳐 대만으로 갑자기 도망을 쳤는데, 도망치고도 '이번 주까지는 원고 꼭 넘겨야 한다'는 편집 담당자에게 '지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라는 거짓 문자도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대만 밀크티를 마셨는데, 당이 충전되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마음속 가득했던 조바심과 두려움도 연기처럼 흩어졌다고 한다.
내 경우에는 미국에서 처음 대만 밀크티를 마셔 보았다. 타피오카 펄이 들어간 버블티였는데, 처음에 마실 때는 그냥 그랬는데 자꾸 마시다 보니까 중독성이 있었다. 당이 충전되는 느낌이 들었다. 같이 밀크티를 마시러 갔던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자기는 한국에 돌아가서 꼭 밀크티 가게를 열겠다고 해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가 2003년이었는데, 그 뒤에 보니까 한국에도 대만 밀크티 가게가 여러 개 생겨났던 것 같다.
초코 소라빵 : 과거의 나를 위로하다
나는 가끔씩 파리바게트 같은 빵집에 가면 무얼 골라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다. 밋밋한 식빵을 사 오기도 내키지 않고, 그렇다고 달고 기름진 빵을 사 오기도 내키지 않을 때, 내 눈길을 끄는 빵은 초코 소라빵이다. 겉은 식빵처럼 단순한 맛이고, 안은 초코크림이 들어 있어 달고 기름진 느낌이 있다.
김보통 작가는 빵집에 가면 종종 초코 크림이 든 소라 모양 빵을 고른다고 한다. 어린 시절 먹어본 적이 별로 없어 그때의 결핍을 이제야 채운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십 년 전 여름밤이 떠오른다고 한다. 그때 작가는 외국에서 온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위한 통역 알바를 잠깐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음악 전공 학생들이 외국 유명 교수들에게 잠깐씩 레슨을 받을 수 있도록 학생들을 시간 맞추어 들여보내는 일도 했는데, 수업을 듣기 싫어 숨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캠프에 와서 음악 하기 싫어 숨는 아이들은 재능도 없으면서 부모들이 비싼 돈을 내고 미래를 위한 자격을 사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재능이 있는 가난한 학생들이 무료로 참가할 수 있는 행사가 있어서 전화로 참가 여부를 묻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받는 보호자들이 단호하게 참여를 거부했다고 한다. 수화기 너머엔 재능이 뛰어나도 부질없는 희망을 심어주지 않으려고 애초에 싹을 죽이려는 가난한 보호자를 둔 학생들이 있었다고 한다. 전화를 하고 나서 작가는 울음이 터졌다고 한다. 그 내면에는 어릴 때 그림에 재능이 있었지만 집이 가난해서 예술학교에 다니지 못했던 작가의 경험이 있었던 것 같다.
김보통 작가는 초코 소라빵을 만드는 법을 배워서 아이들에게 무진장 나누어 주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야 결핍을 충족하게 될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줄이고 싶고, 창 밖에 서서 초코 소라빵을 바라보기만 했던 과거의 나를 위로하고 싶다고 했다.
김보통 작가의 <온 마음을 다해 디저트> 책은 위로가 필요했던 그의 삶의 다양한 경험들이 디저트에 녹아들어 가 있다. 가끔씩 4차원을 넘어서는 그의 행동과 생각에 놀라기도 하지만, 여행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행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전반적으로 쉽고 재미있게 쓰여 있고, 특히 곁들인 그림들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