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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원 Sep 03. 2020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요즘 살을 빼려고 노력 중이다. 어릴 때부터 소녀시절을 거쳐 젊은 날 엄청 말라 있었기 때문에, 살이 찐 지금도 살찐 중년 여성이라는 내 정체성을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사실 비만은 아니고 좀 퉁퉁해져서 까칠하게 말랐을 때보다 성격도 둥글게 좋아졌다고 나름 정신승리 겸 자기기만도 좀 하고 있었다. 그런데 9월 1일 날 아침부터 언니가 엄마가 내가 요즘 살이 너무 찐 것 같다고 걱정하신다고, 살을 좀 빼라고 전화를 해 왔다. 9월 1일부터 이틀간 단식을 했고, 오늘부터는 간단히 먹고 있다. 어제 단식하면서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라는 박상영 작가의 에세이를 읽었다. 책 속에 나온 에피소드들이 재미있어서 소개를 해 보고자 한다.




박상영 작가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는 100kg이 넘는 거구의 젊은 남자 작가의 다이어트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다이어트에 대한 에세이가 아니라, 직장 생활을 하면서 욕구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먹는 것에 집착하게 되는 과정과 그 속에서 한 인간이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아주 재치 있고 위로가 되게 쓴 책이다.


몇 달 전에 오디오북으로 처음 들었을 때도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굶어서 배고픈 상태에서 종이책으로 다시 읽으니까 더 많은 감정이입이 되었다. 남자와 여자라는 차이, 나이 차이, 살아온 환경의 차이 등 공통 요소가 거의 없는데도, 에피소드 몇 개는 내 이야기가 아닌지 싶은 만큼 비슷했다.


살만 빼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회사원으로 평범하게 살고 있는 이 글의 저자에게 옆 자리 사원이 "박 대리님, 작가...라면서요?" 물어 온다. 그러면서 "네이버에 있는 프로필 사진이 옛날 사진인 것 같다고, 지금이랑 엄첨 다르던데, 살 빼시고 관리 좀 하시면 인기 많으실 거 같은데요?"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나도 강연이나 글쓰기 연재 때문에 프로필 사진을 요청받을 때가 가끔씩 있다. 가장 예쁘게 잘 나온 옛날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보내 주면서, 실제 강연에서 수강생들이 실물과 사진이 엄청 다르다고 뒷담화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작년에 아이 학교에 자원봉사 가면서 카톡으로 연락해 같이 참여하기로 한 아이반 엄마를 실물로 처음 보았다. 카톡 프로필에 나온 사진이랑 너무 달라서 한참 동안 동일인물인지 모르고 못 찾았던 기억이 났다.  뽀샵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기도 했겠지만, 내가 카톡에서 본 인물 사진과 실제로 본 사람은 너무나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한 20kg 정도 빼면 두 사람이 동일인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다리 좀 내리라고!

박상영 작가는 살이 찌니까 옛날처럼 옷을 차려입을 수 없고, 여름에는 벙벙한 티셔츠에 짧은 반바지를 입고 다닌다고 한다. 북 토크 등 행사에 많이 다니게 되었는데, 어느 날은 현장에서 친구가 보더니 '다리 내려. 박상영 다리 내리라고!'  '바지가 너무 짧아, 다리를 꼰 채로 앉으니 속이 훤히 보인다'며 친구가 긴급하게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나도 처음에 강연을 할 때에는 정장을 차려 입고 강연을 했는데, 어느 순간 맞는 정장도 잘 없고, 점점 펑퍼짐한 편한 옷을 입게 되었다. 가끔씩 행사 끝나고 인터넷에 올라오는 사진들을 보면 내가 보아도 뱃살이나 팔뚝살이 나온 게 보인다.


레귤러핏 블루진

박상영 작자는 유니클로에서 질기고 합리적인 가격의 편한 바지를 3년간 사 입었는데, 요즘 불매운동으로 선택지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국제행사이므로 정장 혹은 단정한 캐주얼을 착용할 것을 권고합니다'라는 메일을 받은 국제작가회의 행사 가면서 오래전에 사놓은 레귤러핏 블루진을 동네 수선집에서 수선해 입고 갔다고 한다. 그런데 함께 참석한 동료가 "너 왜 이렇게 스키니진을 입고 왔어. 요즘엔 레귤러핏이 대세래"라고 말해서, "이거 레귤러핏으로 나온 거야"라고 대답해서 친구는 터져나갈 듯한 종아리를 보며 빵 터졌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나도 살이 찌고 나서부터는 몇 년간 유니클로 옷만 주로 입고 있다. 유니클로만큼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원단을 사용한 편한 옷을 찾기가 힘들었다. 바지는 무조건 유니클로에서 산 신축성 좋은 청바지를 입고 다녔다. 그런데 엄마가 나를 보시더니 "너는 그렇게 달라붙는 청바지가 좋으니?"라고 물어보셨다. 허벅지가 더 살쪄 보인다고 제발 그 달라붙는 청바지 좀 입지 말고 좀 넉넉해 보이는 바지를 입으라고 아주 폭이 넓은 바지를 사 주셨다.


사실 내 방 옷장에는 과거에는 입었으나, 지금은 잘 들어가지도 않아 입을 수 없는 옷들이 많다. 언젠가는 입고 말 거야라는 신념으로 안 버리고 있으나, 다시 그 옷들을 입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박상영 작가는 100kg 넘게 살찌고 나니까, 사람들이 자기가 운동도 안 하고, 다이어트도 안 하고 있는, 뚱뚱하고 미련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작가는 새벽에 일어나 9시에 회사에 출근하기 전까지 아침에 몇 시간씩 꾸준히 글을 쓰고, 회사 다니면서 책도 몇 권 낸 노력하는 사람이다. 나름 운동도 하려고 시도했고, 다이어트도 신경 쓰는 편이다. 그렇지만 결국 살이 찐 이유는 밤에 배달앱을 통해서 기름진 음식을 시켜서 폭식하기 때문이다. 매일 밤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결심하지만 매번 야식의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나도 나 나름의 변명거리가 있다. 객관적인 수치상 절대 비만이 아니며, 큰 키를 고려하면 표준 몸무게에 가까우며 그냥 중년의 나잇살이라고 우기고 있다. 그렇지만 기존의 옷들이 더 이상 안 들어가는 것을 보면, 살을 뺄 때가 된 것 같다.


이틀간 단식을 하면서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기름진 음식들로 채워졌던 내 몸의 잉여 성분들이 좀 빠져나가면서 몸과 함께 머리도 맑아지는 느낌도 일부 들었다. 오늘 아침에는 두부를 반모 먹었고, 점심에는 복숭아를 한 개 먹었다. 짧은 단식 하기 전보다 음식 냄새에 좀 더 예민해졌다. 음식 하나하나의 고유한 맛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먹었다. 좀 더 담백하게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밤은 굶고 잘 필요는 없을 것 같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281599


글 : 이계원(공유경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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