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도서관에서 많이 빌려 보는 편이다. 2년 동안에 천권이 넘는 책을 빌려 보고는, 내가 주로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내가 빌려 본 책들을 나름 분류를 해 보았다. 거의 모든 종류의 책들을 보고 있었지만, 그래도 좀 많이 빌려보는 종류의 책들이 있었다. 그중에 한 분류가 요리책 내지는 음식에 관한 에세이 책이었다.
한동안 코로나로 인해 도서관이 문을 닫아 참 많이 아쉬웠다. 오늘 오랜만에 도서관이 다시 문을 연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는 냉큼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 왔다. 10권 가까이 빌려온 책 중에 <스님과의 브런치>라는 책을 제일 먼저 읽었다. 반지현 작가가 쓴 <스님과의 브런치>는 사찰음식을 배우는 과정을 쓴 요리 에세이 책이다. 책 중간중간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나도 공감되는 부분들이 많아 몇 가지 같이 소개하고자 한다.
나의 첫 템플스테이
이 책의 저자인 반지현 작가는 회사에서 보내 준 템플스테이에서 사찰요리를 처음 접하고, 그 맛에 반해 사찰요리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다. 내 경우에는 몇 년 전에 가족이랑 같이 진도에 가족여행을 가서 템플스테이를 처음 해 보았는데, 절에서 먹은 음식이 참 담백했었다. 밥이랑 죽, 야채 반찬 몇 가지 정도의 단순하게 나온 음식이었다. 먹고 나니까 속이 참 편안했다. 음식을 남기면 안 된다고 해서 밥풀 한알까지 알뜰하게 먹었던 기억이 났다.
그래요, 나 못해요! -> 이게 왜 되지?
반지현 작가는 사찰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오이 채를 썰다가 옆의 아주머니에게 "채 못 썰죠?" "그거 이리 줘요. 우리 딸보고 썰라고 해, 얘 조리과 다녀."라는 이야기를 듣고 멘털이 붕괴되는 경험을 한다. 그러다가 1년쯤 지나니까 채 쓰는 것을 다른 초보자에게 시범을 보일 정도가 된다. 책에서 소개된 영화 <줄리&줄리아>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전설적인 프랑스 요리 셰프인 줄리아도 처음 요리를 배울 때 하도 요리를 못해 요리학원에서 무시를 당하자 오기가 나서 양파를 테이블에 가득 쌓아 놓고 채썰기 연습을 했다. 사실 채 썰기는 요리의 기본인데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리듬을 타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되기 시작한다. 결국 모든 것이 그렇듯이 잘하기 위해서는 타고난 재능도 필요하겠지만, 기본적인 연습 시간이 필요하다. 나도 요리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이제는 채 썰기는 편안하게 되기 시작했다.
다 된 튀김에 물 뿌리기
사실 튀김 요리는 무섭다. 특히 물이 들어가면 폭발이 일어나듯이 튀기 때문에 화상의 위험도 있다. 그런데 위험한 음식이 맛있는 것인지, 기본적으로 튀김 요리는 다 맛있다. 나도 튀김 요리를 무지 좋아하는 편인데, 특히 오징어 튀김을 좋아했다. 생물 오징어는 안에 물기가 있기 때문에 튀김을 하다 보면 자주 펑하고 튀는 경우가 많아 위험하다. 엄마는 딸인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오징어 튀김을 자주 해 주셨다. 반지현 작가는 처음에는 튀김 요리를 무서워하다가 점점 잘하게 되어서 튀김 마스터가 된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튀김이 무섭다.
고명의 의미
음식의 고명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냥 주요리에 딸린 눈을 즐겁게 해 주는 부수적인 장식 정도로만 생각했다. 이 책에 스님이 "고명의 의미가 뭔 줄 아세요?"라고 물어보는 내용이 나온다. 스님은 "고명이 올라간 음식은 '내가 오로지 당신을 위해 준비한 음식'이란 뜻이에요"라고 알려준다. 일반적으로 고명이 올라간 음식을 먹으려면 먼저 수저로 흩트려 뜨리게 된다. 고명이 올라간 음식은 '아무도 손대지 않은 새 음식'이라는 함의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내 집에서도 그렇지만 식당이나 다른 사람의 집에 가서 누가 먹다 남긴 것처럼 보이는 음식이 나오면 먹기 싫을 때가 있다. 계란 지단 몇 개, 또는 참깨 몇 알이라도 고명이 올려져 있는 음식을 보면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정갈하게 음식을 대접하려는 정성이 느껴진다.
사진 출처 : 스님과의 브런치, 반지현 에세이
뿌리의 힘을 믿어요
나는 사실 야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릴 때는 튀김과 마른반찬을 좋아했다. 야채 반찬은 거의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 드니까 어느 순간 야채 반찬이 맛있어지기 시작했다. 어릴 때 엄마가 자주 해 주셨던 반찬이 연근 조림이었다. 외할머니가 사시던 곳 근처에 큰 연못이 있어 연근이 많이 났다. 연근을 자주 먹기는 했지만 사실 맛있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코피도 멎게 해 주고 몸에 좋다니까 먹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연근을 포함한 뿌리 채소들이 맛있게 느껴지고, 그 고유의 사각사각한 맛도 즐기게 되었다.
애호박의 진가
반지현 작가는 애호박 만두가 참 담백하고 맛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만두를 무지 좋아하기는 하지만 애호박만 넣은 만두는 먹어 본 적이 없다. 내게 애호박은 칼국수를 끓일 때 넣거나 된장찌개를 끓일 때 넣는 여러 가지 채소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여러 가지 부재료 중에 하나에 불과한 애호박이 주재료로 등극할 때가 있다. 애호박전을 부칠 때이다. 애호박을 동글동글하게 썰어 소금을 약간 뿌려 햇살 좋은 날 반나절쯤 살짝 말려서 계란물을 입혀 부치면 엄청 달고 맛있다. 인생도 그렇게 부재료가 주재료로 승급할 때가 있다.
사진 출처 : 스님과의 브런치, 반지현 에세이
많은 게 필요하지 않다.
저자는 사찰 김치에 빠지게 된 이유가 물김치 때문이라고 말한다. 처음에 물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김장김치 수업도 신청했는데, 김치에 아무것도 안 넣었는데 개운하고 시원했다. 그래서 스님에게 "아무것도 안 넣었는데 어떻게 맛있죠?"라고 물었다. 스님이 "아무것도 안 넣었으니까 맛있습니다."라고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음식도 그렇지만 살다 보면 뭔가를 더 많이 한다고 더 좋아지는 것이 아닐 때가 있다. 음식도 재료 고유의 맛을 살리는 간단한 요리법이 음식 맛을 극대화시키듯이, 삶도 단순한 것이 가장 좋을 때가 많다.
* 반지현 작가의 <스님과의 브런치>는 브런치 북으로도 연재되고 있으니까, 관심 있는 분들은 보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