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읽었던 책인 <시골책방입니다>의 책방 주인이 책 속에서 추천해 준 책들 중에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라는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와서 보았다. 김서령이 남긴 '조선 엄마의 레시피'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책인데, 읽어 보니까 그 글의 단아함과 문장력이 추천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내 느낌과 경험을 덧붙여 추천해 보고자 한다.
안동이 고향인 저자는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 이야기를 많이 한다. 어릴 적 아버지가 집에 안 계시던 작가의 집에 동네 처녀들과 할매들이 밤마실을 자주 왔다. 그때 입이 심심해서 부쳐 먹던 음식이 배추적이다. 배추적은 '깊은 맛'이라고 표현했는데, 생속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조금씩 속이 썩은 외로운 사람들끼리 둘러앉자 먹는 것이라고 했다. 남자들에게는 귀한 생선전이나 고기전을 주지만, 여자들에게는 그 당시 가장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인 배추적을 주었던 것 같다.
옛날에 방학 때 시골에 있는 할머니 집에 가면 할머니가 무로 전을 부쳐 드시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참 달고 맛있다고 하셨는데, 그때는 아무 맛도 없는 무전을 무슨 맛으로 먹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사실 나는 어릴 때 심심한 맛이 나는 배추적도 먹지 않았다. 전을 좋아하는 나에게 엄마는 육지와 바다에서 나는 가장 좋은 재료를 다양하게 넣은 전을 그 자리에서 바로 부쳐서 주셨다.
백석이 그리도 좋아하던 가자미
김서령 작가는 가자미 한 마리를 사면서 백석을 생각했다고 한다. 백석은 우리말의 토속적인 아름다움을 잘 살린 시인이다. 고향이 이북이어서 한동안 그의 시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미식가였는지 음식에 대한 글도 많이 남겼다. 토속적인 느낌의 그의 시와 달리 백석은 인물이 도시적으로 댄디하게 잘 생겼는데, 다양한 연애시도 남겼다. 그중에 하나가 나와 나타사와 흰 당나귀라는 시다. 그 시에 나오는 나타샤는 자야라는 여인이다.
서울에 길상사라는 아름다운 절이 있다. 대원각이라는 유명한 큰 요정을 했던 기생 출신의 자야라는 여인이 법정 스님에게 "아무 조건 없이 대원각을 시주할 테니 절로 만들어 달라"라고 해서 만들어진 절이다. 낙성식 때 기자가 "천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시주하셨는데 아깝지 않으십니까?"라고 물으니까, "그까짓 천억 원,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라고 말해서 아직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고 한다.
그런데 백석은 자야만 사랑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동시에 통영이 고향인 이화여고 학생인 란과 다른 여성도 연모했었던 것 같다. 북한에 남은 백석의 말년은 쓸쓸하고 고달팠던 것 같다. 그의 마지막 삶이 궁금한 사람은 김연수 작가의 <일곱 해의 마지막>이라는 소설을 같이 읽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명태 보푸름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김서령 작가의 고향인 안동은 바닷가가 아니라서 해산물이 귀한 지역이다. 손이 오면 외상을 차려 내어야 하는 것이 안동의 관습인데, 육고기가 없으면 손님상에 말린 생선이라도 놓아야 했다. 이때 요긴하게 사용한 것이 명태 보푸름이다. 황태를 물에 불려 닳은 숟가락으로 살살 긁어서 만드는 음식인데 단순하지만 정말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옛날에 요리학원에 한식 만드는 것을 배우러 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 배운 음식 중에 하나가 북어 보푸라기였다. 수저로 긁어 북어가 실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았다. 깔끔하게 맛도 있었지만 거기에 들인 시간을 생각하면 절대로 쉽게 생각할 음식이 아니었다. 좋은 말로 정성을 나쁜 말로 노동력과 시간을 갈아서 만드는 음식이다.
옛날에 엄마가 해 주는 음식을 먹을 때는 별생각 없이 먹었다. 이 음식을 만드는데 엄마의 노동력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내가 결혼해서 주부가 되어서 음식을 만들다 보니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잘하게 되지 않는다. 들인 노동력에 비해 나오는 아웃풋을 따지게 된다.
새근한 '증편'의 색깔 고운 자태라니
증편은 여름 떡이라고 한다. 증편은 막걸리를 발효시켜 살짝 신맛이 나지만, 잘 상하지 않아 주로 여름에 제사 지낼 때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내가 증편을 처음 먹어본 것은 대학생 때였다. 같이 수업을 듣던 선배가 자기 아버지 제사라고 증편을 사서 나에게도 먹어 보라고 주었다. 처음 한입 먹었을 때 들큰한 술맛이 느껴져 떡이 살짝 상한 줄 알았다. 그런데 자꾸 먹어 보니까 의외로 푹신푹신한 부드러운 새콤한 맛이 났다.
김서령 작가의 엄마는 그 맛을 '새근하다'라고 했다. 새근한 것은 새콤한 것과는 다른데, 신맛 플러스 단맛에 발효한 맛이 나는 것이 '새근'이었던 것 같다고 한다.
그 노랗고 발갛던 좁쌀 식혜는 어디로 가버렸나
작가의 고향인 안동에서는 엿기름에 밥을 삭혀 푹푹 급하게 달이는 건 감주, 고추와 생강을 우린 엿기름물에 무를 채 썰어 넣고 천천히 삭히는 건 식혜라고 부른다고 한다. 작가는 서울 사람들이 '감주'를 '식혜'라고 불러서 매번 헷갈렸다고 한다.
안동사람들은 그냥 식혜라고 부르는 것을 우리는 안동식혜라고 굳이 구분해 부르는데, 나도 안동식혜를 처음 보고는 그 충격적인 비주얼에 놀란 적이 있었다. 혹자는 토사물 같다고 외면한다는데, 고춧가루를 풀어놓은 벌건 색깔과 좁씰 같은 것이 둥둥 들어 있는 이물질에 놀라서 선뜻 먹기가 망설어졌었다.
김서령 작가는 '식혜의 진면목을 느끼려면 일단 맛을 봐야 한다. 삶의 모든 영역이 그렇듯 맛보지 않고 어찌 맛을 알 수 있으랴'라고 말한다.
사실 그 말이 맞다. 우리가 맛보지 않고, 경험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음식은 추억의 맛이라고도 한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을 기억나게 하는 고향의 맛이 있을 것이다. 고향의 맛에 인생의 맛이 더해져 깊은 맛이 난다.
이렇게 깊은 맛을 내는 아름다운 글을 쓴 김서령 작가가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