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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원 Mar 18. 2021

다정한 매일매일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누군가를 위해 빵을 구워 본 적이 있나요?  옛날에는 집에 손님이 오거나 누군가를 주기 위해 아주 가끔씩 빵을 굽기도 했다. 요즘은 나를 위해서 빵을 굽는다. 베이킹을 특별히 배운 적이 없어서, 아주 간단한 스콘이나 바나나빵 정도를 집에 있는 에어프라이 겸용 조그만 오븐에 굽는다. 약간 번거롭기는 하지만 금방 구운 따뜻한 빵을 차랑 같이 먹고 있으면, 그 온기에 생각보다 기분이 좋아진다.


지난주에 동네 도서관에서 백수린 작가의 '빵과 책을 굽는 마음'이라는 부제가 붙은 <다정한 매일매일>이라는 산문 책을 빌려 왔다. 오늘 도서관에 책을 반납해야 해서, 돌려주기 전에 책 속에 나왔던 빵과 책들을 내 추억들과 같이 소개해 보고자 한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7358457


당신에게 권하고픈 온도 

- 나만의 식빵


백수린 작가는 아담한 동네 빵집을 좋아한다고 한다. 한낮의 산책을 하다가 식빵만을 파는 작은 가게를 발견하고, '갓 구운 통식빵 한 덩어리를 사서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에는 귀한 것을 품고 걷는 사람처럼 마음이 기쁨으로 찰랑이기도 했다'라고 적었다.


나도 갓 구운 식빵을 좋아한다. 남편은 아무것도 안 들어 있는 빵을 무슨 맛으로 먹느냐고 묻지만, 사실은 갓 지은 밥처럼 갓 구운 빵에는 금방 만든 것의 온기가 깃든 맛이 있다. 좀 지친 날에 갓 구운 식빵을 먹고 있으면 그 온기에 힘들었던 마음이 플리고 마음이 온화해진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해 보이는 금방 만든 식빵은 사실 사기가 어렵다. 일단 빵 나오는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고, 금방 나온 식빵은 금방 팔려 버린다. 하루 지난 밥처럼 하루 지난 식빵은 그 온기를 잃어버려 딱딱해진다. 삶에서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씩 구워낸 문장들

-슈크림빵/ 캐서린 맨스필드, <가든파티>


책을 많이 읽다 보니까, 오래전에 읽었던 책 중에 세부 내용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마음에 잔잔한 느낌으로 남았던 책들이 있다. 백수린 작가가 소개한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 책도 그 옛날의 기억을 소환해 주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로라와 그 가족은 가든파티 준비로 바쁘다가, 이웃 마을에 사는 가난한 사람이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로라는 이웃의 불행에 파티를 취소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가족들은 그런 로라의 생각이 어처구니없다고 비웃는다. 엄마는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 딸에게 파티에 쓰고 남은 음식들을 남편을 잃은 불쌍한 여자에게 가져다주라고 말하고, 로라는 남은 음식을 가져다주는 행위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음식을 들고 조문을 간다. 로라는 "인생이란 게-" 어떻다고 설명할 수도 없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대해 느낀다.


백수린 작가는 '우리에게 한밤의 고요한 아름다움을 가르쳐주는 소설들이 있는 한, 우리는 밤이 아무리 깊어도 앞으로 걸어갈 수 있다'라고 책에서 말한다.


https://book.naver.com/bookdb/review.nhn?bid=6214973


온기가 남은 오븐 곁에 둘러앉아

-바나나 케이크


내가 가장 많이 구운 빵 중에 하나는 바나나빵이다. 집의 바나나에 반점이 보이기 시작하면 바나나빵을 굽는다. 레시피는 아주 간단하다. 밀가루와 계란, 버터, 우유, 베이킹파우더, 소금, 설탕 등을 잘 섞어 넣고, 잘 익은 바나나를 몇 개 포크로 뭉개서 넣은 다음 오븐에 구우면 된다. 가끔씩은 견과류를 토핑으로 얹기도 한다. 맛의 비결은 잘 익은(사실은 거의 물컹해져 가는) 바나나다. 은근히 달콤한 맛이 난다. 그래서 바나나를 많이 샀다가, 시간이 지나 다 못 먹고 버릴 정도로 검은 반점이 많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빵을 굽는다.


살다 보면 싱싱했던 것들이 시간이 흘러 삶의 상처와 흔적들이 생기고, 조금 더 지나면 악취를 내며 썩어가는 것들이 생기기도 한다. 완전히 뭉그러져서 못 먹게 되기 전에 새로운 재료를 추가하고, 뜨거운 오븐의 열기로 구워 내면 따뜻한 온기가 가득한 달콤하고 촉촉한 빵이 만들어진다. 


백수린 작가도 '마치 시간이 흐르면 상해버리는 바나나처럼, 누구의 탓이 아닐지라도 필연적으로 망가지고 상처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라고 말한다.

그림 출처 : <다정한 매일매일>, 백수린 산문, 김혜림 그림, 작가정신


삶은 바나나처럼 계속 변한다. 싱싱한 시절을 지나면 반점이 생기고 썩어간다. 그런데 바나나가 가장 달콤한 시절은 풋내가 나는 젊은 날이 아니라 한두 개씩 세월의 반점이 생기고 부드러워지는 시기이다. 다 썩어서 문들어지기 전에 삶이 주는 부드러운 위로와 따듯한 온기를 느끼면 좋겠다. 


글 : 이계원(공유경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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