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남편이 회사 북클럽에서 받은 책이라고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라는 책을 갔다 주었다. 2년 전쯤 영화로 먼저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별로 특별한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그런데 영화보다 책으로 읽으니까 훨씬 좋았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제일 재미있어서 여름 휴가 기간에 왔다 갔다 하는 중에도 틈틈이 읽었다. 영화와 비교해 보면서 책을 소개해 볼까 한다.
1.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책)
도서관 사서이며 북클럽 회원이었던 저자가 오랜 세월 동안 준비해서 쓴 책인데, 결국 마지막 완성을 보지 못하고 암으로 죽어서 동화작가인 조카가 책을 마무리해서 출간했다. 저자가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바다에 있는 영국령인 건지 섬에 갔다가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 점령하의 건지 섬에 대한 책을 보고 소설을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반적인 소설과는 다르게 편지를 주고받는 서간체 형식으로 되어 있다.
소설의 줄거리를 보면 2차 대전 당시 전쟁에 대한 칼럼을 신문에 연재했던 줄리엣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 이 글들을 모아 책으로 내고 출판 강연회도 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건지 섬에 사는 도시 애덤스라는 돼지 기르는 농부에게서 편지를 한통 받는다. 도시는 줄리엣이 가지고 있던 찰스 램의 <엘리아 수필 선집>이라는 책을 중고로 샀는데, 찰스 램의 다른 책을 구할 수 있는지 물어보려고 책에 적혀 있던 줄리엣의 주소로 편지를 보낸 것이다.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도시가 가입한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북클럽에 줄리엣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도시는 이 독특한 이름의 북클럽이 만들어진 사연을 알려준다. 나치 점령 시절에 건지 섬 주민들은 식량이 많이 부족했고, 야간에는 통행금지도 당하고 있었다. 한 주민이 몰래 숨겨 기르던 돼지를 잡아 이웃주민들을 초대해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놀았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총든 독일군에게 적발된다. 뭐하고 가는 길이냐는 질문에 엘리자베스라는 여성이 위험을 모면하려고 북클럽 모임을 하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둘러댄다. 그러면서 재치 있게 북클럽 이름을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라고 그 자리에서 만들었다.
돼지고기 구워 먹는 모임에서 졸지에 북클럽 모임이 되었는데, 주민들은 실제로 북클럽을 만들어 독서모임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나치 점령하의 전쟁 중 힘든 시기를 책의 힘으로 서로를 위로하면서 이겨 나가기 시작한다. 이 북클럽에서 다양한 책들이 소개되는데 한권씩 읽어 보면 좋은 책들이 많다. 각자의 상황에서 책이 주는 위로와 지혜를 줄리엣과 건지 섬 주민들이 주고받는 편지 속에 잘 녹아들어 있다.
줄리엣은 건지 섬 주민들과 편지를 주고받다가 건지 섬에 직접 가서 이 특별한 이름의 북클럽에 대한 글을 쓰기로 한다. 북클럽 이름을 처음 만든 엘리자베스는 강하고 주관이 분명한 여성이었다. 전쟁 중에 독일군 장교와 사랑하여 여자아이를 하나 낳았고, 도망친 어린 죄수를 보호해 주려다가 수용소에 보내져 결국 죽게 된다. 엘리자베스가 남긴 아이를 북클럽 회원들이 돌아가며 키우고 있었는데, 결국 줄리엣이 섬에 남아 사랑으로 키우게 된다.
이 책의 장점 중에 하나는 사물을 하나의 측면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나치 독일에 대해서도 수용소에서의 나치의 악랄한 점도 이야기 하지만, 그 속에 개인으로서의 선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독일 장교지만 의사였던 엘리자베스의 애인은 건지 섬 주민들을 진심으로 보살펴 주었고, 전쟁이 끝나면 엘리자베스와 같이 행복하게 살기를 꿈꾸었다. 영국인인 엘리자베스는 적국인 독일 장교와 사랑에 빠졌지만, 자기 목숨을 걸고 도망친 죄수와 유태인들을 도와주려고 했다. 결국 내편과 적, 선과 악이 이분법적으로 완전히 나누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묘사하고 있다.
구성이나 내용도 좋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도 재미있다는 점이다. 편지 형식이고 등장인물이 많아서 처음에 좀 헷갈리기는 한다. 읽어 나갈수록 곳곳에 숨어 있는 유머가 많아서 재미있고, 몰입도가 높은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2018년에 동명의 영화가 개봉되었다. 책이랑 거의 비슷하면서도 각색되어 조금씩 다른 면도 있다. 책이 편지 형식이라서 상상을 많이 하게 한다면, 영화는 등장인물과 건지 섬이라는 배경이 바로 보이니까 상상의 여지는 적다. 개인적으로는 책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 영화로 보는 것도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실제 영화가 촬영된 섬은 건지 섬이 아니고, 풍광이 뛰어난 다른 지역 여러 군데라고 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실제 건지 섬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이 섬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릴리 제임스라는 여배우가 주인공인 줄리엣 역을 맡았는데, 맘마미아 2에서 젊은 도나 역을 맡았던 배우이다. 다른 주인공들도 쟁쟁한 배우들이긴 한데, 책 속의 주인공들과 느낌이 일치하는 인물들도 있고 좀 많이 달라 보이는 인물들도 있다.
책 제목인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에서 제일 많이 상상하게 만든 것이 감자껍질파이였다. 전쟁 중에 먹을 것이 귀해 제대로 된 파이를 만들 수가 없으니까 감자 껍질로 파이를 만든 것 같은데, 영화에 나오는 파이는 별로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전쟁 중에 얼떨결에 만든 북클럽이지만 이 북클럽의 책이 주는 위안으로 건지섬 사람들은 전쟁의 고통을 이겨나가게 된다. 우리가 요즘 겪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도 어떻게 보면 3차 세계대전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세계 전쟁일지도 모른다. 언제 끝날지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책과 영화가 주는 위로를 받고 따듯한 마음으로 헤쳐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