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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원 Oct 19. 2020

깊이에 눈뜨는 시간

라문숙 작가의 글을 참 좋아한다. 몇 년 전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안녕하세요>라는 책을 읽어 보고 글과 사진이 좋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그 다음에 나온 <전업주부입니다만>이란 책도 보게 되었고, <깊이에 눈뜨는 시간>이라는 책도 보게 되었다. 최근에는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이라는 그림책 에세이도 연달아 보게 되었다. 

라문숙 작가의 책이 다 좋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 마음에 가장 와 닿았던 <깊이에 눈뜨는 시간>을 중심으로 책 소개를 해 볼까 한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654393



라문숙 작가의 <깊이에 눈뜨는 시간>이라는 책을 읽고 있으면, 단어가 명징해지고 마음이 깊어진다. 그녀의 전작을 읽었을 때도 '글을 잘 쓰고,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렇게 깊이 있는 글을 쓸 줄은 몰랐다. 


본인 이야기대로 전업주부로 몇십 년을 살아온 사람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나 철학자보다도 나은 깊이의 글솜씨를 가졌다. 50대가 넘어가는 나이가 주는 깊이일지도 모르지만, 그 보다는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많이 하고, 글을 많이 쓰 본 사람이 가지는 깊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 박완서 작가가 40의 나이에 <나목>이라는 소설로 처음 등장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나이 40에 아이 여럿 둔 전업주부가 처음 쓴 소설 치고는 스토리나 표현력이 참 뛰어났었다. 그녀는 첫 소설의 뛰어남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계속 이어진 수십 편의 책으로 증명해 내었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을 읽다 보면 표면적으로는 중산층의 속물근성처럼 보이는 내용들이 사실은 그녀가 생각하는 주제의 깊이에 도달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라문숙 작가의 책도 표면적으로는 수도권 전원주택에 사는 중산층 전업주부의 꽃 키우고 사는 아름다운 삶을 소개한 책 같다. 자세히 읽어 보면 그녀 내면의 예민한 감수성과 깊이가 느껴진다. 내 글보다는 그녀의 글이 나으므로 그녀의 말로 직접 소개하고자 한다.


먼 곳을 향했던 시선을 거두어 내 곁의 사람과 사물, 풍경에 놓아본다. 무엇이든 더해서 늘리는 대신 덜어내 가볍게 해야 할 때가 왔는지도 모른다. 모퉁이를 돌아선 것처럼, 고개 하나를 넘은 것처럼 어느 경계를 넘어온 것을, 한 시절이 끝난 것을 이제는 알겠다. 그럼에도 주방과 서재와 마당, 가족들과 몇 안 되는 친구로 이루어진 이 작은 세계에서 내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건 내게 없는 것들을 슬퍼하는 대신 내게 가능한 것들에 만족하고, 그 속에서 발견하게 될 의미들의 풍요와 아름다움을 예감할 수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도 여전히 내 앞에 놓인 날들에 설레는 이유다. 
아직은 뭔가 새로운 걸 모색하고 시도하기를 멈추고 싶지 않다. 내 세계를 조금 더 확장할 수 있기를, 삶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기를

-작가의 말 중에서


라문숙 작가의 글은 브런치에서도 볼 수 있다. 단어벌레라는 그녀의 예명처럼 명징한 단어를 쓰는 그녀의 글도 좋지만, 색감이 좋으면서 심도 깊은 그녀의 사진을 같이 보는 것도 즐겁다.


https://brunch.co.kr/@msra81#info

글 : 이계원(공유경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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