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분리하기
얼마 전 서점에서 아이와 함께 종이접기 책을 하나 사 왔습니다. 딱 봐도 아이 수준에 맞지 않는 고난도의 책이었지만 아이의 애원에 넘어가고 말았지요.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시도도 않고 저에게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다른 건 다 해도 이건 못하겠다” 거절했지만 통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동영상 강의라도 보고 싶은 심정으로 겨우겨우 접어 어설픈 결과물을 만들어냈습니다. 사진이랑 전혀 다르게 생긴 비행기를 아이는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오기가 생겼습니다. 보조선을 미리 접어 놓는 기본기부터 다시 익혔습니다. 아이가 원했던 3단 합체 샤크 전투기를 꼭 만들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 화이팅!!” 그렇게 두 시간이 흘렀을까요. 아이는 방구석에 방치되어 있고 저는 색종이와 사활을 건 씨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완성된 작품. 기쁨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엄마가 해냈어! 다 만들었어”
이 종이 접기는 누구의 작품일까요? 그건 결과물을 대하는 사람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아이가 별로 가지고 놀지 않아도 서운했고, 갖고 놀다가 3단 합체가 부서져도 화가 났습니다. 종이 접기의 시작은 아이였지만 완전히 저의 것이 되어있었습니다.
얼마 전‘화 코칭 워크숍’에서 만났던 한 어머니는 최근 가장 화가 났던 일에 대해 “아이가 1시간 동안 수학 문제를 10개밖에 안 푼 걸 보고 너무 화가 나서 시험지를 다 찢어버렸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정도로 화를 낸 것에 스스로도 괴로워했습니다. 아이는 또 그 상황이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그런데 이 가정에서 수학 문제는 누구의 문제인가요?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가 당면하는 문제들은 끝없이 많습니다. 출생 직후부터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모든 일이 문제의 연속입니다. 부모 손길을 많이 필요로 하는 영유아기에는 그것을 충실하게 잘 해결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아이의 욕구가 구체화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와 행동을 하는 아동기 이후로 접어들면 가정에서 부상한 어떤 문제가 과연 누구의 문제인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문제’란 무엇일까요. ‘부모역할훈련’(PET)에서는 문제를 ‘누군가의 욕구가 만족되지 않은 상태, 그로 인해 감정이 혼란스럽고 힘든 상태’라고 말합니다. 어떤 일 때문에 자녀가 힘들어하고 걱정하면 자녀문제이고, 부모가 더 신경을 쓰고 염려하면 부모 문제가 됩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최근 들어 게임을 하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아이는 그것에 대해 아직 어떤 불편이나 어려움이 없는데 부모가 걱정이 되어 다그치기 시작하면 그것은 부모 문제가 됩니다. 만일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와 싸웠을 경우, 부모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는 그 일로 기분이 잔뜩 상했다면 그것은 자녀문제가 됩니다.
자녀문제를 부모가 더 득달같이 달려들어 해결하려 하거나, 부모 문제를 자녀를 통해 해소하려고 하면 문제가 점점 커집니다. 관계 또한 연결이 끊어지고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누구의 소유인지 뒤섞지 말고 잘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녀문제는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의 경우 아이가 종이접기를 힘들어하더라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도록 격려해야 했습니다. 못하겠다고 포기하더라도, 고난도의 책을 골랐던 이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물어서 아이가 다음에는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도울 수 있었습니다.
부모 문제는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부모의 내면에서 충족되지 못한 어떤 욕구 때문에 그것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성급히 화를 내거나 아이를 바꾸려 하지 말고 ‘왜 이게 나에게 문제가 되는가?’, ‘이걸 통해 내가 얻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스스로 직면하고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험지를 찢었던 어머니에게 수학 문제를 빨리 푸는 것은 왜 그렇게 중요했을까요? 문제의 소유자만이 풀 수 있는 답입니다.
부모 자녀의 관계에서는 문제 분리가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친구가 놀아주지 않는다고 슬퍼하는 아이를 보면 모든 부모의 가슴은 쿵하고 내려앉습니다. 소외감과 외로움이 얼마나 깊은 슬픔인지를 어른인 우리가 더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양쪽 다 문제를 소유한 경우에는 문제를 더 많이 가진 쪽을 우선적으로 공감하고 해결을 도와야 합니다. 부모의 감정을 투사해서 과잉 대응하거나 오히려 아이에게 화를 내고 비난하는 것을 막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너무나 사랑해서 아이에게 어떤 문제도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에 조금의 문제라도 생기면 대신 해결해주고 싶어 합니다. 아이 역시 그것을 바라는 것처럼 보일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는 것은 다음에 비슷한 문제에 부딪쳤을 때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자신감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엄마, 도와주세요”는 “엄마, 내가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세요”의 다른 말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