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만난 물고기! 신이 나서 등교하는 아이의 모습이다. 초등학생 시절은 일요일 오후만 되면 직장인증후군처럼 한숨을 내쉬곤 했었다. 등굣길 아이의 표정은 무채색으로 기억된다. 재미난학교에 오고 나서부터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아이의 표정은 총천연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침 등굣길 얼굴은 숨길 수 없는 신난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일요일 한숨은 당연히 사라졌다. 아이 얼굴에 생기가 도니 그걸로 난 만족했다. 집안에서의 사소한 문제들은 대세 앞에 문제가 못 되었다! 아이가 웃으며 등교하는 변화만으로도 더 이상 바랄 게 없게 됐다. 학교 적응에 대한 걱정도 할 것이 없었다. 신이 나서 학교에 가는 아이에게 무슨 걱정이 필요하겠는가?
재미난학교에는 온라인 카페가 있다. 학교 소식이나 학년별 수업 후기가 자주 올라온다. 생활(담임) 교사별로 후기를 올리기 때문에 일주일이면 금방 여러 개 수업 후기가 쌓인다. 잠들기 전 온라인 쇼핑을 하듯 후기들을 주르륵 살펴본다. 일주일간 수업 후기를 하나의 콘텐츠로 업로드하다 보니 글과 사진의 분량이 꽤 많다. 재미난학교가 유독 그런 건지는 몰라도 소통을 정말 중요시 생각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막상 내 아이가 속한 중등 수업 글이 올라오자 한 자 한 자 정독해 가며 사진도 확대해서 보게 됐다. 사진만 70~80장 정도 된다. 꼼꼼히 보고 나니 시간이 꽤 지났다. 아이의 수업 후기라는 것을 이렇게 콘텐츠로 접하니 생소하고 신기하기도 재밌기도 했다.
입학 후 첫 달은 이렇게 학부모의 학교생활(?)을 경험했다. 두 달째. 난 재미난학교 온라인 카페 펜이 되었다.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엿볼 수 있다는 새로운 호기심이랄까? 자기 전 카페 방문은 필수 코스가 되었다. 오늘은 또 어떤 후기가 올라왔나? 중간에 우리 아이 사진은 껴있으려나? 댓글은 뭘로 달까? 뭐 이런 생각으로 잠들기 전 흥겨운 방문 코스가 된 것이다. 우연히 후기 작성 시간이 눈에 들어왔다. 오후 9시. ‘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후기들도 확인했다. 오후 11시. 대부분 저녁, 밤 시간에 작성돼 있었다. 주말에 작성된 후기들도 꽤나 있었다. 내가 침대에 누워 웹 서핑하듯 소비하던 후기가 교사들에겐 야근이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한번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니 줄줄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기 시작했다. 매월 정기적으로 저녁 7시 반에 열리는 학부모 반 모임과 상설위원회 모임. 전부 야근이었다. 재미난학교라는 특수성 정도로만 여겼기 때문일까? 당연하게 생각했었다. 사실 생각조차도 안 해봤다. 지금 생각해 보니 재미난학교 교사들의 노동 강도는 꽤 높은 편이다. 먼지 같은 양심이 가책이란 헛기침에 뿌옇게 흩어졌다.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그만 보기로 했다. 숙연한 마음이 어느 한 귀퉁이에서 소심하게 웅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야근수당은 잘 챙겨주나?’하는 생각과 불편한 마음을 안고 잠을 청했다. 내가 잠을 청한 이 시간에도 어떤 교사는 카페에 후기를 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번 카페 후기에 신경이 쓰이니 자꾸 시간을 확인하게 됐다. 우연찮게 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아이는 잘 지내는지? 신입 가정의 입장에서 재미난학교가 어떻게 느껴지는지? 물어왔다. 기회를 엿보다 화제를 전환했다. 교사들 업무 강도가 높은 편 같고, 업무 시간 외 일들이 참 많은 것 같다며 수고가 많으시다고 했다. 교사들은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 아이들 웃는 얼굴에 모든 피로가 녹는다고 했다. 대안교육에 발을 담글 때 각오했다고 한다. 대단치는 않지만 일종의 사명감도 있다고 했다.
알아본 바로 교사들의 수당은 없었다. 몇몇 학부모들에게서 현재 비인가 대안학교들의 한계점이라고 들었다. 그러면서 교육부 인가 문제는 대안학교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 수 있다고도 했다. 인가를 받으면 여러 형태의 보조금을 지원받을 순 있지만, 제도권의 기준을 맞춰야만 하고 결국은 공교육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막연하게 들리던 사명감이라는 말이 귀에 날아와 박혔다. 나는 사실 대안교육을 잘 모른다. 뚜렷한 교육관을 가지고 재미난학교에 온 것도 아니다. 그저 아이가 스트레스를 덜 받고, 덜 힘들어하길 바랐다. 재미난학교가 그런 곳이라 생각했고, 아이는 지금 신나게 학교를 다니고 있다. 아이가 신나는 만큼 교사들도 신이 났으면 좋겠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에 따른 보상이 제대로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수당은 단순히 돈의 교환관계가 아니다. 노동의 가치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다. 보상은 동기부여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근로 환경은 곧 지속가능성의 문제이다. 사명감이라는 선의에 기대서는 어느 조직이나 단체도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재미난학교에 더 바랄 게 없던 나는 한 가지 바람이 생겼다. 교사들의 근로 여건이 더 좋아졌으면 한다. 비단 우리 학교뿐 아니라 대안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들의 근로 여건도 함께 말이다. 거창한 목표까지는 생각해 본 적 없다. 오히려 내 아이를 위한 욕심일 뿐이다. 아이가 즐거운 학교인 만큼 교사들에게도 그만한 여건이 제공되었으면 하는 마음일 뿐이다. 제도권의 그늘에서 묵묵히 사명감을 다하고 있는 대안교육 교사들이 영화 속 히어로인 ‘어둠의 기사’들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