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급 사피엔스 Oct 27. 2024

토토와 알프레도

재미난여행은 자판기 여행이 아니다. 수학여행처럼 딱딱 정해진 여행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교사들이 직접 교통편과 숙소, 주변 병원, 안전시설, 식당 등을 미리 점검차 답사를 떠난다. 참 열 일하는 교사들이다. 여행 일정이 길면 1박 2일 일정으로도 답사를 간다. 그래서 답사 일이 금요일로 정해져 있고, 한날한시 교사들이 동시에 출발한다. 최대한 주말을 끼고 갈려고 하는 것이다. 왜? 평일은 아이들 수업을 해야 하니까. 그럼 금요일 동시에 사라지면 아이들 수업은 누가 하나? 이럴 때 학부모 자기 수업이라는 것을 한다. 학부모들이 자신의 취미를 아이들에게 체험 수업 형식으로 열어주는 것이다. 떡 만들기, 비즈 공예, 레크리에이션 등등. 학부모 자기 수업에 나도 지원을 했다. 학부모 신청이 조금 부족하다고 들었지만, 사실 호기심이 더 많이 작용했다. 무슨 수업들이 어떻게 열릴까? 직관하면서 함께 경험해 보고 싶었다.


처음은 쉽게 마을 산책이나 놀이터를 생각했는데, 예전에 풍선아트를 잠깐 했던 게 떠올랐다. 나도 뭔가 프로그램을 해보자 생각으로 풍선아트를 한다고 하니 와이프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이내 검색을 하더니 삐에로 복장 사진을 내밀었다. 이걸 입고하라는 것이다. 풍선 아트만으로는 뭔가 부족하고 아이들에게 인기가 없을 것이라고 협박성 멘트를 날렸다. 나이 든 칙칙한 아저씨가 풍선을 만들어주는데, 아이들이 퍽이나 좋아할 것이라고 몰아붙였다. 삐에로 복장이라도 입어야 아이들이 신이 나서 풍선을 만들 거라고. 와이프는 논리에 강했고, 난 설득되어 굴복했다. 같이 옷을 고르기 시작했고,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 맥도널드 풍의 옷과 빨간 가발 세트를 구매했다.


드디어 자기 활동의 날. 미리 만들어둔 몇 가지 풍선과 삐에로 복장을 챙겨 들고 아이와 함께 학교로 향했다. ‘사람들이 나를 관종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다른 학부모들은 날 어떻게 쳐다볼까?’ 아주 약간의 염려가 고개를 들었다. 학교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바글바글했다. 등교 시간에 학교에 와본 것은 처음이었다. 교사의 안내를 받고 잠깐 대기하다가, 곧 시작한다는 말에 옷을 갈아입고 정해진 장소로 향했다. 가는 도중 나와 마주친 교사들은 하나같이 날 보며 흠칫흠칫 놀래며 웃었다.


반응은 예상외로 좋았다. 특히 저학년 초등 아이들의 호응이 폭발적이었다. 순간 와이프에게 감사의 인사를 맘속으로 전했다. 풍선칼, 백조 왕관, 강아지, 하트뿅뿅을 같이 만들었다. 사실상 거의 내가 만들고 아이들은 줄을 서서 기다린 형국이었지만. 그렇게 아이들과 즐거운 오전을 보내고 점심시간이 왔다. 급식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데, 빨간 가발을 벗을까 잠깐 생각하다 계속 쓰고 있기로 했다.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고 싶었다. 식사 후 아이들은 학교 마당에서 공놀이, 수다 떨기, 우르르 몰려다니기, 숨바꼭질 또 교실에선 낮잠 자기, 보드게임 등 정말 신나게들 점심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무리 지어 몰려와 가발도 써보고, 염색을 시켜준다며 날 붙잡고 염색 놀이도 했다. 평소 궁금했던 아이들의 일상을 맘껏 들여다볼 수 있었다.


어찌어찌하여 오후 자기 활동도 마무리됐다. 만족스러웠다. 아이들과 좀 친해진 느낌? 아이들이 껴안아 주기도 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기도 하며, 내 무릎에 앉아 속닥속닥 이야기도 나눴다. 얼굴도 잘 몰랐던 아이들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옷을 갈아입고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가려는데, 풍선을 같이 만들었던 저학년 꼬맹이가 갑자기 “늘보~! 늘보~!(내 별칭)”를 크게 외치며 이리로 오라고 다급하게 손짓을 했다. 그리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뭔가를 부스럭부스럭 찾더니 사탕을 불쑥 내밀었다. “응!” 나를 빤히 보면서 고개를 크게 두 번 끄덕였다. 진지하면서도 동그랗게 뜬 눈으로 ‘오늘 수고했어! 내 소중한 사탕을 선물로 줄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사탕을 받으며 “우와~!” 하며 씨익 웃었다. ‘응!’과 ‘우와~!’ 만으로도 우린 서로의 마음을 충분히 교감하고 있었다. 헤어질 때도 끝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탕을 입에 물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똘망똘망한 꼬맹이 친구가 한 명 생긴 느낌? 마치 영화 시네마천국에 등장하는 알프레도와 토토 같은 사이라고 할까? 사탕을 쪽쪽 빨며 ‘40년의 나이차를 뛰어넘은 친구가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내게 힘든 일이 생기면 그 똘망똘망한 꼬맹이 친구가 “늘보 힘내! 괜찮아~”라고 토닥거리며, 고개를 두 번 끄덕여 줄 것만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