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가게?” 중학생처럼 앳돼 보이는 일면식도 없던 녀석이 내게 던진 질문이다. 약간 황당과 당황 사이에서 “어…어?”라고 대꾸하며 주춤했다. “집에 먼저 가게?”라고 재차 나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내가 잘 못 들었나 싶었지만, 두 번째 질문은 분명히 내게 반말로 묻고 있었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 싶어, 몸이 조금 안 좋아 차에서 쉬었다 온다고 말했다. 이날은 재미난학교 입학 전 신입 가정들과 재학 중인 학부모들 그리고 학생들을 처음 본 환영회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와이프에게 이 말을 해줬다. 걔 좀 이상한 것 같다고. 아니면 예절교육이 필요한 것 같다고. 와이프가 크크크 웃으며 말했다. 재미난학교는 평어를 사용한다고. “평어?” 와이프는 입학설명회 때 이미 설명한 건데 내가 까먹었다고 했다. 평어. 말 그대로 높고 낮음이 없는 수평적인 언어다. 재미난학교는 교사와 학생들이 평어를 사용하고, 다른 학부모들에게도 역시 평어를 사용한다. 교장도 예외가 아니다.
“영어에 반말이 없는 이유와 비슷하군” 이렇게 말하자 와이프가 물었다. 영어가 존칭이 없지 왜 반말이 없냐고. 나는 피식 웃으며 생각해 보라고 했다.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줄곧 평어를 사용했던 재미난학교 학생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교사나 학부모들에게 평어를 사용했다. 나는 이점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언어는 지향하는 힘이 있고, 그것은 무의식 속에서라도 분명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수평적 관계라는 것은 평등한 언어 사용에서부터 출발하기 나름이다.
또 하나는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는다. 별명을 부른다. 별명은 교사나 학부모 누구나 가지고 있다. 때문에 아이들은 어른들도 친구처럼 부르고 친구처럼 대한다. 우리 아이도 중등 입학 후 한 달 정도는 연두 선생님이라고 했다가, 금방 적응해 연두라고 불렀다. 교사들에 대한 어색했던 존칭 사용도 금세 사라졌다. 평소 아이에게서 듣는 학교 이야기를 통해 교사들과 살갑게 속닥속닥 거리고 친구처럼 장난도 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려볼 수 있었다.
평어와 별명. 나는 이 두 가지가 재미난학교를 상징하는 대표적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점이 매우 자랑스럽기도 하다. 재미난학교는 정해진 수업시간표가 없다. 때문에 매 학기 초 아이들과 교사들이 서로 토론하고, 각자 배우고 싶은 수업을 발표하고, 투표를 통해 반별 수업시간표를 함께 정하는 독특한 문화도 있다. 하지만 이 또한 그 바탕에는 평등한 언어와 별명이라는 문화가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영어에 반말이 없는 이유. 정확하게는 반말이 없는 것인지 존칭이 없는 것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영어가 우리의 언어처럼 상하 수직적 체계로 구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언어 차이를 우리 관점에서 존칭이 없다고 해석할 따름이다. 반대로 해석해 보면 오히려 영어는 반말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고, 모두에게 존칭을 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재미난학교의 평어도 모두에게 존중의 의미를 담고 있는 또 수평적 관계를 추구하는 재미난학교의 이상적인 문화라고 뽐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