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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사피엔스 Oct 27. 2024

리틀 유시민

리틀 유시민. 나에 대한 와이프의 평가다. 지금의 유시민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 옛날 독설가 시절의 유시민을 두고 한 말이다(유시민작가님 죄송하고 존경합니다). 내가 말하면 맞는 말도 참 네 가지가 없게도 뱉어내는 신묘한 재주(?)가 있어서, 아무도 내 편을 들어줄 수 없다고 와이프는 종종 핀잔을 줬다. 또 유별난 까탈스러움은 피곤을 넘어 ‘퓌곤’하다고 말했다. 어찌 생각하면 ‘누구나 이 정도는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텐데 그 강도에 차이를 꼬집고 싶다. 가끔 시비가 붙으면 나이를 불문했다. 상대방이 반말을 하면 같이 반말을 하고, 상대방이 화를 내면 똑같은 강도로 받아쳤다. 나이에 대한 에누리 따위는 없었다. 소위 우스갯소리로 떠도는 ‘내가 집에 너 같은 조카가 있어!’ 이럴 때면 ‘나도 당신 같은 삼촌 있어!’ 이런 식이다. 와이프는 이럴 때면 재빨리 숨는다.


와이프는 내가 직업을 잘 못 택했다고 종종 말했다. 경찰서 취조 업무가 찰떡궁합이라며 말이다. 무언가 앞뒤 맥락의 흐름이 잘 연결되지 않으면, 꼬치꼬치 집요하게 캐묻는 구석 때문이다. 실세 없는 질문은 덤이다. 무언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으면 어김없이 질문 세례를 퍼붓는다. 정보가 뒤죽박죽 섞여 있을 때면, 1번은 뭐고, 2번은 뭐고, 3번은 뭐고… 이런 스타카토 방식으로 구분해서 파헤쳐 간다. 와이프는 귀를 막고 동시에 내 입을 틀어막는다. 이럴 때면 가끔씩 억울하다는 듯 항변을 할 때도 있다! 꽤나 진지하게도 ‘질문은 죄가 아니다!’고. 모르면서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이야말로 문제고, 아는척하는 문화가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다고 토로했다. 와이프는 총체적으로 볼 때 나를 ‘트러블메이커’라고 명명했다.


재미난학교에 오면서 나는 한 가지 걱정을 하게 되었다. 대안학교 학부모들은 유별난 사람들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많고 많은 국공립학교 대신 대안학교를 택했다는 건 그만큼 유별나다는 반증이라 생각했다. 이런 유별난 집단에서 관계를 잘 유지하며 지낼 수 있을까? 학부모들 사이에 뭔가 조그만 불꽃이라도 튀면, 만만치 않은 유별난 학부모들과 트러블메이커인 내가 서로 활화산처럼 활활 타오르는 국면을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재미난학교는 또 학부모 간 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 만날 일이 종종 생긴다. 와이프도 이런 점을 걱정하며, 제발 조용히 그리고 질문이나 의견을 최대한 자제하길 내게 부탁했고 또 엄중 주의를 줬다.


사람이 변하는 건 참 어렵다. 몇 개월이 지나는 동안 자기 검열처럼 스스로 입을 막는 것이 기나긴 인고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와이프는 그 와중에도 내게 할 말은 다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아슬아슬한 장면도 종종 있었다며 훈계를 늘어놨다. 그사이 내가 지켜본 학부모들의 모습도 어느 정도는 그림이 그려졌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분명 유별난 것 같긴 한데, 뭐라고 딱 꼬집을 순 없다는 것이다. 유별난 느낌적인 느낌이라고나 할까? 무언가 숨겨진 패턴 같은 것이 있는데, 뭐라고 단정 지어 설명하긴 어려운, 마치 '고양이는 이런 거야!'라고 말로 딱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어느 날 저녁 한 학부모가 이런 나의 속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땅콩 껍질을 까며 말했다. 여기 사람들도 다 똑같다. 대치동 학부모나 여기 학부모나 결국은 다 자식 걱정하며 사는 부모들일 뿐이라고. 각자의 사정과 가치관이 조금씩 다를 뿐이라며 맥주를 홀짝였다. 며칠 후 와이프와 재미난학교로 대화를 나누다 이날 이야기를 꺼냈다. 와이프는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적 학부모들을 전혀 만나 본 적도 없던 내가 왜 재미난학교 학부모는 유별나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꼬집어 설명할 수 없었던 느낌적인 느낌이 떠올랐다.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와이프는 말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시절 내가 학부모들과 교류가 있었다면, 그때도 나는 그 학부모들이 유별나게 보였을 것이라고. 생각해 보니 나는 아이의 학교생활은 물론 학부모들 간의 만남, 학교 활동에 대해서도 아무런 경험이 없었다. 내가 어떤 비교 군이나 기준도 없이 막연한 편견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식 걱정하며 사는 부모들일 뿐이라는 말이 이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 역시도 편견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면 유별난 학부모라는 것을. 실상은 단지 자식 걱정하며 사는 평범한 부모라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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