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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Im Jun 07. 2021

아빠 눈에는 조막만 한 내 손

제 키가 무려 175 입니다만...


엄빠님이 주말 동안 남해에 오셨다! (부모님이라고 쓰고 싶지만 영 입에 붙지 않아 평소 습관대로 쓴다)


평소 어딜 가든지 운전대는 아빠와 남동생 몫이었다. 엄빠 차는 내차 (한쪽 파인 아반떼) 보다 커서 감을 못 잡을 거라며 절대 나에게 차키를 내어준 적이 없었다. 다 같이 외식을 할 때마다 '아빠~ 내가 운전해줄 테니까 걱정 말고 엄마랑 소주 짠짠 하셔! 나 완전 잘해!!!'라고 너스레를 떨면 화들짝 놀라는 모습 때문에 일부러 더 놀리는 재미가 있었다.


남해에 도착한 아빠는 장거리 운전+ 평소 좋지 않은 내 허리+ 구불구불한 해안도로 쓰리콤보에 걱정을 평소보다 300% 더 하면서 직접 운전을 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지난 몇 달간 가게 이전과 내 집 이사를 도우며 피곤해하는 모습을 본 뒤라 이번 짧은 여행만큼은 내가 편하게(?) 모시고 싶었다.


'뒷자리 타면 울렁거려서 차멀미하느라 더 힘들어~ 내가 그냥 운전할래'

차멀미를 핑계로 공항 픽업부터 서울로 돌아가는 날까지 2박 3일간 운전& 가이드를 전담했다. 이미 3주간 남해에 머물며 해안도로에 익숙해진 터라 나름 안정적인 코너링과 드래프트(?)를 보여드렸고 아빠는 그제야 마음을 놓는 듯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내 뒷자리에 앉은 아빠가 혼잣말처럼 툭 꺼낸 한마디를 듣고 나는 겉은 웃고 속으로는 울었다.


'아이고~ 저 조막만 한 손으로 운전을...'

세상에 조막만 한 손이라니. 내 나이 서른다섯, 키 175에 웬만한 남자들 피지컬 다 이기는 비주얼인데... 아빠 눈에는 내가 운전하는 게 그렇게나 마음이 쓰였나 보다.


조막만하다: 어떤 물체에 대해서는 주먹만큼 작다는 뜻이며, 사람에 대하여 묘사할 때 사용할 때는 주로 그 사람이 어린것을 강조할 때 쓰이며, 종종 몸집이 작다는 것을 얘기할 때 나온다. (네이버 사전 발췌)


거기에 엄마는 한술 더 떠서 '손도 작고 팔다리도 가늘고.. 태어날 때부터 손톱이 꼭 네일샵에서 손질받은 것처럼 얼마나 이뻤는지..'라고 했다. (평소 남들한테 손, 팔다리 칭찬을 많이 들어온 터라 예쁜 건 알겠는데... 아니 그래도 그렇지 조막만 한 손으로 운전이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좀 오버인 것 같은데.)


'아빠~ 내 덩치에 그렇게 말하면 내가 키 150대였으면 어쩔뻔했어? 운전시키지도 못했겠네~' 농담하자 아빠는  '아니~ 뒤에서 이렇게 보는데 머리 꽁지랑 손만 조금씩 보이잖아.' 라며 끝까지 운전하는 나를 안타까워했다.


엄빠는 내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내 허리와 피로를 걱정하는 것도 모자라 남해에 머무는 2박 3일 동안 (너무 잘 먹고 잘 자고 모든 지인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잘살고 있는) 내 걱정을 쉴 새 없이 하다가 갔다.


'너 안 가본 곳 가자~ 뭐하러 갔던 데를 또가.'
'먹을 거 하나도 없네~ 마트 들려서 너 먹을 거 좀 사다 넣어 놓자. 오늘은 삼겹살 구워줄까?
'피곤하니까 알람 맞추지 말고 푹 자고 내일 천천히 움직여.'
'해지면 운전 피곤하니까 얼른 가서 쉬어.'
'아빠가 맛있는 거 사줄게~' '그거 내지 마 여기 이 카드 써'


80세 할머니 눈에는 50세 중년도 애기라더니... 결혼 후 만 8년 만에 태어나 발이 땅에 닿아본 적도 없이 가족들 품에서 어화둥둥 내 새끼~ 하며 컸다는 나도 엄빠 눈에는 평생 애기인가 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미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 첫 회사를 다니던 사회초년생 시절에도 아빠는 거의 매일 차를 끌고 퇴근한 나를 데리러 왔었다. 지하철 역에서 집까지 마을버스로 한번 환승을 해야 했는데 그 배차 간격이 길었었던가... 10년 전 일이라 이제는 가물가물하지만 새벽 두 시에 회식 마치고 온 나를 데리러 엄빠 두 분이 함께 나와 역 근처 주유소 앞에 차를 대고 기다렸던 날만큼은 아직도 또렷하다.


그렇게 예쁜 남해바다 보여 드리고 싶다는 내 욕심에 먼길 온 엄빠는 피곤한 와중에 '잘한다, 고맙다, 이쁘다, 장하다' 내 칭찬만 실컷 하고 우쭈쭈 해주다가 짧은 주말을 보내고 올라갔다.


한 달 살기 끝내고 서울 올라가서 한집에서 오랜만에 부대끼고 지내면 또 나는 이 애틋한 마음을 잊고 툴툴대며 가족들에게 온갖 성질을 다 부릴 테지. 그래도 연말에 호주 출국하는 날까지 최대한 같이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엄빠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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