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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쾀 Nov 28. 2019

0월 0일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감기에 걸렸습니다. 1년에 한 번만 걸리는 감기는 

유독 겨울의 문 앞을 굳건히 지킵니다. 

마른기침을 합니다. 때로 기침은 멈추지 않고

아직 더운 공기를 몇십 초 동안 뱉어냅니다. 


미련으로 가득 찬 몸속에 새로운 공기를 

담아둘 공간이 없어서일까요.

겨울에는 지난 시간의 후회와 새로움에 대한 희망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회색 냄새가 납니다. 

갑자기 꽉 막힌 고속도로입니다.  

앞으로는 가야 하지만 움직일 수 없고.

되돌아갈 순 더더욱 없고. 


0월 0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미련을 정리하고 시작을 준비할 수 있는 

무색의 깨끗한 물 같은 갑작스럽지 않은 하루. 

0월 0일에는 아침 일찍 일어날 겁니다. 

절반도 채우지 못한 다이어리의 맨 앞장을 펼치고

조금은 울음을 터뜨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후에는 새로운 다이어리를 사러 나갈 겁니다.

어차피 이 다이어리도 그 값어치를 못하겠지만

모든 시작은 희망차고 빛날 가치가 있습니다.


주위를 돌아보니 기침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사람들도 지나간 날에 대한 미련으로 

이루지 못한 꿈들로 가득 차 있을까요.

우리에게는 감기약이 필요한 게 아니라

끝과 시작 사이에 그저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시는 어렵다. 그래도 또 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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