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순간
어렸을 때 나는 얼굴이 굉장히 잘 빨개지는 아이들 중 하나였다.
누구나 기억을 잘 더듬어보면 발표할 때마다 얼굴이 빨개지고, 선생님이 질문하면 얼굴이 새빨개지는 아이들이 있을 텐데, 그게 바로 나였다. 얼굴이 너무 빨개져서, 피나는 거 아니냐고 우스갯소리까지 들어봤으니까.
얼굴이 빨개지는 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갑자기 발표를 시키니 당황스러워서, 사람들의 시선이 나한테 집중돼서, 친구가 화나게 만들어서. 까먹고 못한 숙제가 떠올라서, 준비물을 집에 놓고 와서. 얼굴 빨개졌다고 놀려서, 그냥 날씨가 더워서 등등.. 이유가 많은 만큼, 내 얼굴도 시도 때도 없이 빨개졌다. 어린 마음에 얼굴이 잘 빨개지는 건 나에게는 콤플렉스가 되었다. 누가 딱히 그걸 가지고 놀리지 않아도, 괜히 싫었다. 얼굴이 빨개지면 부끄러워서 더 빨개졌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은 얼굴이 잘 안 빨개진다. 인생 짬이 차서 그런지, 발표를 하거나, 화가 나도 얼굴은 잘 안 빨개진다. 어쩌면 나 자신을 잘 숨기는 법을 배운 건가 싶다.
얼굴이 빨개진다는 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순간
얼굴이 빨개진다는 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순간이다. 숨기고 싶었던 부끄러운 마음, 언젠간 알아주었으면 하는 짝사랑, 괜한 죄책감까지도. 어렸을 땐 이런 감정들이 여과 없이 얼굴에 담겼었는데. 드러내고 싶든 숨기고 싶든, 보이지 않는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 가끔은 순수하리만큼 얼굴이 빨개졌던 과거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주변 친구들 중엔 아직도 얼굴이 잘 빨개지는 친구들이 있다. 티가 아주 팍팍 난다. 화가 난 티, 부끄러운 티, 좋아하는 티. 요즘엔 그런 말이 있더라. 티를 내라고. 좋아하면 좋은 티, 싫으면 싫은 티를 내라는 말이다. 굳이 좋다, 싫다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 기분 안 상하게 눈치껏 돌려 표현해야 한다. 얼굴 빨개지는 것만큼, 적절한 방법이 또 있을까 싶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순간.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여주는 순간.
나에겐 그 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