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감기에 걸렸습니다. 1년에 한 번만 걸리는 감기는
유독 겨울의 문 앞을 굳건히 지킵니다.
마른기침을 합니다. 때로 기침은 멈추지 않고
아직 더운 공기를 몇십 초 동안 뱉어냅니다.
미련으로 가득 찬 몸속에 새로운 공기를
담아둘 공간이 없어서일까요.
겨울에는 지난 시간의 후회와 새로움에 대한 희망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회색 냄새가 납니다.
갑자기 꽉 막힌 고속도로입니다.
앞으로는 가야 하지만 움직일 수 없고.
되돌아갈 순 더더욱 없고.
0월 0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미련을 정리하고 시작을 준비할 수 있는
무색의 깨끗한 물 같은 갑작스럽지 않은 하루.
0월 0일에는 아침 일찍 일어날 겁니다.
절반도 채우지 못한 다이어리의 맨 앞장을 펼치고
조금은 울음을 터뜨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후에는 새로운 다이어리를 사러 나갈 겁니다.
어차피 이 다이어리도 그 값어치를 못하겠지만
모든 시작은 희망차고 빛날 가치가 있습니다.
주위를 돌아보니 기침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사람들도 지나간 날에 대한 미련으로
이루지 못한 꿈들로 가득 차 있을까요.
우리에게는 감기약이 필요한 게 아니라
끝과 시작 사이에 그저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시는 어렵다. 그래도 또 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