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로맨틱한 순간은 완벽한 타인과 함께 찾아왔다.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오는 기타 줄의 울림. 스틸 스트링이 만들어 내는 그 단단한 음들을 들으며 창문으로 툭 떨어지는 빗방울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나뭇가지가 창에 닿아 금방이라도 꺾일 것 같았다. 잠시 창문을 열고 가지를 반대 반향으로 옮길까 하다가 비가 안으로 들이치는 게 싫어 생각을 접고 만다.
내 앞의 타인과 그 품에 안겨 있는 기타는 일정한 음계에 다다르고 나서야 조용해졌다. 얼굴의 여드름 자국이 흉측스럽기보다 남자답다고 생각했다. 짐을 나르는 일을 하는 그는 손이 투박했고 거칠었다. 내 가슴을 만질 땐 몰랐는데 내밀어진 손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는 남자의 손바닥을 위로 하자 오래된 흔적들이 드러났다. 손에 웬 굳은살이 저리 많을까 싶었는데 기타를 치는 손이란 걸 딱딱한 손끝을 만지며 새삼 실감했다.
말도 행동도 무뚝뚝한 이 남자가 연주하는 기타라니.
다행히 일렉 기타가 아니라는 점에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안 추워?”
팬티 한 자락만 걸친 그를 보고 물었다.
“더워, 나 원래 열이 많아.”
계속해서 나뭇가지가 신경 쓰였지만 창문을 열면 추울 거 같단 생각에 나는 다시 생각을 접었다.
“다 됐다, 들어볼래?”
의자 위로 두 무릎을 세워 앉았다. 다리 사이로 차가운 기운이 올라와 커다란 티셔츠를 발목까지 쭈욱 잡아당겼다. 티가 팽팽하게 당겨져 늘어났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내 옷이 아니니 조금은 함부로 다뤄도 될 것 같았다.
엉클어 붙은 머리카락 끝을 손가락으로 조금씩 풀어내고 있는데 공간을 울리는 뜻하지 않은 음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저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음이, 지금 이 남자가 연주하는 곡이.. 얼토당치도 않아서.
타인과 함께 할 때 벌어지는 예상 밖의 일들은 심장을 요동치게 만든다. 그건, 성인이 되고 난 후 쉽게 경험 할 수 없는 일탈과 같은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상가능 범주에 있는 친구나 가족, 애인에게선 절대 얻을 수 없는 일탈감은 또 다른 의미로서의 쾌감이었다.
저 남자가 감히 이런 아름다운 곡을 연주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비 오는 날과 잘 어울리는 따듯하면서도 느린 템포. 작게 웃음이 새어 나올 것 같아 발가락 끝을 꼬옥 말았다. 무릎 위로 괸 팔에 입술을 묻었다. 입술사이를 비집고 나오려는 웃음을 숨기고 싶었다. 들통 날 것 같던 내 마음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하고 싶었다.
명치끝이 간지러웠다. 테이블 하나 거리를 두고 마음속에서 충동이 일었던 것 같다.
이 남자에게 반할 것 같다는 마음과 나이가 몇인데 이런 순간적인 기분에 사랑에 빠지려는 거야 정신 차려! 하는 양가감정의 속에서 나는 그가 연주하는 음악이 끝나질 않길 바랬다.
나뭇잎 위로 투둑- 투둑- 빗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남자의 체취가 묻은 셔츠를 입었고, 남자는 간간히 쑥스러운 웃음을 보였다.
근 몇 년 동안 없던 가장 로맨틱한 순간을 만들어준 이 남자를 나는 모른다.
그는 내게 완벽한 타인이었으니까. 어쩜 이리도 로맨틱할까.
To, Bossa Nova
넌 평생 이 글을 못 보겠지만.
네 연주에 대한 내 보답.
나는 약속을 지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