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고르는 것에도 개인의 기호가 있고 취향이 있다면 단연코 내 선택은 나이 많은 남자일 테다. 말투도 눈빛도 또래의 남자에겐 없는 도약적인 면이 좋다. 가벼운 농담 속에 깃든 무거운 진심과 깊은 대화 속에 공중을 떠다니는 먼지 같은 흩날림이 종잡을 수 없이 나를 흔든다.
띠 동갑인 남자는 그 세월만큼 늙었고 노화로 인한 죽음에 한 발 앞서 있었다. 죽음의 끝자락에 서 있는 남자를 상상하곤 했다. 어떤 모습으로 죽어갈까. 저 남자는 내게 무엇을 남기고 떠날까. 내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를 걷고 있는 그에게 알려달라고, 알고 싶다고, 그리고 곁에서 보고 싶다고 속살거렸다.
그가 내 안을 들어오면 그와 함께 여유, 안정, 열정, 불안, 후회, 지금이라는 단어들이 내 몸 깊숙이 침범했다. 그가 잠들고 나면 나는 몰래 그의 등을 보며 떠올랐던 단어들을 상기하곤 했다. 그의 몸은 자주 망가지고 탈이 났다. 그럴 때마다 그는 불안해했다. 그것은 잃어가고 있는 젊음에 대한 불안 같은 것일까 아니면 젊은 시절 해보지 못한 무언가에 대한 후회일까.
불안함을 끌어안은 채 잠이 들어도 다음날이 되면 그는 한 층 여유로운 얼굴을 해 보였다. 몸에 깃든 안정감이 내 위를 눌러 내리면 나는 다시 손을 뻗어 남자의 등을 더듬곤 했다. 남자는 어째서 이토록 빨리 여유로움을 찾아낸 걸까. 연륜의 힘인 걸까.
그의 갈색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말문이 막히곤 했다.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음에도 하지 못한 말들이 더 많았다. 아니, 하지 않은 말들이었다. 그것은 나의 단어들이었고 나의 언어였다.
'이미 알고 있죠?'
내 언어는 한 문장으로 완성되었다.
매번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새벽 3시에도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알고 있어.'
나이 많은 남자의 눈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언어가 새겨져 있다. 그것은 내가 앞으로 배워나갈 언어 같아 나는 말간히 남자를 본다.
나의 희로애락을 지켜 본 남자는 말한다.
'알고 있어. 그래 알고 있어.'
모든걸 알고 있다는 듯,
나의 심연을 보는 나이 많은 남자는.
부조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