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인생이 하나의 소설이라면, 그리고 그것을 보는 독자들이 있다면, '음, 이건 왠지 복선 같은데?'라는 순간들이 꽤 있을 것 같다.
객관적 시각으로, 한 발짝 옆에서 바라보면 꽤나 전반적인 흐름을 알아채는데 도움이 될 수 도 있다.
관건은 그 객관적인 시각과 한 발짝 옆의 위치를 잡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부모 노릇을 한다는 것은 삶의 메인 페이지가 두 개가 있다는 것이다. 하루 한 페이지가 끝나고 집에 오면, 다른 페이지가 열린다. 사람마다 그 어려움은 다를 텐데, 내 경우 가장 큰 것은 에너지이다.
그날의 아이의 기분이 어떤지, 학습은 어땠는지, 잘 놀은 친구가 있는지, 책가방은 잘 챙겼는지... 왜 이렇게 체크할 것이 많은지...
하나를 키우는데도 이렇게 정신없는데, 다자녀 부모들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 종일 일로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집에 돌아와 아이의 것을 챙길 수 있는 온전한 시간은 1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그 와중에 매일, 장기간 해야 하는 일을 기계적으로 빠뜨리지 않고 하기에는 너무 가쁘다.
하루를 정신없이 산다는 것은 그 속에 매몰되어 빠져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응당 내가 생각할 때 당연히 빠지는 부분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건강에 관련된 일이면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정신적 충격이 크다.
아이가 5살 즈음인가 실외 나무계단에서 놀던 아이가 발을 헛디뎌 넘어졌었다. 아이는 입을 부딪혀 피가 났었고, 깜짝 놀라 이 하나하나를 체크해보았는데 다행히 흔들리는 이는 없었다. 하루 이틀 신경을 썼으나, 시간이 흐르고 잊게 되었다.
얼마 뒤 출장 중에 남편의 문자를 받고 깜짝 놀랐다.
아이의 치아 색깔이 조금 어둡게 변했고, 체크해보기 위해서 치과를 데려가겠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치과를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 기억으로, 난 치아에 참 민감하다.
큰 치아에 비해 작은 턱 때문에 이 사이가 붙어 유난히 잘 썩는 이로 매번 치료를 위해 매번 치과를 가야 했다.
자리가 부족해서 삐뚤게 난 덧니들 때문에 활짝 웃는 내 모습을 난 보기 싫어했다.
자신 없는 웃음이, 그 치아가 우리 엄마 마음에 남아, 꼭 해야 한다는 엄마 말에 이끌려 대학생이 되어서야 생니 4개를 빼는 무시무시한 교정을 해야 했다.
그 고통의 시간을 알기에 아이가 유치가 났을 때, 유난히 가지런하고, 작은 치아를 보면서 '아이고 감사합니다.'라며 내심 안도를 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무지였을 뿐이었다.
유치가 고른 것보다 듬성듬성 이쁘지 않은 이, 조그마한 얼굴보다는 적당한 발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다.
그 예뻤던 고른 유치와 작은 얼굴은 결국 아이와 나의 미래에 대한 일들에 대한 일종의 예약이었다.
치과가 갔던 남편에게 이상하게도 소식이 없었다. 바로 톡을 날려 결과를 알려줄 만도 하겠만 시간이 꽤 흘렀는대도 소식이 없다는 것은 긍정적 소식이 아니라는 얘기다.
'왜 연락이 없어?, 다녀왔어?'
'으응, 부딪힌 이는 문제가 없대, 시간이 흘러서 색이 빠질 거래. 신경을 건들지 않았다면 괜찮을 거래.'
'근데?'
'어? 응... 확인해보려고 치아 사진을 찍었는데 새로운 것을 발견했대. 이가 하나가 더 있대. 속에 숨어있대'
헉... 아이는 과잉치였다.
과잉치는 예정된 치아 개수보다 그 이상의 치아로, 우리 아이 같은 경우에는 입천장 쪽에 있는데 그 경로가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술이 필요하대' 지금 생각하면 이 과잉치 수술은 아주 특별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치아가 정상적인 아이들이 많지만, 그렇다고 드문 케이스도 아니다. 하지만 그 당시엔 마음이 철렁거렸다.
대체 이 과잉치는 어디서 온 것이란 말인가? 나 때문에? 뭘 잘못 먹었었나? 아니 대체 왜!
아마 그때 나는 예상치 못한 아이 생의 최초 '수술'이란 단어에 꽤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아이는 추적관리 끝에 1년 반이 지난 시점에서 수술을 받고 과잉치를 무사히 발치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다른 소식이 있었는데 '아이는 아마도 교정을 해야 할 거예요'라는, 대비하라는 말이었겠지만, 나에겐 악담과도 같은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 말은 실현되었다.
며칠 전 치과를 갔을 때 사진을 찍었고, 아이의 치아 크기에 비해서 자리가 너무 적어 고른 치아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다. 턱의 발달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앞으로 더 자리가 나올 확률이 적기 때문에 턱 발달을 위한 교정을 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했다.
교정은 마우스 피스 같은 장치를 매일 자는 동안 끼고 자야 한다고 했다. 선생님은 요즘 이런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예전에 비해서 음식은 소프트해져서 씹는 것은 줄어들고, 턱의 진화 속도 대비 치아의 크기 속도는 더디고, 큰 치아를 가지나 얼굴이 작은 아이들은 이럴 수 있다고... 양치만 잘한다면 최대 15분 껌 씹기도 방법이라고 하셨다.
최소 1년, 그 안에 턱 발달이 이루어져 앞으로 나올 치아의 자리를 확보하면 교정은 마무리될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집에 돌아오는 나는 마치 해풍에 널어놓은 생선 한 마리 같았다. 또 생겼구나... 해야 할 일이...
아이의 치아 교정을 위해 내가 최대한 신경 써주고, 좀 더 해줘야 할 것이 무엇인지 열심히 찾아서 더 노력해야지라는 마음가짐보다는 순간 거대한 피로감이 느껴졌다.
교정을 위한 의사 선생님의 1시간가량의 설명을 듣고 멍해진 나는 아이에게,
'우리 이제 공부는 하지 말자. 그냥 건강만 하자'라고 말했다. 내 상태를 눈치채셨는지 선생님은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에요. 일상적인 일이에요. 익숙해지시면 괜찮으실 거예요.'라는 격려를 건넸다.
3개월에 한 번씩 안과를 가서 근시 진척도 체크를 받고, 자기 전 안약을 넣으며 최소한의 시력을 유지하기 위한 매일의 일상에 하나를 더 하면 될 뿐이지, 요새 다른 집들도 유사하지 싶다가도 온 몸에 힘이 쭉 빠졌던 건 사실이었다.
대체 부모님은 나와 동생을 어찌 키우셨을까? 별의별생각을 다하며, 병원을 나서는데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축 처진 어깨로 걷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니, 당사자인 아이의 심정은 어떨까 싶었다.
병원 와서 들은 소리가 무슨 좋은 소식이었겠나...
아이든, 어른이든 그 소식이 힘 빠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너무 잘된 일이야! 앞으로는 점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대, 부드러운 음식도 많고 하니까...그래도 우리는 빨리 제 시점에서 알고 비교적 쉬운 교정을 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싶어!'
나는 짐짓 밝은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러자 남편이 '그래! 맞아, 너도 보았지? 1년 교정하면 얼마나 좋아지는지? 그럼 턱도 자연스럽게 발달되고!'
라고 맞장구를 쳤다.
'맞아! 나는 정말 운이 좋아!' 아이는 말했다.
'그래! 우린 정말 운이 좋아!'나는 말했다.
처음에는 힘없는 아이를 격려하고자 한 말이었지만, 다시 돌아보니 정말 그랬다. 잘 보이는지, 잘 안 보이는지 스스로 판단하지 못했던 아이의 시력저하를 발견했을 때도, 아이의 과잉치를 알게 되었을 때도 그랬다.
상황 안에서의 당황스러움, 자책, 과정에 대한 부담감, 밀려드는 에너지 고갈로 정말 큰 일인 양 정신 못 차린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몇 발자국 나아가 보니, 그것은 우리 삶을 위한 신호였다. 그 신호가 없었다면, 그 신호를 몰랐다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했을지 모른다.
멀리보면 이것은 그냥 커나가는 과정중 하나의 에피소드일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음속에서 감사함이 일어났다. 누구에 대한 감사함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유난히 환하게 미소가 이쁜 아이가 자신감 없는 웃음을 알지 못할 것에 대한 감사함, 생니 4개를 뽑고 고통스러운 치아 교정을 겪지 않을 것에 대한 감사함이었다.
순간 감사함이 끌어 올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마치 내 몸의 부정 회로가 긍정 회로로 전환되며 불이 켜지듯 그렇게 그곳에 에너지가 있었다.
우리의 마음은 밭이다. 긍정의 씨앗도 있고, 부정의 씨앗도 있다. 어떤 씨앗에 물을 주어 꽃을 피울지는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 - 탁닛한 스님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 나는 막상 정확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무엇을 하면 좋을지, 어떻게 될지 그 아이의 삶을 설계해 본 적은 없었다.
다만 내가 살면서 가끔씩, 겨우 알게 되는 감사함의 에너지를 스스로 작동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