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ed Enabler Jun 15. 2023

저도 이제 사춘기입니다.

아이에게 자유를 주니 벌어지는 일

6, 7살에는 영유, 한글 학습지, 보드게임을 빙자한 기초수학 그리고 피아노, 태권도 란 예체능, 쏟아지는 숙제를 아이는 말없이 해냈다.

사실 난 그때, 아이가 소화하며, 즐기는 거라 착각을 했는데, 배우는 즐거움은 맞지만 인생이라는 세계의 맛보기일 뿐이라 애는 그냥 뭘 몰랐던 것이었다.


코로나를 겪은 1, 2학년에는 또래와의 소통빈도가 낮으니, 아이가 알 수 있는 세계 역시 점진적 확장은 무리였다. 그러나 3학년부터 본격적으로, 놀이의 세계와 공부의 무게 사이에 아이는 고민도 없이 놀이를 택했다.


'애가 스스로 공부하네! 노 났다' 생각했던 나는 일련의 맥락전개를 겪고 난 후, 나의 교육철학 세계를 점검해야 했다. 아직도 점검 중인 게 함정이지만!


스트레스받는 아이를 보며, 학원을 하나씩 끊어내야 했다. '자! 정신 차리고, 공부하자' 하는 선생님들께 우리 아이는 학원 만, 다니겠다며... 공부는 스스로 결정할 거라는 나도 온전히 설득 안 되는 썰을 펼치다가, 서로의 교육관이 뻑나면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아이는 물론 이미 가지 않겠다는 액션을 여러 형태로 펼친 후기도 했지만...


4학년이 된 지금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여가를 즐기는 몇 안되는 어린이에 속한다. 얼마 전 그나마 남아있는 학원시간표를 보니, 와우!

'정말 텅텅 비었구나!' 자신도 멋쩍었는지 웃는다.


어느 날 길에서 반 친구 엄마를 만났다.  어디 가냐는 물음에 태권도 학원 간다 하니,

'아니, 태권도 갈 시간이 나요?'

'많이 남아요. 그러고도...' 하니,

'에고 지금 그럴 때가 아니에요.' 하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본인이 원해야 가지요..' 하며 대충 얘기를 끝냈다.

작금의 현실이 그렇다.


몇일 전 아이는 일주 2번 하는 줌 영어 수업에서, 선생님이 숙제를 내줬다 했다.

'잉? 숙제' 정말 자유로운, 교재도 없는 수업이거늘 무슨 숙제가...

"냉전에 대해 조사해서 얘기해 달래"

"헐... 너무 어렵다."


그 이후 펑펑 놀던 아이는 주말이 되자 그 숙제를 할 아이디어가 있다며, 학교에서 배운 구글 슬라이드를 활용해하겠다 했다.

냉전의 의미를 아느냐 물으니, 얼마 전에 분리수거에서 잔뜩 주워온 어린이 잡지를 꺼내왔다. 놈팽이마냥 만화만 들입다 읽는 듯했는데, 잡지 주제였던 미국과 중국의 패권에 대해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아이는 숙제를 했다. 3시간 동안.


아이 숙제 수행 과정은 이랬다.

1. 학교에서 학습한 구글 슬라이드를 연다.

     성에 찰 때까지 씐나게 여러 기능을 눌러댄다.

2. 한 30분 욕구가 채워지니, 구글 서치를 연다.

3. 냉전의 뜻을 나무위키로 검색한다.

4. 검색된 한국어를 구글번역을 이용하여 영어로 바꾸고, 문구를 본인의 입맛대로 조정한다.

5. 구글 내 패권을 잘 나타내는 이미지를 찾아 슬라이드 배경으로 넣는다.

6. 미국과 한국의 관계 등을 서치해서 자료를 넣는다.

7. 슬라이드에 애니메이션을 넣어 극적 효과를 가미한다.


아이 숙제를 하는 과정은 조사를 하고, 타인에게 말하고 싶은 내용을 가독성 있게 편집하여, 본인의 생각을 말하는, 회사에서의 보고서 발표하기의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물론 무려 3시간이 걸렸고 그 시간의 70%는 구글 슬라이드 디자인 즐기기였다. 

지켜보면 무척이나 속 터지는 과정인데, 애는 중간중간 딴 길로 새는 탐색을 하면서, 놀면서 그렇게 숙제를 했다. 내가 훈수를 두거나 시간제한, 혹은 목표집중에 조언을 했다면 아이가 즐겁게, 온전히 마무리 못했을 것이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 여전히 학원과 숙제로 가득 찬 스케줄이었다면 아이가 시간을 내서 교재와 룰없이 간단히 주어진 숙제를 이렇게 아이디어 내어 할 수 있었을까 싶다.


숙제를 끝낸 아이의 표정에는 이루 말할수 없는 뿌듯함이 있었다. 그 환한 표정에 폭풍 칭찬을 해주니, 그의 얼굴은 더욱이 빛이 났다.


'그래, 이것일지도 모른다.'


아직도 온전한 교육철학을 세우지 못한 어미는 아이의 여가시간이 빈둥거림으로 보일 때가 자주 있지만, 아이 스스로의 성장을 믿으며, 자유 안에서의 창조가 자라날 것이라는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지금 트랜지션 중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