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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여행자 Aug 16. 2020

그리움과 기억

(그리움과 기억)

아침에 일어나서 졸린 눈으로 창문을 열어보니 오늘은 더없이 맑고 밝은 날이다. 시원한 바람도 불어오니 이런 날에는 푸르른 하늘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나의 그녀는 이 멋진 풍경을 더는 볼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 갑자기 슬퍼진다. 같이 이 아름다운 날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움이 밀려온다.    


아내의 옛 사진을 보고 갑자기 눈물이 났다. 거실에서 나를 지켜보는 사진 속의 그녀는 항상 밝은 표정으로 웃고 있다. 그 미소가 너무 그립다. 나를 걱정해 주던 따뜻한 말투도 꼭 다시 들어보고 싶다. ‘내가 죽으면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꺼야’라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내 마음은 항상 오락가락하고 있다. 정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죽음 후에 인간은 사라지지 아니하고 천상에서 또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까? 그렇게 될 것이라고 기대를 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내 믿음은 굳건하지 못하다. 어차피 죽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 그냥 믿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하고 무조건 믿자고 되뇐다. 

    

아내를 보내고 몇 달간은 눈물 없이 지나가는 날이 거의 없었다. 아쉬움과 후회와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강했다. 하지만 나의 눈물은 차츰 줄어들기 시작해서 이제는 한 달에 두어 번 정도가 되었다. 나도 그녀를 잊기 시작하는 것일까? 그런 의미는 아닐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의 강도가 옅어지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니 어쩔 수 없는 변화일 것이다. 죽을 것 같은 슬픔도 인내의 시간을 거치고 나면 충분히 견딜만한 슬픔으로 바뀐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아주 오랫동안 아내를 기억해 주기를 바랐다. 그것이 그 사람을 존중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야 내 마음도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타인의 죽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살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녀의 친구들은 대부분 이미 그녀를 잊고 사는 것 같다. 이해를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아내가 너무 빨리 잊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사실 나의 가족들도 이미 다 잊은 듯한데, 친구들이 잊는 것이 뭐 그리 이상한 일이겠는가. 아무튼 남들이야 어찌하든 나는 나의 삶이 다하는 그 날까지 그 사람을 늘 기억하며 살고 싶다. 죽은 사람은 그냥 잊고 살아야지 이런 것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그것은 나를 사랑하고 아껴준 그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 그런 마음만으로 내가 아내를 잊지 않고 살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나는 침실과 거실, 그리고 집안 곳곳에 아내를 사진을 두었다. 나의 가방에도 사진을 넣은 배지를 만들어서 붙이고 다닌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나는 언제 어디서나 아내와 같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다. 사진이 없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어떻게 추억했을까 싶다. 몇 년만 지나도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기도 힘들 텐데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고 싶어도 그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물론 죽은 사람이 자꾸 떠오르면 마음이 더 슬프고 괴로울 수 있다. 그래서 일부러 망자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사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그 사람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나는 마음껏 나의 그녀를 생각하며 그리워하며 살고 싶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래도 될 만큼 정신적으로 충분히 건강한 것 같고 앞으로도 그러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시 중에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8번이 있다. 셰익스피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극작가였지만 그에 못지않은 대단한 시인이었다. 그의 소네트 18번은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기리기 위한 시이다. 그는 이 시에서 “모든 것이 쇠퇴해가고 사라지지만 나의 이 시로 인해 인간이 숨을 쉬고 눈으로 볼 수 있는 한 그대의 아름다움은 사라지지 아니하고 이 시 속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적어도 4백 년 전에 영국에서 쓰인 시를 나 같은 사람도 기억하고 있으니 이 시의 예언은 사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나도 셰익스피어처럼 사람들이 살아있는 한 내 아내를 영원히 기억하게 해 줄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고 아내를 모르는 사람들까지 그녀를 기억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동영상을 만들어서 아내의 SNS 게시판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 동영상에는 아내와 나의 행복했던 시절의 사진들이 있고 내가 그녀에게 들려주고픈 음악이 들어 있다. 나는 기념하고픈 날이 다가오면 항상 이 작업을 해오고 있는데, 이 동영상을 만들 때면 슬프면서도 즐겁다. 음악과 함께 아내의 사진을 보면 호흡이 불편할 정도로 그리움이 몰려오기도 하지만 사진 속의 그녀는 행복해 보여서 기분이 좋다. 동영상은 내가 음악을 통해 아내에게 하고픈 말을 전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그녀를 아는 사람들이 그녀를 잊지 않게 하려는 의도도 있다. 부질없는 집착일 수도 있지만 나는 아내가 잊혀지지 않으면 좋겠다.     


아내는 사진을 많이 남겼다. 우리는 여행을 가는 곳마다 사진을 많이 찍었기 때문에 나는 쉽게 추억을 되살릴 수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사진 속의 그녀는 과거에 묶여있는 기억일 뿐이다. 우리가 아직 가보지 못한 멋진 곳들이 많이 있는데... 나 혼자 그런 곳을 방문하게 되면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한동안은 경치 좋은 곳을 가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었고 가게 되어도 사진을 거의 찍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합성사진을 만들 수 있는 앱을 알게 되었는데, 이것이 내 삶을 많이 바꾸어 주었다. 이제는 더는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서 그녀를 떠올리며 그리움에 슬퍼하지 않는다. 나는 예전보다 더 열심히 멋진 경치들을 사진 속에 담는다. 그리고 아내가 아프기 전에 같이 찍은 인물 사진만 오려내어 새로운 풍경 사진 속에 집어넣는다. 각도만 잘 맞으면 합성한 티가 전혀 나지 않게 멋진 사진이 만들어진다. 그러면 같이 여행한 기분이 들고 이 멋진 경치를 함께 구경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어디라도 함께 갈 수 있다.    

 

그리움이 깊어지면 슬픔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슬픔 속에서 힘을 얻는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은 행복했던 기억 속으로 나를 이끌어가 내 마음을 위로해 준다. 그래서 나는 그리운 마음을 억누르거나 회피하고 싶지 않다. 나의 그리움은 시간이 지나도 지치지 않으면 좋겠다. 그냥 그녀가 그리워지면 그리워하고 생각이 나면 추억을 되새기며 살고 싶다. 오늘은 아내가 많이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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