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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여행자 Aug 21. 2020

사별 카페에 가입하다

(사별 카페에 가입하다)

장례를 다 치르고 나서도 나는 그냥 멍한 상태였다. 상실의 슬픔 때문에 앞으로의 삶에 대해 걱정을 하거나 두려움을 느낄 여력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큰형님이 몇 개의 웹사이트 주소가 적힌 쪽지를 내밀며 이곳이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웹사이트는 사별자를 위한 인터넷 카페였는데, 그때는 그냥 별다른 기대 없이 가입을 했다.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었던 나는 그곳에서 다른 사별자를 직접 만나고 새로운 친구를 만들 생각은 없었다. 단지 다른 사별자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가 궁금했다.

카페에는 참 많은 글이 있었다. 먼저 가버린 배우자를 비난하는 글도 있었고, 배우자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표현한 글, 신세타령, 행복했던 순간에 관한 글 등 다양한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주제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그중에 나의 시선을 가장 집중시킨 글은 사별하게 된 이유에 관한 글이었다. 예상할 수 없는 사고사로 죽은 이들도 많았고 갑작스러운 심근경색으로 자고 일어나니 배우자가 죽어있더라는 내용도 있었다. 드라마에서 억지 과장으로 만들어냈다고 생각했던 괴상한 일들이 사실은 평범한 삶을 사는 보통 사람들도 겪게 되는 일이었다.     


카페 사람들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자신의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위로를 얻고 있었다. 많은 공감과 이해와 위로의 글들이 이곳에서 오고 갔다. 만난 적도 없는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이곳에서는 그 장벽이 허물어져 있었다. 카페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사별자들이 사별 카페에 모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 같이 가난하면 그 가난은 큰 고통이 되지 않는 것처럼 사별의 아픔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같이 모여 있으면 나의 괴로움은 더는 죽을 만큼 심각한 것이 아닌 게 된다. 카페에서 소위 말하는 눈팅이라는 것을 좀 하고 나서 차츰 나도 나의 이야기를 카페에 써나가기 시작했고 오프라인 모임이 있을 때면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불편을 감수하고 참석해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처음으로 참석한 카페 오프라인 모임은 유감스럽게도 실망스러웠다. 나는 먹고 마시고 노는 모임에는 마음이 가지 않았다. 2차, 3차로 갈수록 술에 취해 유흥에 집중하는 모습은 사실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카페 모임에 자주 참여한다면 비용만 해도 꽤 부담될 것 같았다. ‘사별 카페에 모여서 오프라인 만남을 가지는 이유가 다른 사람들 눈치 볼 필요 없이 신나게 놀 수 있기 때문인가?’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어서 이런 모임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에는 내 마음이 편협하여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카페에는 벙이라고 불리는 다양한 종류의 모임이 있었다. 나는 술 중심의 모임은 멀리하고 동년 생 모임, 등산벙, 음악벙 등에 참여했다. 여러 모임에 나가다 보니 친해진 사람들도 생겼고 누구보다도 동년 생 친구들이 생겨서 좋았다. 그해 추석 연휴가 5일이었는데, 나는 그 친구들을 나흘이나 만났다. 지금 내 주위에 있는 친한 사람들은 대부분 카페 사람들이다. 어느덧 사별 카페는 나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카페가 아주 편하지는 않다. 카페에는 내가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들이 훨씬 많고 나는 나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내 마음을 털어놓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리고 사람이 많이 모이면 어디나 다 마찬가지이듯 카페에도 이상한 사람이 있고 못된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도 꺼림칙하고 남에게 신세타령을 하고 싶지도 않다. 특히 심각한 주제의 글은 나라는 사람에 대한 평가로 이어질 것 같아서 쓰기가 더 꺼려진다.     


이런 나와 달리 나의 사별 친구 중에는 남의 시선이나 평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한 이가 있다. 그 친구의 글은 처음부터 카페에서 큰 화제였다. 그녀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사별까지도 다 공개하면서 자신이 살아온 삶에 관해 이야기했다. 나에게는 없는 용기였다. 나는 나의 불우했던 시절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남에게 동정을 구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 그 친구는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카페에 써 내려갔는데 그 글은 많은 사람에게 위로가 되었고 또 용기를 주었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친구 때문이다. 우리는 친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별자들을 위한 책을 만들어 보자며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이 친구가 다른 분과 책을 쓰려고 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기에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주겠다고 말했을 뿐인데 어찌하다 보니 같이 책을 쓰게 되었다. 사람 일은 참 모르겠다. 사별 카페에서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다.     


나는 매일 카페에 들러 그곳에 올라온 글들을 읽어본다. 글을 통해 사람들이 슬픔을 견디고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인생의 고단함과 위대함을 함께 생각하게 된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위대하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 위대한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사별자의 삶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 말이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다. 오늘도 또 어떤 위대한 사람의 글이 카페에 올라와 있는지 한번 둘러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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