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특별하지 않다)
“태어난 것은 죽지 않을 방법이 없고 얼마나 살지 알 수도 없고 항상 죽음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 어떤 아버지도 자식의 죽음을 막을 방법이 없으니 지혜로운 사람은 이런 세상의 이치를 알고 죽음에 대해 슬퍼하지 않는다. 죽은 자로 인한 슬픔을 버리지 않으면 마음은 더 괴로워지고 슬픔의 지배 아래 떨어지게 될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울부짖고 자신을 해쳐서 어떤 이득이라도 생긴다면 지혜로운 자들도 그리 할 것이다. 울고 슬퍼하는 것으로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으며 괴로움이 더욱더 일어나고 몸만 상할 뿐이다. 바람이 솜을 날려 버리듯 슬픔은 빨리 날려 버려야 한다. 행복을 바란다면 마음에 박혀있는 한탄과 욕심, 그리고 우울함의 화살을 뽑아내야 한다. 이 화살을 뽑아내고 집착이 없어지면 슬픔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다.”
이 글은 부처님의 말씀 중 숫타니파타 제3편 8번째 경전의 내용을 발췌 편집한 글이다. 화살의 경이라고 불리는 이 말씀은 아들을 잃고 그 슬픔에 식음을 전폐하고 있는 사람에게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주려고 하신 말씀이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사별의 고통이 나만이 겪는 특별한 아픔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경험하게 되는 평범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누구나 겪는 일인데 남들보다 조금 이른 사별을 경험했다고 세상이 다 무너지는 듯한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은 왜일까? 나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에 사별의 아픔과 나는 아무 상관이 없어야 한다는 지나친 욕심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잘 느끼지 못했을 뿐 죽음은 언제 어디에나 흔하게 존재해 왔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며 살아간다. 부처님은 인간에게 죽음은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고 누구나 다 겪게 되는 일이니, 이것은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일이지 집착할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화살의 경을 읽고 나는 불교에 관해 관심이 생겼다. 처음에는 그냥 불교 경전이나 몇 권 빌려서 읽어보려고 했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경전의 수가 너무 많고 내용은 난해했다. 불교를 공부하는 것은 포기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마침 즉문즉설로 유명한 법륜스님이 불교대학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서 불교 공부를 시작했다. 프로그램은 인터넷으로 법문(강의)을 시청하고 함께 수업을 듣는 분들과 그 법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실생활에서 수행을 연습해보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강의 자체보다는 다른 분들과 자신의 생각과 삶을 나누는 시간을 좋아했다. 사실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면 우리는 남이 어떤 고민이나 괴로움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알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솔직하게 자신의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하는 분위기여서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며 살고 있는지, 또 어떤 것 때문에 괴로워하는지 쉽게 알아볼 수 있어서 좋았다.
다른 분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게 떠오른 생각은 인간은 참 사소한 일에도 괴로워하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사별한 나의 입장에서는 자식이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것이나 배우자가 다정하지 않은 것 정도는 괴로워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게는 매우 작은 일로 보이는 그 문제가 그들에게는 심각한 일이었다. 고통은 상대적인 것이라는 것이 너무나 뚜렷하게 보였다. 내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어떤 이에게는 엄청나게 힘든 일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사별로 인해 괴로워하는 것도 부처님 입장에서는 단지 어리석음으로 인한 괴로움에 불과했다. 시간이 더 흐르고 나면 나도 진정으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불교는 모든 고통의 근원을 욕심과 집착이라고 본다. 문제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이다. 이미 좋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싶어 하므로 그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괴로움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좋은 배우자가 있어도 그 사람이 완벽하지는 않기에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그것에 집착한다면 괴로울 수밖에 없다. 자족하는 마음이 없다면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든 참된 행복에 이르기는 힘들다. 반대로 욕심과 집착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좋지 않은 상황과 형편에서도 별로 괴롭지 않을 수 있다.
불교 용어 중에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라는 의미인데, 사별의 아픔도 결국은 내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다. 배우자가 없는 사람의 삶이 배우자가 있는 사람의 삶보다 무조건 안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내 마음이 그렇게 믿으면 그렇게 될 뿐이다. 사별자의 삶이 단점이 더 많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좋은 점도 몇 가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단점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아주 커 보이기도 하고 작아 보이기도 한다. 결국 사별의 아픔의 크기는 내가 처한 상황보다는 내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어차피 살아갈 인생이니 가능한 긍정적인 마음을 먹고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불교를 공부하며 내가 얻는 가장 큰 가르침이 이것이다.
“인간에게 죽음은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며, 사별의 아픔은 내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