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간여행자 Aug 28. 2020

도서관의 추억

(독서의 위로)

아내가 아직 아플 때 나는 살던 집을 처분하고 공기가 좋은 산 아래에 위치한 신축 아파트로 이사할 계획을 세웠다. 병원도 가깝고 공기도 좋은 곳으로 이사하면 치병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살던 집은 싼 가격에 팔아버렸다. 하지만 아내의 몸은 급격히 나빠졌고 나는 사별 직후 홀로 쓸쓸히 이사를 하게 되었다. 새로운 주거지는 공기는 좋았지만 외진 곳이어서 혼자 살기에는 여러모로 불편한 곳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좋은 점도 있었는데, 그것은 아파트 건너편에 오픈한지 한 달도 안 된 도서관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도서관을 무척 좋아했다. 작은 규모의 깔끔한 시설도 맘에 들었지만, 모든 책이 다 새것이라는 점이 가장 좋았다. 새 책은 냄새도 좋고 읽고 싶은 욕구를 부추겨준다. 딱히 하고 싶은 다른 일도 없었기에 나는 주 5일 정도 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서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도서관에 있는 동안은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에게 도서관은 평화롭고 편안한 안식처 같은 곳이었고 책을 읽는 취미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아내가 떠나고 난 후 나는 죽음 그 이후가 너무 궁금해졌다. 그리고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다시금 골똘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의문 속에서 발견하게 된 작가가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였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였다. 그녀가 쓴 사후생, 인생수업, 상실수업 등의 책은 내가 인간의 삶과 죽음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그녀가 내린 결론은, “우리는 배움을 얻기 위해 이 세상에 왔으므로 지금에 충실히 살아야 하고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퀴블러 로스 박사는 또 사후생을 믿는 사람으로서 죽음은 이 세상에서 다음 세상으로 떠나는 관문일 뿐이라고 주장했는데, 나는 이 말이 무척 위로가 되었고 공감이 갔다. 이왕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죽음에 이를 때까지 내가 배워야 할 것들을 열심히 배우다가 떠날 때가 되면 홀가분하게 미련 없이 떠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곳을 떠나 다음 세상으로 넘어가면 그곳에서 아내를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은 희망도 생겼다.     


법륜스님을 처음 알게 된 것도 도서관에서였다. 스님은 삶의 허무함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왜 살아야 하나?”같은 쓸데없는 질문을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즐겁게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일어난 일은 좋은 일도 아니고 나쁜 일도 아니다. 좋다고 생각하면 좋은 일이 되고 나쁘다고 생각하면 나쁜 일이 된다.” 사실 스님의 말씀은 이성적으로는 동의할 수 있었지만, 감정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매사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아서 나쁠 것은 없지 않겠는가. 이른 나이의 사별이 꼭 죽을 듯이 슬퍼하고 원망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만 이런 아픔을 겪어야 하냐는 생각도 들지만, 어차피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불공평하지 않았던가?     


나는 인생의 특별한 꿈이나 목표가 없이 산 지가 꽤 오래되었다. 이렇게 사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자신의 인생에 대해 구체적인 목적과 의미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존재하니까 살고 있는 듯한데, 그렇다면 그 사람들의 삶은 무의미한 것인가? 식물이나 동물은 당연히 그렇게 살아가지만 인간은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책을 읽게 되면 자꾸 질문이 생겨나고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더 많은 책을 읽게 된다.     


도서관에 대한 나의 과도한 애정은 내가 5개월 만에 또다시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면서 사라졌다. 외진 동네에서 혼자 넓은 아파트에 사는 것은 정신 건강상 별로 좋지 않은 듯했기에, 나는 주변이 매우 번잡한 지하철 부근의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집 근처의 도서관들은 거리도 멀고 분위기도 좀 답답해서 그다지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았다. 이제 나에게 도서관은 책을 빌리는 곳이지 책을 읽으며 편안히 쉬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책을 읽으며 삶의 의문에 대해 답을 찾는 공부는 계속하고 있다. 지금도 내 방에는 여러 곳의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이 10권 넘게 쌓여있다. 흥미롭고 유익한 책을 만나게 되면 독서를 하는 것이 참으로 즐겁다.     


삶과 행복, 그리고 죽음에 대한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다 변하고 사라져 가는 것이 세상 이치이다. 그런데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계속 얽매여 슬픔 속에 헤매는 것이 올바른 생각인가?’ 과거에 집착하며 현재를 사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나는 그냥 그녀와의 행복했던 삶을 아름답게 추억하면서 살고 싶다. 시간이 더 지나면 슬퍼하지도 않고 괴로워하지도 않고 그냥 미소 지으며 추억하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별 후 500일을 돌아보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