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형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세상의 부모 자식 중에는 분명히, 만나지 말았어야 할 인연도 있고, 모성에 대한 강고한 신화는 보통의 엄마들을 힘들게 하지만, 그래도 어떤 엄마들의 사랑은 세상이 겨우 버티어온 힘이었겠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인 딜런의 엄마입니다. 아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사고가 났다는 소식에 혼비백산한 순간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어버립니다. 세상은 다른 어떤 정체성도 아닌 ‘가해자의 엄마’로만 그를 대합니다. 비난하고 모욕하고 공격하고, 그 모든 비극에 대한, 희생자 아이들의 차마 살아보지도 못한 삶들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지요. 그런 일을 벌였어도 딜런은 자신의 아이인데, 그는 아이의 무덤조차 만들지 못하고, 슬픔은 돌팔매질 당합니다.
그러나 그 갈기갈기 찢긴 마음에만 머물렀다면 이 책은, 이런 처절하고도 존엄한 고백은 나오지 못했겠지요. “내가 그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에 자신의 아이뿐 아니라, 고통을 겪은 모든 가족들, 그리고 미래의 딜런들을 사무치게 기억하며 세상을 바꾸고자 나아가는 그 삶은, 사람의 사랑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그 주말에 나는 클리볼드 부부에게 딜런이 지금 이 방에 같이 있다면 무얼 묻고 싶냐고 물었다. 톰은 이렇게 말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묻고 싶어요!” 수는 잠시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를 용서해줄 수 있겠냐고 묻고 싶어요. 엄마이면서도 그 아이 머릿속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던 것에 대해서, 그 아이를 도와주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요.” 5년 뒤에 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을 기억하냐고 물었다. 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 일이 일어났을 때 처음에는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아예 결혼도 하지 않았더라면.’ 생각하곤 했어요.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톰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딜런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이 끔찍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겠지.’ 하고요.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아이들을, 바로 그 아이들을 낳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아픔을 겪긴 했지만, 그래도 내 아이들에게 느끼는 사랑이 내 삶에서 가장 큰 기쁨이었으니까요. 제가 말하는 아픔은 제 아픔이지 다른 사람들의 아픔은 아니에요. 하지만 제 아픔은 받아들였습니다. 삶은 아픔으로 가득하고 이 아픔은 제 것이지요. 딜런이 태어나지 않는 것이 세상에는 더 좋은 일이었다는 것을 알아요. 그렇지만 저에게는 그렇지 않아요.”(16~17)
사랑하는 사람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으나, 결국 그 싸움에서 졌다고 슬퍼하는 사람을 볼 때 나는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아들은 혼자서 병을 안고 싸웠다. 나는 일기를 보기 전에는 딜런이 우울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딜런이 죽고 몇 년이 지난 뒤에야 죽음의 평안과 위안을 갈망한다고 쓴 글을 읽고 딜런이 자살을 생각했음을 알게 되었다. 가장 친한 친구들, 몇 년 동안 날마다 어울린 친구들도 딜런이 얼마나 우울했는지 몰랐다. 오늘날까지도 그럴 리 없다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의 엄마다. 나는 알았어야 했다.(268)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길 첫 번째 해보다 두 번째 해가 더 힘들다고 한다. 첫째 해에는 낯선 고통에 적응하고 하루하루를 버텨나가야 한다. 1년이 지나고 나야 물가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앞쪽도 뒤쪽도 텅빈 바다고 눈에 보이는 건 끝없는 광막함뿐이다. 영원히 이러하리라는 걸 깨닫는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
내 아들로 인해 많은 가족들이 같은 고통을 겪으리라는 것 때문에 나의 비통함은 더욱 커졌다. 비디오에서 본 딜런의 그 모습, 증오와 분노에 가득한 모습이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장난꾸러기 아이의 기억과 씨름을 벌였다. 어떤 때에는 내 안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것 같았다.(387)
단 하루도 격한 죄책감에 휩싸이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다. 내가 딜런에게 잘못한 무수한 것들과 딜런이 남긴 파괴 둘 다에 대해. 16년이 지난 지금도 날마다 딜런과 에릭이 죽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한다. 그들이 느꼈을 공포와 고통을. 그들을 사랑했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죽은 아이들의 부모들, 데이브 샌더스의 아내, 아이들, 손자들, 이들의 형제자매, 사촌, 반 친구들을 생각한다. 다친 사람들, 영구 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을 생각한다. 콜럼바인 희생자의 삶과 맞닿은 모든 사람들을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 가르쳤던 선생님, 아기 때 돌보아주었던 베이비시터, 이웃들, 딜런이 한 행동 때문에 세상을 더욱 두렵고 알 수 없는 곳으로 느끼게 되었을 사람들.
딜런이 죽인 사람들의 희생은 가늠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꾸렸을 가족, 이들이 이끌었을 어린이 야구팀, 이들이 만들었을 노래 같은 것도 생각한다.
딜런이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지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막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목숨을 죽은 사람들 대신 내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수천 개의 열렬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안다. 나는 내 아들 때문에 망가지거나 스러진 삶을 기리며 살려고 애쓴다. 내가 하는 일은 그들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또 내가 아직도 딜런에게 느끼는 사랑에 매달리기 위해서 일한다. 아무리 끔찍한 일을 저질렀더라도, 딜런은 언제까지나 내 아이다.(444)
*이 매거진에서 소개하는 책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위치한 동네 카페 '다-용도실'@da_yongdosil 내 공유 서가 '멈포드의 서재'@mumford_salon 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11월부터 멈포드의 서재는 동네 서점 '니은서점'@book_shop_nieun과 함께 엽니다. 3개월간 진행하는 시즌 1의 주제는 '타인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