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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jin Park Nov 25. 2019

11월, 누구나 아름다웠던 것의 살아있는 추억이다

사랑의 형태 <신비한 결속>

연정과 성애적 사랑, 남매간의 깊은 몰입, 노년의 여성과 중년 여성 사이 연민과 이해, 같은 영혼끼리의 교감, 초월적 존재로의 감화와 자연으로의 혼연일체, 만물에 대한 애착과 내 생명이 자라난 곳 속속들이 느끼는 애착….


‘사랑’이 인간의 가장 심오한 능력인 이유는, 어쩌면 이 모든 것을, 다른 존재와 연결되고자 하는 근원적이고 강렬한 의지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기 때문 아닐까요. 


같은 문제를, 표현만 바꾸어 연달아 내는 수수께끼처럼 사랑도, 일생을 두고 다른 듯 같은 모습으로 반복됩니다. 인간은 그 굴레 속에서 어떻게든 의미를 찾으려 하고, 이해해보려고 하면서 나름의 형상이 되어갑니다. 소설 속 인물들의 사랑은 여러 목소리로 증언됩니다. 어쩌면 서사는 중요하지 않고, 그 감정의 요동 속에서, 서로를 찾고 이름을 부르는 소란 속에서 문득 찾아오는 오롯이 혼자인 순간이야말로 우리의 숨을 멎게 합니다. 

가령 이런 구절. ‘살아있는 것들은 언제나 추억이다. 우리는 누구나 아름다웠던 것의 살아 있는 추억이다. 삶은 이 세계를 만들어낸 시간의 가장 감동적인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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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살아있는 내내 누나는 고통을 겪었다. 사람이 그렇게 지속적으로, 그렇게 오랫동안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그가 죽자 누나는 행복해졌다. 자신이 사랑하던 남자의 육신이 사라지자, 감히 말하건대 기적처럼 고통 또한 사라졌다. 어쨌든 고통이 멎으면서 애도로 바뀌었다. 수년간 고통의 세월을 보낸 다음에, 슬퍼하는, 단지 슬픔에 잠긴 누나를 보는 것은 거의 경탄스러울 정도였다. 육신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견고하다. 죽음 저편의 그를 여전히 사랑하는 일이 누나에겐 행복인 것 같았다. 그들은 흔히 ‘서로 만난다’고 말하는 의미에서 서로를 볼 수도, 말을 나눌 수도, 만질 수도, 입을 맞출 수도, 껴안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멀리서 서로를 지켜보았다. 누나는 드러내놓고 약국의 유리창 모서리에서, 창문 앞에서 기웃거리며 그를 찾았다. 약국 집무실과 창고의 전등이 꺼질 때를 기다렸다. 생뤼네르의 빌라 창문 위쪽의 돋을 장식에 보란 듯이 앉아 있을 때도 있었다. 그곳은 저녁이면 그가 곧장 바다로 나가 새로 장만한 모터보트로 귀가하던 그의 집이었다. 시몽은 일단 좋은 아버지로, 좋은 남편으로, 좋은 시장으로, 좋은 약사로 돌아오자, 낚시 대회며 바다 산책 등으로 배를 타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낡은 어선의 선체도 새로 도색했다. 아침이면 바닷길로 출근해서 약국 문을 연 다음에 생말로에 가서 전날 주문한 물품들을 찾아왔다. 저녁에도 바닷길로 퇴근했다. 하지만 그 역시, 바위들 위로 걸어 다니는 그녀를 바다에서 올려다보았다. 그 역시, 하루 온종일 시간대별로 그녀를 눈으로 뒤쫓았다. 누나도 마찬가지로 바다에 있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바다가 지겨운데도 낚시를 하는 척하고, 제자리에서 맴돌고, 그녀를 바라보고, 그녀를 생각하고,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맺어지길 원치 않는 그를.(155~156)


관광버스의 문들이 동시에 열린다. 순례자 일행이다. 합장한 어린 소녀들이 기도하는 시늉을 하면서 한 줄로 늘어서 묘지 안으로 들어간다. 유니폼을 껴입어 불편해 보인다. 

클레르는 뒤로 물러선다. 

소녀들에 뒤이어 어느 성직자 그룹이 들어간다. 

"참 아름답다!"

음산한 묘지들 앞에서 어린 소녀들이 말한다. 

클레르는 일단 라동 부인의 묘지에서 멀어진다. 그러고 나서 생각한다. '애들 말이 맞아. 나무들은 아름답고말고.' 

그녀는 어느 묘지 위에 앉는다. 자기 앞으로 줄지어 지나가는 소녀들을 바라본다. 눈길을 들어 머리 위의 나뭇가지들을 바라본다. 갑자기 일어나 나뭇가지로 두 손을 뻗는다. 가지 하나를 흔든다. 농익은 열매와 씨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윗옷 주머니에 손수건을 꺼내 펼치고, 씨앗들을 올려놓는다. 라동 부인의 집으로, 생테노가의 정원으로 가져갈 작정이다. 돌아가서 정원에 뿌릴 것이다. 봄이 오면 싹이 틀 것이다. 

그러면 몰래 황야에 옮겨 심을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꽃들과 덤불에 열중한다. 황야 전체가 그녀의 정원으로 변한다. 그녀의 산책 일주로가 모두 황야 주위로 퍼져나간다. '여기로 가야지. 저기로 가야지. 여기서 생각 좀 해보자. 저기서 생각 좀 해보자. 이곳의 아름다움을 좀 누려야 해. 저곳의 아름다움도 좀 누려야 해.' 이 모든 아름다움은 생생하게 살아남을 것이다. 아름다운 모든 것은 살아 있으므로. 그녀는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살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추억이다. 우리는 누구나 아름다웠던 것의 살아 있는 추억이다. 삶은 이 세계를 만들어낸 시간의 가장 감동적인 추억이다.'(190~191)


이따금 남매는, 서로를 미워하지 않을 때에는 연인들보다 서로를 더 사랑한다. 욕망으로 격앙될 때보다 분명 더욱 항구적이고 더욱 믿음직하다. 게다가 연인들보다 훨씬 더 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동생이나 누나는 상대의 가장 오래된 추억, 가장 어릴 때의 추억, 가장 미숙한 추억, 가장 우스꽝스러운 추억, 가장 본래적인 추억, 가장 나쁜 추억까지 두루 알고 있다. 그들은 가장 열렬한 사랑에 참여했다. 가장 쓰라린 상처가, 그런 것의 존재에 무지한 우리가 예견할 수 없는 탓에,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방법이 전무해서 생겨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최초의 사랑이므로 가장 알아보기 힘든 사랑, 기원의 경계선에서 솟아오르는 사랑이다.(210~211)


나는 폴과 함께 클레르 옆에서 그토록 오랜 세월을 살고 난 지금에야 비로소, 그녀가 걸어온 길이 사랑의 길이라기보다는 다른 세계의 길이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덤불, 절벽, 내포, 바위, 동굴, 섬, 배...... 물론 이런 것들은 시종일관 시몽 클랭과 관련된 정류장들이지만, 그곳에 더 이상 시몽의 존재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품은 애정의 참으로 아름다운 기호들은, 아름다움 저 너머로, 공간에 일종의 길을 만들었다.(221)


*이 매거진에서 소개하는 책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위치한 동네 카페 '다-용도실'@da_yongdosil 내 공유 서가 '멈포드의 서재'@mumford_salon 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11월부터 멈포드의 서재는 동네 서점 '니은서점'@book_shop_nieun과 함께 엽니다. 3개월간 진행하는 시즌 1의 주제는 '타인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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