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향 Apr 17. 2024

3,400원짜리 에그타르트 30,000원짜리 영양제

내 몫이었다면 엄두를 내지 않을,


아침에 아이를 울려 보낸 것이 여즉 마음에 걸려 한 시간이나 일찍 집을 나섰다. 집 근처에 마음에 드는 카페가 생겨 하루가 멀다 하고 아침마다 노트북을 들고 출근도장을 찍고 있는데, 그 카페에 아이에게 줘도 좋을 에그타르트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 나는 아이스커피를 하나 주문하고, 쟁반에 에그타르트 두 개를 집어 담았다. 10,800원이 찍혔다. 돌연 확인한 에그타르트의 가격에 새삼 놀라고 만다. 하나에 3,400원. 순간 두 아이에게 하나를 나눠 먹일까... 고민했다. 사실 그래도 되긴 하겠지만 안 그래도 조그만 에그타르트를 반으로 갈라 두 아이에게 나누어 주는 일이 내키지 않아 두 개를 결제하고 만다. 하나를 두 조각으로 나누는 게 마치 내 마음이 두 동강이 나는 것 같아서, 하나를 먹고도 더 먹고 싶은 에그타르트의 맛을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해주자 생각한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몽글몽글, 포슬포슬한 감촉을 두 아이들이 충분히 느꼈음 싶다.



분명 엄청 좋아할 것이다.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에게 들꽃과 함께 아침엔 울려서 미안했다는 말을 건네주면 에그타르트의 속살처럼 부드럽게 웃어줄 것이다. 거기에 귓속말로 집에 가면 맛있는 게 있다고 속삭이면 신나서 들뜨는 심장이 내 눈앞에 보이는 듯할 것이다. 그만큼 좋아할 것이다.





남편이 두 아이에게 비염이 있는 것 같다며 영양제 링크를 하나 보냈다. 봄이 오고 거친 미세먼지와 봄바람에 남편의 코는 며칠 동안 꽉 막혔고, 나의 눈은 사막과 같으며 하루 종일 재채기를 하느라 울고 싶은 심정일 때가 많다. 이를 닮은 것인지 큰 아이도 자는 동안 코가 막혀 곧잘 짜증을 내기도 하고, 바람이 좀 부는 날이면 콧물을 흘리기도 한다. 남편이 링크를 보낸 이유다.

링크를 클릭하니 15포가 든 한 박스에 35,000원 정도 하는 비염 영양제가 나온다. 이 또한 할인가로 마치 덜 부담스러워야 할 것 같은 가격이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대부분의 상술이 그러하듯, 비염 영양제 또한 한 박스만을 사는 것보다 몇 개월 치를 한꺼번에 사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것처럼 가격을 구성해 놓았다. 만약 아이가 잘 안 먹거나, 효과가 없으면 남은 게 아까워서라도 내 입에 털어 넣어야 하는 것이다. 남편과 나는 몇 마디의 대화 끝에 세 달은 먹여보기로 합의를 본다. 영양제 3개월 값만 270,000원이 훌쩍 넘는다. 선뜻 구매하기 버튼을 누를 수 없지만 에그타르트 두 개를 쟁반에 담은 것과 비슷한 속도로 구매를 한다.


물가가 치솟는 건 어째 적응이 되질 않는다. 부유하지 못해 아이들에게 무언갈 덜 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다 보면 그만큼 자괴감이 들고 허망한 마음이 드는 일도 없는 듯하다. 열심히 일을 하지만 가계가 나아지지 않는 것이 여태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것 같아 괜스레 죄책감 마저 든다. 조금 더 나은 살림을 꾸린 뒤 아이들을 만날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은 잘못 쓴 철자처럼 후다닥 지워 버리고 만다. 나아질 살림을 기다리다간 이 아이들을 절대 못 만났을 거란 것을 알고 있고, 그렇게 간단한 후회로 점철하기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삶의 가치가 끝도 없이 깊으므로.




최근 한 뉴스에서 치솟는 물가로 반찬이 달라지는 일이 참을 수 없게 슬프단 이야기의 인터뷰를 보았다. 정확히는 고기반찬이 사라지는 것이었는지, 그래서 슬픈 것인지 화가 나는 것인지 속상한 것인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대략 맥락이 그랬다. 한동안 그 맥락을 곱씹으며 공감했던 터라 아직 기억하고 있다. 요즘 나도 물가가 비싸 아이들에게 줄 과일을 사는 일이 줄었고, 고기를 밥상 위에 올리는 횟수도 줄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게 미안한 건 어쩔 수 없는 나만의 몫인 걸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나면 남편은 투잡이든 쓰리잡이든 해야지 별 수 있냐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지만, 모든 식구가 잘 먹고 잘 사려고 하는 일이 어째서 점점 자신을 갉아먹는 일이고 가족과 멀어지는 일인지 아이러니하다.


3,400원의 에그타르트와 30,000원이 넘는 비염 영양제 앞에서 일말이라도 망설인 나는 화살을 돌릴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그저 내 마음에 구멍만 내고 만다.

하원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마시던 아이스커피의 얼음 하나를 입에 넣고 카페를 나선다. 가슴에 난 치솟은 물가만큼의 구멍은 하원한 아이들을 만나면 채워질 것이다. 또 한바탕 잊고 지내겠지만 아이들이 까무룩 잠든 밤이면 왠지 모를 허탈함이 그 자릴 대신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꽃이 뭐라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