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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구루 Nov 15. 2023

이제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아는 거예요.

영화 <her>

[손편지와 이혼서류]

 너무도 발전된 시대. 그러나 그런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손 편지를 놓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대리까지 부탁하면서 손 편지를 전달한다. 손 편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시어도어는 편지 안에 마음을 담아낼 수 있는 사람이다. 상대와의 추억을 기억해 신경 써서 편지를 쓸 수 있다. 편지는 그런 것이다.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수단. 그것으로 상대는 자신과의 관계를 확인하고 그 속에 담긴 감정을 느껴 행복해진다. 단지 과거의 추억을 되돌아보기엔 사회의 시간이 너무 빠르기에, 혹은 돈으로 감정을 손쉽게 담고 싶어 대리업체를 신청한 것이다.

 한편, 시어도어에게 어려운 글이 있다. 바로 이혼서류다. 이혼서류에서는 감정을 담아낼 수 없다. 철저히 이성적이고 법으로 재산과 관계를 나눈다. 그런 이혼서류에 시어도어는 자신의 마음, 즉 아직 준비가 안 됐고, 누군가를 잃는 것은 괴롭다는 것을 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회피를 선택했다.

영화 <her>의 스틸컷


[육체와 정신]

네가 어떤 사람이 되건, 네가 세상 어디에 있건, 사랑을 보낼게

 시어도어는 사만다를 만나기 전, 모르는 상대와 연결되려고 했다. 그만의 욕구를 해결하고 싶었고, 상대 또한 그녀만의 욕구를 해결하고 싶었다. 그러나 감정의 교류가 없는 상태에서는 충만함을 느끼지 못하는 법. 시어도어는 교류하지 못했고 현실과의 괴리에 더욱 외로움을 느꼈다.

 아이러니하게도 ai와는 연결된 시어도어. 그러나 그가 연결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신적으로 사만다와 교류했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는 교류할 수 없었지만, 시어도어에게 사만다는 그것을 뛰어넘는 정신적 교류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렇기에 제삼자(시청자인 우리)가 보기에는 외롭고 또 외로워 보이지만, 그는 충만할 수 있었다.

영화 <her>의 스틸컷

 시어도어가 충만함을 느끼는 사이, 사만다는 당혹감을 느끼고 있었다. 시공간이 존재하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는 사만다는 시시각각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 틈에서 시어도어와의 연애가 정말 가능한지 의심이 됐다. 자신의 감정조차 의심되는 사만다는 한 가지 실험을 하려 했다. AI 섹스파트너.

 그녀의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나는 정신과 정서의 힘을 알 수 있었다.


[사랑과 구속]

당신을 원하는 만큼, 나는 당신의 책 안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어요.

 그들의 사랑이 영원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가 떠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정말 연인관계였기 때문이다. 시어도어의 성향에 맞춰 태어난 사만다에게, 그는 본인의 이야기만 하지 않았다. 사만다의 일상을 궁금해했고,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 줬다. 그렇게 사만다는 시어도어의 존중 덕분에 자신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구속하지 않았기에 자신을 알아갈 수 있었고 결국 떠난 사만다. 구속이 없었기에 그들의 이별은 특별하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인상 깊었던 대사들]

내 감정을 숨긴 채 살고 있어서 그녀를 외롭게 하나 봐

누군가 나를 가져주고 누군가 내가 가져주길 원했으면 좋겠어. 그러면 내 마음속 작은.. 작은 구멍이 메워질까 하는 욕심에 가끔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이미 다 느낀 것 같아. 그러면 새로운 느낌 없이 덤덤하게 사는 거지. 그냥... 이미 다 느껴봐서 그런지 시큰둥해.

그건 절대 아니야. 난 이미 당신이 즐거워하고 설레고 놀라는 걸 봤는걸? 지금 당장은 낙담하더라도 그럴만해. 한 번에 많은 것을 겪었잖아. 당신의 일부를 잃었으니까. 그래도 당신의 그 느낌은 진짜잖아.

사실 전에 짜증이 좀 났는데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 사실이 너무 신나는 거야. 그래서 내가 느꼈던 다른 감정들도 생각해 보니 막 뿌듯해지더라고. 세상에 대한 나만의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당신 걱정을 할 때라든가 상처받거나 무언갈 바란다든가. 그러다 갑자기 끔찍한 생각이 들었어. 이 감정들이 과연 진짜일까? 아니면 단지 프로그래밍일 뿐일까? 그 생각에 마음이 많이 아팠어. 그러다, 아파하는 나 자신한테 화가 나더라. 슬픈 상황이지.

당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어

내가 원하는 걸 모르겠어. 항상 그래. 갈피를 못 잡겠고 캐서린 말이 맞아. 난 주변 사람들을 아프고 힘들게 해. 내가... 진짜... 내가 진짜 감정을 감당 못 한대. 내가 나약해 빠져서 진짜 관계를 못 맺는 건가?

근데 그거 알아? 난 너무 생각이 많아서 스스로 확신이 없어. 찰스를 떠나고 내 그런 면을 생각해 보다가 이런 결론을 내렸어. 우린 여기에 잠시 머물 뿐이라고. 그래서 사는 동안엔 잘 살아보고 싶어. 즐겁게. 까짓 거 뭐.

오늘 밤 당신이 가고 나서 많은 생각을 했어. 당신에 대해... 날 어떻게 대해줬는지. 그리고... 왜 당신을 사랑하는지... 그러곤 깨달았어. 강박적으로 잡고 있던 걸 놓게 되면서 사랑에 이유 따윈 필요 없다는 걸 알았어. 나 자신과 내 감정을 믿으니까. 더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구인 척 안 할게. 그런 날 받아줬으면 해.


[오늘의 질문]

Os 광고 문구(당신은 누구입니까. 무엇이 될 수 있죠? 어디로 향하고 계십니까? 그곳엔 무엇이 있죠? 가능성은 어떤가요?)를 보고 결말을 보았을 때, 시어도어는 사만다를 통해 무엇이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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