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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엽 Jan 10. 2021

느슨한 마음 갖기

누가 뒤에서 쫓아오니??


<영화 어바웃타임의 한 장면>

날씨가 급작스레 추워졌다. 며칠 전만 해도 롱패딩을 입고 나가면 약간 덥게 느껴졌었는데 이젠 롱패딩을 입어도 춥다.


친구의 결혼식

오늘은 추위를 뚫고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하남시에 다녀왔다. 차로 가면 1시간이면 가겠지 했건만 30분이 더 지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결혼식 이후에 실내 운전연습을 예약해 두어서 결혼식 내내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 타이트할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요즘 결혼식은 빨리 마치고 식사도 없으니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식은 요 근래 볼 수 없던 정통적인 결혼 예배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1시간을 다 채우고 나서야 예식이 마무리 되었다.


겨울의 신부가 된 친구도 너무 아름다웠고 결혼식 예배도, 축가도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근래에 본 결혼식 중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 조급한 마음이 있으니 100% 결혼식을 감상할 수 없었다. 예식을 마치고 사진 찍을 순서를 기다리는데 느긋한 사람들 속에서 나는 혼자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뒤에 일정이 없었다면 이 아름다운 결혼식을 충분히 즐기고 여유롭게 돌아올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잔뜩 남았다.



쫓기는 듯한 마음

사진을 찍고 나니 이미 3시가 넘어있었다. 실내 운전연습장 사장님께서 당일은 시간 변경이 안되니 시간을 엄수해달라고 단단히 말했기 때문에 더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돌아가는 길은 유독 차가 더 막혔고, 며칠 전 온 눈 때문에 곳곳에 사고가 난 차량도 보였다. 야속하게도 네비는 4시 58분으로 도착예정 시간을 나타내고 있었다.


결론은 4시에 계획한 실내연습장 예약은 가지 못하게 되었다. 왜 항상 급할 땐 또 실수를 하게 되는건지..차에서 내려 지하철을 탔는데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쳐버렸다. 다음 역에 내려 시간을 계산해보니 거의 5시 40분이 다 되어서야 도착 예정이었다. 바로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허무하게 예약을 취소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고단함이 밀려왔다. 꽁꽁 언 다리의 감각도 살아났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도 날리고 시간도 날렸구나.. 근데 한편에서 편안한 마음도 생겼다. 아마 시간에 쫓기던 마음이 자유로워졌기 때문인 것 같다.


나의 5만 원은 통으로 날아갔지만 이제 나는 시간에 쫓기며 연습장에 가지 않아도 된다. 그냥 편안하게 결혼식이나 보고 올 것을.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의 결혼을 축하해주는 날이었는데 온통 조급한 마음에 시달렸다는 것이 더 아쉬웠다.


조급함으로 온전히 즐기지 못한 순간들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나의 조급한 성격을 돌아봤다. 일정을 잡을 때 나는, (1) 빈시간이 없는 것이 알찰 것 같단 생각을 한다. (2) 이 힘든 일정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3) 변수는 고려하지 않고 일정을 짠다. 결국 변수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일정을 빡빡하게 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차가 막힐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고 일정을 짠 것이 문제였다. 또 결혼식이 길게 진행될 것이란 것도 예상하지 않았다. 모두 내 생각대로 이뤄질 것이라는 가정 하에 일정을 짠 것이다. 마치 내가 상상한 대로 다 이뤄질 것이란 꿈을 꾸듯이.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덕분에 조급함에 시달렸고 결혼식도 100% 즐기지 못했다.


마음 느슨하게 갖기

조급한 마음은 늘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게 만든다. 그런데도 나는 늘 조급함을 안고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오늘을 계기로 다시 한번 조급함으로 잃게 되는 것들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글을 쓰다 보니 어바웃 타임 영화가 생각났다. 영화의 말미쯤에 주인공의 아버지가 병으로 죽기 전, 주인공에게 행복의 공식을 이야기해준다. 그 행복의 공식 중 한 가지 조건은 하루를 다시 한번 살아보는 것. 처음엔 의아했지만 주인공은 아버지가 시킨 일을 실행한다. 똑같은 하루를 한번 더 보내며 주인공은 긴장감에 느끼지 못했던 하루의 소중한 순간들을 느끼게 된다. 분명 첫 번째 하루의 마무리에서 주인공의 표정은 피로에 찌들어있었다. 하지만 하루를 다시 보내고 난 후의 주인공의 표정은 여유가 넘치고 즐거운 표정으로 바뀐다.


오늘 다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니 마음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영화 속 주인공과 같은 특별한 능력은 없지만 우리에겐 다시 한번 살아볼 수 있는 하루가 늘 주어진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느긋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행복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기를 다짐해본다.


<영화 어바웃타임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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