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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블루 Oct 06. 2020

당연해서 감사한 것들

가을을 매우, 뼈저리게 타고 있다.

오늘은 갑자기 원할 때면 찾아갈 수 있는 동네 공원이 고맙게 느껴졌다.


언제든 찾아가면 되는 동네 공원, 늘 옆에서 나의 만남과 이별을 같이 겪어내 주는 친구들, 저녁엔 뭘 먹을지 물어보는 엄마의 존재, 나의 종교.


20대 초반쯤 장거리 연애를 하면서 한 지역을 굉장히 많이 오간 적이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지역에 추억이 많아졌고 소중하단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 만나던 사람과의 관계가 위태로워졌을 때, '이젠 이 곳에 오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이 먼저 이별을 실감하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결국 찾아온 이별을 통해서 나는 나를 떠나지 않는 존재들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제든 찾아가면 되는 동네 공원, 늘 옆에서 나의 만남과 이별을 같이 겪어내 주는 친구들, 저녁엔 뭘 먹을지 물어보는 엄마의 존재, 나의 종교.


뭐든지 간에, 다시는 볼 수 없다거나, 다시는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미련을 만들고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 같다.


그 사진이 내 사진첩에 존재하는 것도 싫지만 내손으로 지우는 일은 더 싫다.


연애를 하면 어쩔 수 없이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다. 흔적이 쌓아지면 추억이 되기 마련이다. 내가 이별을 겪으며 가장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은 쌓아진 흔적들을 내손으로 지우고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추억하고자 만든 흔적들이 한순간 돌아보기 싫은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 그것만큼 가슴 아린 일은 없다. 그렇게 몇 번 흔적을 허물어내면 큰 상처가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다음 연애엔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한다. 이별을 받아들이는 법, 이별을 현명하게 준비하는 법 따위는 소용이 없다. 어쨌든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되어버린 것은 맞으니까. 그 사진이 내 사진첩에 존재하는 것도 싫지만 내손으로 지우는 일은 더 싫다.


또다시 원할 때면 찾아갈 수 있는 것들에 감사함을 느낀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은 공허한 마음을 갖게 한다.


가지지 못하는 것을 가지려 하는 순간 조바심이 생기고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은 공허한 마음을 갖게 한다. 내 주변에서 언제든 잡을 수 있는 것들에는 조바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언제든 원하면 찾아갈 수 있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모두가 잊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어떤 걸 상실하고 나면 곁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사무치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친구의 존재, 엄마의 존재, 나의 종교, 나의 동네에 감사함을 느낀다.




왜 잃고 나서야 소중한 것들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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