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야 아들 성구....
비가 오니까 엄마 생각난다. 보고 싶어.
요새는 왜 꿈에도 안나타나?
나 잘 있냐고? 나야 뭐 늘 잘 있지.
엄마가 비 오는 날 자주 부추전 잘해줬잖아.
요새도 생각이 나서 내가 집에서 부추전 해주면
큰 애 예진이는 싱거우니 소금 더 넣고 해물도 넣어 달라, 막내 상권이는
피자를 해달라고 떼를 쓰네. 집사람은 내가 해준 부추전이
짜지 않고 고소한 게 제일 맛있데. 연탄불 위에 손잡이 떨어진 프라이팬 올리고
엄마 일하던 도살장에서 가져온 돼지껍질을 두르면
고소한 기름이 새어 나와 노릇노릇 익었었잖아!
근데 그거 기억나? 그때 낡은 프라이팬 누가 버린 거를 엄마가 주워 왔을 때
내가 많이 화냈잖아. 우리가 거지냐고, 버리라고.
그거 사실 약국 하는 우리 반 반장 집에서 버린 거야.
수정이라고 초등학교 내내 같이 다니던 애
걔네 집에서 일하는 아줌마가 버린 거를 내가 봤거든.
그런데 나중에는 내가 먼저 그 프라이팬 들고 와서는 부침개 해달라고 떼쓰고.
또 그 생각도 나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가
우리 운동회 때 아빠랑 왔었잖아. 이순신 장군 동상 뒤에서 밥 먹었잖아.
그때도 김밥은 못 싸 오고 김하고 계란 프라이, 멸치만 싸왔지만 참 맛있게 먹었어.
아, 그날 운동회 끝나고 집에 갔을 때 나 머리 뒤통수가 깨졌잖아.
난 계주 할 때 넘어진 거라고 말했지 왜. 기억나?
그거 사실 내가 거짓말이야.
엄마더러 장애인이라고 또 병신이라고 놀리는 놈이 있었어.
그 말 듣자마자 화가 나서 그냥 머리로 들이받았지 뭐..
그 녀석은 입술 터지고 코피가 났어.
싸워서 내가 이겼어. 나 잘했지 엄마!
엄마, 엄마도 엄마의 엄마가 보고 싶다고 종종 말했었잖아...
엄마가 살던 고아원 엄마 보고 싶어서 많이 울었다고.
아, 엄마 나 또 사과할 게 있어. 계속 미안하네.
엄마가 한글 모르는 줄 몰랐어.
장롱 사이에 끼어놓은 구구단 책받침하고 커다란 자석 있는
한글공부 판 내가 치워 버렸어.
엄마가 한글 공부하려는 것도 모르고 미안해.
나, 엄마가 낳은 아들 하나인데 나란 놈..,
참 나쁜 엄마 아들놈이다. 그렇지.. 맞지?
엄마 도와준 게 하나도 없네. 그냥 제대해서 엄마 일하는
도축장에 가서 소, 돼지 잡을 때 돼지 피, 소 피 받아 선지 만드는 것 도와주고
정작 냄새나는 내장 손질은 끝까지 도와주고 일 마치자마자 나가 놀기 바빴지.
30개월 군 생활 면회 한 번 안 왔다고 술 진탕 마시고 취해
길바닥에 쓰러져 자기도 했잖아. 업혀 외서는 ‘난 버린 자식이다’고 소리치고.
대학교 보냈더니 데모한다, 연애한다, 술만 먹고 싸돌아다니기만 했지.
공부도 안 하고 싸우고 학교 중간에 관둬서 결국 졸업도 못 하고.
나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아버지가 그러시네. 내가 아기 때 젖 욕심이 많았대.
매일 엄마 젖 만지고 집에서 봉투 붙이는 일 할 때도 생떼만 부리고
엄마 잘 때 엄마 젖 먹다가 한 번은 엄마 등에 난 커다란 혹
그걸 젖으로 알고 빨고 있었다나. 자면서말야..
엄마, 거기 하늘에서는 아프지 말아요.
엄마 입관할 때도 옆으로 누운 거 보고 나 진짜 많이 울었다.
나이 먹으니 도로 아기가 되나 봐. 그냥 눈물이 많아지네.
음악 들어도, 드라마 봐도 가끔 눈물이 흐르네. 집사람도 그렇고.
거기 하느님한테는 평생 고생만 하고 하늘로 갔으니까
인간적으로 그 등에 난 혹 좀 떼어 달라고 해봐.
평생 무겁게 달고 다니면서 고생했으니까.
내가 나중에 올라가서 그대로 있으면 가만 안 둘 거야.
진짜 하느님이고 나발이고 봐주지 않을 거야.
말리지 마 엄마, 그냥 내 원래 성격대로 들이받을 거야 아주!
엄마, 왜 먼저 갔어. 결혼한 아내도 보고 애들 낳는 것도 보고 가야지.
뭐가 급해서 그리 빨리 갔어. 미안하면서도 또 욱하고 화가 나려고 하네.
엄마의 귀여운 손녀딸 초등 3학년 예진이가 그림을 잘 그리네.
예진이가 할머니 생각난다고 보고 싶다고 종종 말해.
얼굴은 할머니 얼굴, 몸은 혹이 난 낙타를 그린 거 있지.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네.
"할머니는 힘센 낙타예요. 물이 없어도 용감해요.
사막에서 물이 없어도 잘 걷고 오래 살 수 있어요. 혹이 있지만 혹이 아니라
보물창고예요. 그 안에는 사람들이 모르는 엄청난 보물이 숨어있어요."
엄마는 낙타! 그래 맞아!
우리 엄마는 등이 굽은 장애인이 아닌 힘세고 용감한 낙타였어.
우리 예진이 할머니 닮아 멋지다. 참 기특하고 예쁘다 그렇지?
엄마, 기쁜 소식 전할게!
사실 이 말하려고 편지 쓰는 거야!
놀라지 마시라. 짠! 우리 드디어 지난달에 캠핑카 하나를 드디어 샀어.
엄마랑 같이 여행 가려고 준비했지.
화장실 욕실도 있고, 밥도 해 먹고, 편하게 잠도 잘 수 있어.
작지만 정말 움직이는 집이야! 예진이가 뛸 듯이 기뻐했어.
엄마는 항상 바다에 가고 싶어 했잖아,
엄마가 항상 가고 싶다는 바다로~ 바다로 가자, 출발~!
차 사자마자 엄마 사진 앞에 딱 붙였어! 이거 엄마 차야. 비싸지 않냐고?
아니 안 비싸. 진짜라니까. 사실 좀 비싸지만 할부니까 괜찮다니까.
걱정일랑 붙들어 매셔. 엄마 아들이 그 정도 능력은 되니까.
서해, 남해, 동해 다 갈 거야! 엄마랑, 예진이랑, 집사람이랑.
아버지도 물론 모시고 같이 가니까 걱정 마세요.
엄마, 보고 싶다! 비가 많이 오니까 더욱더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 앞에서 사랑한다는 말도 못 했어.
사랑해! 진짜 많이 알지? 내 맘. 잘 자요!
또 찾아오고 편지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