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를 떠나 울산에 거의 도착해서였다.
6년 전이었지만 조금씩
기억이 되살아난다.
괘종시계의 태엽이 천천히 풀리듯이.
저기 저 동네와 고개 떠 큰 공장.
신호에 걸려 주위를 보다가
문이 닫힌 분식집 문의 메뉴판의
김치볶음밥이 눈에 들어왔다.
몇 년 전 일이 기억났다.
그때 주말 근무 때
종종 잘 가던 김밥집이 있었다.
참치 김밥을 좋아했지만
내가 즐겨 먹었던 점심은
김치볶음밥이었다.
고슬고슬한 볶음밥에
계란 프라이가 올려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 김치볶음밥.
난 어려서부터 김치볶음밥을
좋아해서 자주 해 먹었다.
부모님 두 분이 일을 나가고
형과 누나는 학교에 갔다 와서
또 친구를 만나러 나갔고
남동생은 늦게 태권도장을 다녔다.
집에 혼자 남은 나는 배가 고프면
김치볶음밥을 해 먹곤 했었다.
할머니는 경로당에서 막걸리를
드시고 있어서 집을 자주 비우셨었다.
곤로에 심지를 올려 불을 켜고
프라이팬을 꺼내 달궜다.
마음이 급해 식용유보다 찬 밥을
먼저 넣고 식용유를 부은 적이 많았다.
다른 건 몰라도 김치는 항상 넉넉했다.
식용유를 두른 찬 밥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면 쉰내 나는
포기김치를 손으로 집어 김이 나는 밥에
올리고 작은 손으로 큰 가위를
가지고 짝짝 잘랐다.
계란이 있으면 신이 났다.
마지막에 계란을 '탁' 깨트리면
부드럽고 고소한 김치볶음밥이 됐다.
마음이 급해 계란 껍데기가 밥에
들어가기 일쑤여서 껍질이
씹힐 때가 많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계란을 맨 처음 프라이팬에
깨서 프라이를 살짝 한 뒤에
밥을 볶아 먹기도 즐겨했다.
어느 정도 볶다가 신문지를 깔고
프라이팬째 들고 텔레비전 앞에
앉거나 마루에 앉아 혼자
그 많은 밥을 해치웠다.
나중엔 눌은밥 맛을 알아서는
일부러 주걱으로 꾹 눌러
숟가락을 북북 긁으며 우걱우걱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어쨌든 김치볶음밥은
반찬이 필요 없고 손쉽게
간단히 할 수 있는 좋은 식사였다.
프라이팬에 숟가락흠집이 나서 종종
혼나기는 했지만 말이다.
토, 일요일 남들 다 쉬는데 일한다고
내가 가는 그 분식집의 아주머니가
고생한다고 밥을 많이 주었다.
하지만 그 분식집도 배달을 많이
하는 곳이었다.
나만큼 쉬지도 못하고
주방아주머니도 카운터의
사장님도 매일 바빴다.
밥맛이 좋다고 소문이 나서
한여름이나 한겨울 그 식당은
늘 붐비고 장사가 잘되었다.
아주머니는 주방에서만 보았다.
안 그래도 밥인심이 좋은 곳이었는데
내가 김치볶음밥을 좋아해서
자주 시키고 뚝딱 잘 먹는걸
보시고 기억을 하셨나 보다.
아주머니께서 음식을 내주는 주방에서
나를 기억하시고는 더 푸짐하게
밥을 볶아주곤 하셨다.
"또 왔네, 배고프겠어~ 금방 해줄게!"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참치가 들어가기도 하고
계란이 하나 더 아래에 깔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듬해 봄인가 가계문이 닫혔다.
이팝나무 가로수의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그 무렵이었다.
그 분식집에 갈 수 없어 상가 안의
편의점으로 도시락을 사러 들어가서
라면과 김밥을 구석에서 먹을 때였다.
저쪽에서 그 아주머니의 소리가 들렸다.
"여기? 어디냐고? 식당에 짐 찾으러 왔어...
가게 월세가 너무 올라
사장님이 가게를 못한데..."
전화를 하시며 들어오는 그 아주머니의 목소리.
반가움에 먼저 아는 체를 하려다가
순간 나는
고개를 반대로 돌려 외면하고 말았다.
주방 아주머니의 모습 때문이었다.
아주머니는 두 다리가 짧았다.
상반신만 보던 나는 키가 너무 작은 아주머니를
처음 보고 너무 놀랐던 것이다.
항상 밝고 명랑한 목소리만 기억하고
나는 주방 아주머니의 상반신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목소리를
기억하고 인사를 드리려 했지만
두 다리가 짧은 그 생경한 모습이
나를 그냥 얼어붙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보처럼
아니 위선자처럼 나는
아주머니가 혹시 나를 먼저 알아볼까 봐
구석에서 도시락에 코를 박고
고개를 숙이고 움츠리고 말았다.
잠깐이지만 나를 알아차리지 못했으면
하는 정말 못된 마음을 가졌다.
아주머니가 나가고 한 참 후에
나는 조심스레 편의점을 나와
문닫힌 가게를 무심히 지나갔다.
힐끗 보니 가게의 주방 쪽으로 문이
조금 열려있었다.
난 뭔가 잊은 척 핸드폰을 귀에 대고
되돌아가며 문을 슬쩍 옅보았다.
주방기구는 정리된 채 걸려있었고
어두운 정적이 깔린 작은
주방에는 기다란 나무 선반이
가스불 앞과 음식을 내주는 쪽으로
길게 이어져있었다.
장애를 가진 아주머니는
나무발판을 그 조그만 주방의 사방에
깔아 자신의 키와 높이를 맞춘 후
그 수많은 요리를 하고
일을 하고 계셨던 것이었다.
가족을 위해서 말이다.
나에게 해주신 그 맛있는
푸짐한 김치볶음밥에 대한
그동안의 호의에 대한 감사의
인사는커녕 오랜만에 보고도 못 본 척했다.
그저 다른 생경한 모습에 놀라서 말이다.
정말이지 죄송스럽고 미안한 마음을
아직도 부끄럽게 간직하고 있다.
왜 미안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지.
"아주머니 그때 너무 죄송했어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