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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곰인형 20화

등골

by 황규석

어둠이 서서히 엷어지기 시작했다. 날씨가 차다. 소와 돼지를 실은 트럭들은 전 달보다 훨씬 분주하게 들락거렸다. 연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자신이 싸 갈긴 배설물로 범벅이 된 돼지들을 모아 실은 트럭들은 하나같이 남루한 호루가 씌워져 있었다. 녀석들은 밤사이 지하 도축장에 하차된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머리에 전기 충격기의 전류가 가해지고 순식간에 기절하고 쓰러진다. 이어 뒷다리 발목에 굵은 쇠사슬이 걸리고 거꾸로 매달린 채 모터에 의해 일정한 속도로 도축장 작업대에 올려진다. 지상으로 올라오면 지상의 작업대가 그것들을 맞는다. 작업자들은 일 열로 서서 배분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다.


가장 먼저 돼지의 목에 도살자의 칼이 들어간다. 돼지의 목을 따는 것이다. 이후 복부의 내장과 창자들을 조심스럽고 손상되지 않도록 등 안쪽에서 분리하여 축출한다. 내장을 뺀 복부가 홀쭉해지면 머리를 절단하고 해체된 녀석들은 생명체에서 고기 즉 물건이 되었다. 허여멀건 거꾸로 매달린 채 전동 도르래의 작동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이동된다. 이후 무게를 저울에 달아 경매가 시작되고 냉동고에 옮겨진다.


기석은 굳게 닫힌 철문에 매달리듯 힘을 주어 열었다. 죽음으로부터 또는 그 공포스러움을 견디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녀석들의 몸부림으로 찌그러진 문짝은 붉은 녹이 처덕처덕 덮였고 그래서 두 세배의 힘이 먹혔다.

도축장은 평지보다 높고 경사가 심한 곳에 지어졌다. 오물이 잘 빠져야 하기 때문이다. 장화가 신긴 발은 걸핏하면 넘어졌다. 위험하기 짝이 없다. 소금을 한 주먹씩 뿌렸다.


12월 도축장의 새벽은 늘 분주하다. 황소들은 호루도 없는 트럭으로 밤새워 찬바람을 맞으며 달려와 도축장에 들어온다. 기석은 도축장 구석에 어설프게 지붕도 없이 지어진 우사를 바라보고 긴장했다. 군데군데 살얼음이 낀 거친 땅바닥과는 달리 황소들의 코는 촉촉했다. 기다란 혀로 자신의 콧구멍을 수시로 핥았다. 서늘하고 낯선 기운을 내몰려고 하는 긴장된 행동이었으리라. 죽음을 앞둔 녀석들과 작업자들이 뿜어낸 입김으로 도축장은 사우나 한증막을 연상시켰다.


어떤 녀석은 태연히 자기 집 안방처럼 느긋하게 앉아있다. 눈치 빠른 어떤 녀석은 전신을 부르르 떨면서 ‘움머어’하고 울어댔다. 자신의 슬픈 운명을 예감하기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이제 시작하자!” 공장장의 작업 명령이 떨어졌다. 김 과장이 기석에게 손짓했다. 기석은 되새김질을 하는 황소 한 마리의 엉덩이를 툭 치고 코뚜레에 묶은 줄을 풀어 밖으로 몰고 나왔다. 눈이 크고 피도 말끔했다. 착하고 온순해 보였다. 발굽이 거친 바닥을 디딜 때마다 따각 따각 뾰쪽 구두 소리가 났다. 살얼음 낀 경사면을 위태롭게 간혹 헛걸음질을 하면서도 잘 따라 올라왔다.


안쪽에서는 체구가 큰 김 과장이 붉은 앞치마를 단단히 조이고 붉은 비닐이 코팅된 목장갑을 고쳐 끼면서 다가왔다. 깊게 담배를 한 모금 길게 빨더니 꽁초를 바닥에 힘껏 팽개친다. 곧 구석에 세워진 쇠망치를 들었다. 기다란 쇠 파이프에 오함마가 끝에 걸려있고 그 끝에 길쭉한 작은 송곳 같은 쇠가 단단히 용접이 되어 있었다. 이 일에 잔뼈가 굵은 김 과장의 머리로 직접 설계된 도살 장비였다.

영문도 모르는 황소는 그 커다란 눈을 굴리며 음습하고 낯선 건물 안을 주춤거리며 탐색했다. 이내 그곳이 자신이 죽어야 할 곳이라는 것을 감지했다. 잔뜩 겁을 먹은 황소는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고 코를 벌름거렸다. 호흡이 가빠졌다. 곧 다가올 자신들의 죽음의 냄새를 직감한 것이다. 김이 모락거리는 오줌을 한바탕 지리기 시작했다. 기석은 고삐 줄로 엉덩이를 세게 쳤다.


기석은 익숙한 동작으로 천천히 황소의 정수리를 타격하기 가장 좋은 위치에 멈추어 섰다. 소는 기석을 보다가 쇠망치를 들고 오는 김 과장과 눈이 마주쳤다. 엉덩이에서 똥이 무더기로 나왔다. 아직 소화가 덜 된 묽은 똥이었다. 죽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따악!"

쇠망치 소리는 허공을 가르고 까마득히 높은 회색 천장에 울렸다. 큰 황소 한 마리가 눈을 부라리다가 쓰러졌다.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고목이 넘어지듯 쓰러졌다. 김 과장은 망치를 놓고 허리춤에 찬 칼을 뽑아 들었다. 넘어진 황소가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김 과장은 뒤로 물러섰다. 기석도 소를 데려왔던 상인도 경악하여 한두 발 뒤로 물러섰다.

정확하게 힘이 실린 김 과장의 한방이면 어떤 소도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기석도 두 달째 작업하면서 처음 보는 당하는 일이었다. 김 과장이 다시 허둥지둥 쇠망치를 들었다. 대가리에 구멍이 뚫린 황소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몇 걸음을 떼었다. 하지만 금방 심하게 비틀거렸다. “야, 기석! 뭐 한다냐 얼른 쫓아가! 빨리 잡아!” “네! 알겠습니다”


김 과장의 목소리는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웠다. 덩치에 비해 너무 얇고 가는 목소리였다. 기석도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어쩔 줄 몰라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김 과장이 코뚜레에 묶인 줄을 발로 밟았다. 기석이 뒤쫓아 줄을 따라가 낚아챘다. 황소의 구멍 난 대가리에서 빨간 피가 한 줄 흘러내렸다.


기석은 비틀거리는 소를 다시 가운데로 몰았다. 황소도 이제 물러서지 않았다. 기석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듯했다. 씩씩대며 가쁜 숨을 몰고 버티었다. 김 과장이 다시 천천히 다가갔다. 쇠망치를 들어 잽싸게 내리쳤다. 황소가 휙 고개를 돌려서 비껴 맞았다. 숨을 몰아쉬는 소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오호 고놈 참! 힘 좋네, 오늘 첫 빠따부터 재밌네. 기석아 눈 가려라!”


작업 현장의 사람들도 모여들어서 기석이 잡은 줄을 같이 잡고 힘을 쓰고 있었다. 한 손에 침을 칵하고 뱉은 뒤 다시 김 과장의 쇠망치가 하늘 높이 올랐다. 기석은 황소의 눈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황소가 멈칫했다. 그 순간 김 과장의 팔에서 찬 바람이 일었다. "퍽!" 육중한 쇠망치질. 앞서 뚫린 구멍에 정확하게 다시 박혔다. 강력한 단발의 쇠망치 소리가 높은 천장을 뚫고 나갈 듯 울려 퍼졌다. 너무 아파서일까 바닥에 쓰러진 황소가 쓰러지자 바닥이 진동한다.

황소의 대가리에서 튄 뼛조각과 진득한 핏물이 기석의 뺨과 코로 날아왔다. 미적지근한 핏물이 흘러 입술에 닿았다. 찝찔하고 들큼했다. 물컹하면서 기묘한 불쾌감도 뒤따랐다. 황소는 그렇게 무너졌다. 엉덩이가 출렁거리면서 혀를 길게 빼물었다. 그 두툼한 혀도 축 늘어졌다. 허연 거품이 입에서 피어올랐다. 네 다리가 제각각 허공을 가르며 느리게 움직였다.

기석은 재빨리 소의 커다란 대가리에 올라탔다. 이미 쇠꼬챙이를 들고 기다렸던 상태. 마지막으로 소의 숨통을 정확하게 끊는 작업이다. 쇠망치로 가격 당한 황소의 두개골 정 중앙에서 골이 희끄무레 쏟아졌다. 기석은 그 구멍에 쇠꼬챙이를 밀어 넣었다. 녀석은 화들짝 발작을 일으켰다. 마지막 미력도 잃은 걸까. 아니 착각이다. 마지막 안간힘에 기석은 쇠꼬챙이를 놓치고 목덜미에서 튕겨 나가기도 했다. 그날 이후, 기석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쇠뿔을 손잡이처럼 꽉 잡고 몸에 힘을 주고 앉아 두개골의 구멍을 힘주어 쑤셔댔다.

마지막까지 이어질 숨통을 지켜보다가 기석은 처음엔 하수구에 머리를 쑤셔 박고 토악질을 했었다. 그 작업은 기석의 일상이 되었고 허공에서 사지를 휘젓는 마지막 생명의 발버둥은 별 의미로 전달되지 않았다. 잠시 후, 기력을 잃고 머리통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마지막 모습은 기석에게 당연한 일상이며 하루의 일과 중 한 가지일 뿐이었다. 소 대가리의 동그랗고 커다란 눈동자와 기석의 눈이 마주쳤다.

표정 없는 그 주검의 눈동자에 기석은 멈칫했다. 잠시 긴장했다. 녀석의 허옇게 치뜬 눈이 아주 짧은 순간 불쾌감을 주었다. 하지만 기석은 황소의 죽음을 재차 확인했을 뿐이다. 기석은 빈 식용유 깡통 한 묶음을 가지고 왔다. 소금이 한 옴큼 담긴 깡통에 소의 피를 먼저 받고 이어 돼지의 피를 받아 물을 섞는다. 사람이 먹기 위한 선지를 만들기 위한 절차다.


김 과장은 쇠망치를 놓고 허리춤에서 칼을 빼 야스리에 쓱쓱 문질러 갈았다.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는 녀석의 목을 끊어야 한다. 김 과장은 이곳 도축장에서 가장 키가 크고 덩치가 우람하다. 제대 후 복학 전에 일을 다닌다고 말하니 남자는 고생을 해봐야 한다며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자신도 집안이 어려워 군대에 말뚝을 박으려고 했었다고 말했다.

과장은 숨이 끊어진 소의 목 앞에 가만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소머리를 푹 꺾었다. 이어 번뜩이는 덩치에 비해 작은 칼을 칼춤에서 쓱 뺐다. 축 늘어진 목 부분에 능숙하게 칼을 대고 지퍼를 열 듯 목 가죽을 벗겼다. 가볍게 칼이 지나가자 목에 소가죽자루가 생겼다. 기석은 서둘러 네다섯 통의 빈 깡통을 가져다 놓았다. 김 과장의 옆에서 그의 예리한 칼질을 주시하면서. 기석이 바로 뒤에 앉아 바가지를 들고 대기하고 있음을 알자 김 과장은 소 목의 가죽에 작은 칼집을 내서 손가락을 끼고 잡을 수 있는 손잡이를 만들어 기석에게 넘겼다.

김 과장은 소의 목 중앙에 그러니까 목 가죽을 베어 가방처럼 만든 주머니 안 살점을 날카롭게 노려보다가 칼끝을 그 붉은 핏줄이 드러난 살점 정중앙을 단번에 푹하고 찔렀다. 피가 흘러서 주머니에 차기 시작했다. 구멍에서 나오는 피를 확인하고는 싱긋 웃으며 빠져나갔다. 마지막으로 소가 짧게 경련을 일으켰다.

그리고 엉덩이가 몇번 요동치고 뒷다리가 푹 힘없이 떨어졌다.세포가 모여 만들어진 근육의 외부 충격으로 인한 반사 동작이었다.


8개의 깡통에 피를 받았다. 보통 소 한 마리에 4~5통의 피를 받는데 더 많은 피를 받은 것이다. 오후가 되면 선지가 모자라 바가지로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퍼 담았다. 한 통이 채워지지 않자 소의 목을 돌려 허벅지로 눌러 피 한 방울까지 짜서 깡통에 담았다.


김 과장이 소의 머리통을 완전히 잘라냈다. 코뚜레를 빼었다. 간혹 누군가의 부탁을 유념해서다. 그렇게 황소의 머리와 큰 몸이 금방 분리가 되었다. 모가지가 잘린 소는 양쪽 뒷다리가 쇠사슬로 걸고 거꾸로 높이 매달았다. 커다란 기중기에 의해 들려진 황소. 김 과장은 커다란 전기톱의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정확히 반에 걸치고 아래로 힘주며 가르기 시작했다. 소의 몸통을 반으로 가르는 신경질적인 전기톱 소리는 소의 몸을 통과하면서 더 켱쾌했다. 그리고 모든 소음을 집어삼켰다.

황소의 거구는 정확히 반으로 딱 갈라졌다. 소를 잡는 일의 마지막은 잘린 소 척추에서 등골을 빼는 일이다. 기석은 작은 칼과 바가지를 들고 반쪽으로 허공에 매달린 황소의 등골을 축출, 도축장을 중심으로 양쪽에 늘어선 정육점과 식당으로 보냈다. “여기 이렇게 칼로 슬슬 달래 빼면 돼. 끊어지지 않게 걸린 거 풀 듯이.” 엄마가 여러 번 시범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기석은 처음엔 곧잘 등골을 끊어먹었다. 그러면 상품성이 떨어진다. 여러 번 자세히 보고 따라서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엄마가 하면 줄줄이 사탕처럼 잘 길게 빠져나오는데 날카로운 갈비뼈에 걸려 끊어지기가 일쑤였다. 바로 발라낸 유윳빛 따뜻한 등골을 입에 놓었다. 부르럽고 달콤한 치즈같다. 제일 신선한 등골을 빼서 맛보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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