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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곰인형 21화

김 여사님 힘내세요

지하철 화장실 옆 작은 창고 안은 우리 여사님들의 휴식처다

by 황규석

김 여사님은

요즘 마음이 심란하다.


생일이라고 딸이 점심도시락으로 싸준

맛있는 소고기 미역국이

목에 걸린다.

늘 사랑이 야속하더라

가는 세월이 무정하더라며

신나게 걸레질하며 흥에 겨워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도통 흥이 나지 않는다.

신랑이 풍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된 지 8년째이다.

간호사인 큰 딸이 열심히 일하고

둘째 딸은 경찰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이다.

막내아들은 지난달 군대에

갔는데 코로나 때문에

훈련소 퇴소식도 못 가고

지난주 생일도 챙겨주지도 못해서다.

하지만 김 여사님의

제일 큰 걱정은 큰 딸이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와 얼마 전 헤어진 이유가

자신의 집안이 별 볼일이 없어서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난 괜찮아 엄마

좀 늦게 가면 어때 돈 더 모아서

더 좋은 남자 만나면 되지.

자신을 위로하는 의젓한 딸.

하긴 날로 치솟는 전세 값에

방 한 칸도 구하기 힘든 세상이긴 하다.

백화점에 이어진 지하철역

남자 화장실 옆 걸레 빠는 수도가 있는

창고 안에 쪼그려 앉아

점심을 먹고 벽에 기대 잠깐 눈을 붙인다.

속이 더부룩한 게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리저리 그 좁은 곳에서 자리를 고쳐 눕는다.

점심 먹은 게 얹힌 것 같다.

그때 청소반장인

송 여사님이 들어온다.

우리 김 여사님 이거 잡솨봐

매실 진액이여, 기운내고

널린 게 남자고 널린 게 집이여

자자 기운 내자고 잉

아유 정말 고마워요. 반장님.

고맙긴 우덜이 남인감. 기운 내자고 암.

자네 딸 버린 놈이 아주 후회할 겨

우리 김 여사님, 힘내세요

그렇죠. 우리 딸이 속이 깊어요.

얼마나 참하고 예쁜데요.

김여사는 다시 기분이 좋아지는 듯 얼굴이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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