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잊고 포기해서는 안된다
배 천장의 조명이 들어왔다 나갔다가 한다. 기울어진 합판 위에서 구명정을 입고 있는 위태롭게 기둥을 잡고 버티고 있는 아이들. 방송소리가 들린다.
방송소리: “학생 여러분, 움직이지 마세요, 가만히 자리에 있어요”
학생들의 목소리가 섞여 들린다.
남학생 1: 아, 씨 졸라 짜증 나네 언제까지 기다리라고.... 시바 물들어 오잖아
남학생 2: 와우, 레알 위험, 이거 구조대는 오는 거야? 배가 가라앉는데....
여학생 1: (급박한 목소리로 울먹이며) 엄마, 엄마 나야 지금 배가 침몰하고 있어...
지금 물이 많이 들어와요... 어떡해... 살려주세요...
남학생 2: 이거 훈련이냐? 진짜냐? 진짜 같은데.... 훈련이면 졸라 위험한데...
여학생 2: 거기 119죠? 네 , 여기 지금 우리 친구들이 제주도 수학여행 가는데요.. 이거 배가 갑자기 기울고, 바닷물이 들어와서... 나갈 수가 없어요. 도와주세요..
다시 배가 아이들이 위치한 객실이 크게 휘청이듯 흔들린다. 기물이 부서지는 소리가 괴물처럼 들린다. 다시 들려오는 소리
방송소리: “학생 여러분,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마세요, 구조대가 오고 있으니 안심하세요”
남학생 1: 염병! (버럭 고함을 지르며) 야! 씨발 가만있으면 뭐가 나오냐! 아무래도 물에 뛰어들어야겠다.
여학생 3: (붙잡으며) 안돼, 위험해... 가만히 있어... 벌써 물이 많이 들어오잖아... 아! 무서워... 어떡해... 우리 죽는 거 아냐? 아니지?
남학생 2: 이거 수능은 커녕 연애도 한 번 못해보고 이거 가는 거냐 실화냐 지금... 내 이럴 줄 알았다.,. 어째 출발 때부터 이거 낌새가 아주 그냥... 에휴...
저쪽 기울어져 잘 열리지 않는 객실문을 어렵게 열고 다른 쪽에서 한 여자 선생님이 이마에 피를 흘리며 다리를 절며 힘겹게 들어온다.
선생님: 구명조끼 다 있지, 얘들아 침착해... 괜찮을 거야... 걱정마 지금
구조대가 오고 있으니까... 엄마 아빠한테 전화해서 알리고... 걱정 마. 꽉 붙잡아...
남학생 1: 선생님, 밖으로 지금 탈출하지 하지 않으면 다 죽어요. 빨리 나가야 돼요.
여학생 3: 선생님... 이제 우리 어떡해요....
남학생 3: 아, 씨... 이거 완전히 좃됐네, 좃됐어...
선생님: 얘들아! 나는 저기 아래 누가 있는지 가볼게 힘내자, 별일 없을 거야.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아이들의 어깨를 다독인다) 미안해... 사랑한다...
아이들: (서로 손을 꽉 잡으며) 선생님... 조심하세요....
넘어져있는 테이블이 있는 음습한 어둠침침한 객실 안, 핸드폰 손전등 불빛 몇 개가 간신히 켜져 있다. 어지럽게 어질러진 물건들 집기들 그리고 여행가방이 나뒹군다.
남학생 1: (무대 안으로 들어서며)아 졸라 짜증나.... 우리 언제 나가는 거야...
남학생 2: 야 너는 왜 매일 그렇게 욕을 달고 사냐? 졸라 짜장이 뭐냐?
남학생 1: 아 씨 졸라 너는 또 뭐야? 졸라
여학생 1:야, 재는 원래 저런 아이야 상관 마라 말 섞으면 물들어...
남학생 2: 어휴... 진짜 짜장난다.....
남학생 2: 그럼 나도 해야지~. 이것은 트렌드! 굉장히 해물짬뽕, 굉장히 난자완스!
여학생 2: 애들이 물을 먹고 나니 다들 제정신이 아닌가 보다.... 우리가 참자....
여학생 3: 야 근데 범수는 어디 갔냐? 또 어디로 잠수 탔어? 그러고 보니 수진이도 안 보이네? 둘이 사귀니? 레알 커플?
여학생 1: 응 그렇다네. 걔네 둘이 완전히 물 만났네.... 저기 제주도 쪽으로 간다데
그래, 누가 뭐라든 사귀어라 사귀어~~~ 피지도 못한 꽃과 나비 만나서
지지고 볶은들 누가 뭐라고 하든? 부럽다 부러워
남학생 3: 아, 굉장히 부럽 개부럽
(순간 저쪽 구석에서 커다란 봉을 타고 내려오는 앳된 짧은 쇼트머리의 교복 입은 여학생 4 등장한다. 머리와 옷이 물에 젖어 있는 모습이다.)
여학생 1: 렛있고..... 렛있고.....
남학생 1: 야! 그건 얼음왕국이고.... 우린 인어공주 주제곡을 불러야지.... 굉장히 창피...
여학생 1: (요염하게 포즈를 취하며) 다 잊고 다 잊고..... 아... 근데 어쩌지...
우리 전부 잊히는 건가... 이렇게 검은 바닷속에서...
여학생 2: 아니 우리는 영웅이야 영웅! 죽어도 죽지 않는 불사신이야!
영원히 잊히지 않을 거야! 그럼 안 그래 얘들아?
남학생 2: 염병! 개뿔이 영웅이다. 영웅은 무슨 얼어 죽을!
남학생 3: 수학여행 때 꼭 교복 입고 오는 애들이 있긴 하지...
여학생 3: 그런 애들이 공부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지.... 맞아.
여학생 1: 공부? 얼어 죽을 공부! 그게 뭐가 중요해! 재밌게 살면 되지~~~ 난 제멋에 살 거야!
두고 봐, 내가 공부하는 애들보다 더 신나게 살거라고!
남학생 2: 저기 근데 우리 수학 선생님 너희들 못 봤지? 누구 본 사람 있니?
여학생 2: 아니, 선생님 참 이쁘시고 좋은 선생님시던데... 불쌍하다.... 너무 불쌍해... 으앙..
남학생 1: (체념한 듯) 아, 굉장히 개불쌍, 개슬픔.... C발 헬조선! 계약직 선생님
남학생 3: (철망이 처진 벽을 손잡고 밖을 보고 절규하듯 소리친다) 여보세요!
거기 아무도 없어요.... 제발 살려 주세요... 사람 살려요! (0.L)
여학생 1: (달래듯) 애기야 울지 마, 이미 끝났어... 우린 이미 죽은 거야....우린 발견만 돼도 감지덕지지.
여학생 2: 그래 욕심내지 말고 그냥 오늘을 기억하자.... 3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그냥 젊은
그때 그대로라고... 이런 영원히 늙지 않는 이런 삶도 나쁘지 않아..
여학생 3: (울먹이며) 어제 엄마를 꿈에 만났어... 아빠는 흰머리가 늘었더라..
귀여운 남동생은 고등학생이 돼서 의젓하더라고.,.. 보고 싶어... 보고 싶다고!
남학생 2: (간절하게) 치킨 짜장 먹어봤으면 좋겠다. 원 없이 된장 그런데 배가 고프지 않으니...
여학생 3: 그런데 우리가 왜 이렇게 된 거지? 누구 때문이야! 우리 청춘.. 꿈.. 다 날아갔잖아!
남학생 3: 내 생각엔 말이야.... 음.... 에이 말 안 할래.... 지금 내 귀에 도청장치....
여학생 2: 어른 말 들어서 하나도 득이 될 거 없다는 진리를 알게 되었도다... 호호호
남학생 1: 치킨을 먹고 싶어도 피자를 먹고 싶어도 배달이 안 되는 굉장히 억울한 세상!
여학생 2: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흐흐흐흐흑아빠.... 보고 싶어요... 아빠...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여학생 3 다가가 등을 두드리고
위로해 주다가 같이 부둥겨 안고 흐느끼듯 운다...)
남학생 2: (기타를 들고 있는 듯 그럴 듯이 폼 재면서)
그대여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 불러요
벚꽃이 휘날리는(삑사리....) (F.0)
현실의 두 개로 나뉜 방이 보인다. 꿈인가 진짜 현실인가 싶다. 왼쪽이 여학생의 책상과 분홍색 침구가 놓여 있는 아기자기한 여학생의 공부방이다. 오른쪽 소박한 거실로 식탁에 따스한 밥이 반찬과 놓여 있다. 여학생 공부방 책상에 앉아 아빠가 아이의 사진과 가방 신발 보고 있고 오른쪽 왼쪽 분홍색 여학생의 공부방에 불이 들어온다.
아빠: 우리 딸... 네가 떠난 지도 3년이 되었구나... 배고프지 않니. 아빠가 미안해..
너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주지 못해서 미안해... 너무 보고 싶구나...
춥지 않니 그곳은..... 아빠가 꼭 너 찾을 거야. 그리고 진실을 밝힐 거니까
억울해하지 마라... 우리 딸... 너무 보고 싶다.. 사랑한다..
(아빠는 딸의 책상을 어루만지다 침대에 쓰러져 펑펑 운다, 딸은 아빠의 등 뒤에서 그런 모습을 보고 훌쩍인다. 하지만 다가서 안길수도 없는 몸이다)
다시 공부방의 불이 꺼지고 작은 거실 식탁에 불이 들어온다. 둘러앉은 가족들 한자리가 비어 있지만 밥이 놓여 있다. 할머니, 엄마, 아빠, 여동생. 모두가 말없이 조용히 천천히 밥을 먹는다. 텔레비전에서 세월호가 상처 난 모습으로 물속에서 드러나고 다시 육지에 올라와 있는 모습이 드러난다. 뉴스기자의 목소리가 들릴뿐 조용하다.
할머니: 우리 손주 이제 찾을 수 있는 거니...
아 빠: 그럼요. 꼭 찾을게요. 걱정 마세요 어머니...
엄 마: 아들, 네가 좋아하는 불고기 해놓았다. 지금 와서 먹고 있지 많이 먹어. 추운데
고생했다. 엄마랑 아빠가 이제 힘들지 않게 할게... 걱정 마
남학생 1: (무대 저쪽 저기 멀리서 바라보며 슬픔을 억누르며 ) 할머니, 저 잘 있었어요.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요. 엄마, 아빠 저 이제 어른이에요. 걱정 마세요. 힘내시고요. 동생 많이 컸네... 말 잘 듣고...
가족이 앉은 식탁 주위로 다가가는 남학생 1, 가족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보지 못한 듯하다. 천천히 하나하나 뒤에서 앉아준다. 그리고 무대를 천천히 벗어난다. 가족들 누가 왔는지 남학생 1이 나간 쪽을 천천히 물끄러미 바라본다.
고등학교 담벼락에 서있는 벚꽃 나무의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따뜻한 봄날이다. 저기 한쪽으로 노란색 교문이 보인다. 살랑이는 봄바람에 벚꽃이 바람에 날리는 등교시간 상쾌한 아침이다. 새소리가 들린다. 벚꽃 잎이 날린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평소처럼 재잘거리며 등교한다.
헤어롤을 하고 들어서는 여학생 1이 있다. 핸드폰으로 셀카를 찍다가
무대를 보며 웃고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발랄한 모습이다.
왕빗을 칼처럼 휘두르기도 한다.
말인형을 끌고 오는 여학생 2도 있다. 아이들이 길을 막아선다,
말인형을 뺏어 발로 차버린다.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이내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객석을 보며 작은 거울을 들고 분홍입술 보습제를 바르며 오는 학생이
객석을 보며 방긋방긋 웃어 보인다.
남학생 1은 슬리퍼를 신고 우수 어린 표정으로 들어선다.
남학생 2는 기타 가방을 들고 이어폰을 듣고 온다.
무대 뒤 저기 멀리서 뛰어오면서 남학생 3이 신발가방을 남학생 1에게 던진다.
뒤통수를 맞은 남학생 1이 깜짝 놀라 뒤를 본다.
도망가는 남학생 3을 쫓아가 해드락을 건다.
뒤따라 오는 여학생 2가 다시 남학생 3의 엉덩이에 똥침을 놓는다.
깔깔대면서 웃는 학생들... 교문 안으로 들어가고 잠시 후 땡땡 학교종이 울린다.
평화로운 하루 오후의 학교의 풍경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모두가 다시 교문을 나온다.
그리고 손을 흔든다.
단체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저기 멀리서 여자 선생님이 늦게 달려 나온다.
모두 온화로운 미소를 짓는다.
정지화면처럼 동작을 멈춘다.
그리고 모두 손을 잡고 걷다가 한 명씩 나와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영원한 이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