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작은 남자와 키 큰 여자 중 누가 과연 승자일까
어제 퇴근길이었어요. 환승 버스 정류장에 막 뛰어갔어요. 허겁지겁 지하철역 300 계단을 걸어 올라와 버 스 정류장에 왔는데 마침 쫘악! 평소 30분 정도는 기다리려야 했던 빨간 버스 말고 녹색 버스가 금방 와 이게 참 기분이 좋더라고요. 거기다가 사람도 적어서 자리가 남네요. 따따봉! 버스에 올라타서 출구 쪽에 앉았죠. 그런데 내리는 문쪽에 아랫 계단 구석에 500원짜리 동전이 하나 쫘악! 내 눈에 들어온 거 있지요! 야... 신기했어요. 왜냐면 오늘 서랍 정리하다가 동전을 모아 계산했는데 720원이었어요. 커피 살 돈이 모자라 저걸 언제 처리하나 했거든요.
가만 있자 저 5백 원만 있으면 제가 좋아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편의점에서 1300원에 살 수 있겠더라고요. 80원이 모자라다고요? 합치면 1230원이니까 부족하다고요? 에이, 뭘 모르셔 통신사 할인 되잖아요. 하하하. 그래서 전 저 500원 동전을 어떻게 갖고 내리냐만 생각했죠. 잠시 후 시원스러운 연두색이 예쁜 원피스 입은 여자분이 달려왔어요. 여대생인가 아니면 아가씨일까? 아니 혹은 새색시 일지도 모르는 얼굴에 여유가 있어 보이는 아리따운 여성이었습니다. 제 뒤를 이어서 버스에 금방 올라탔어요. 제가 좀 둔해서 나이나 연령대를 잘 몰라요. 바로 내리려고 하는 건지 타자마자 중간 출구 쪽에 손잡이를 잡고 서더라고요.
그런데 그 여성분의 미모가 아마 올해 본 여성 중에 탑 3에 들어도 무리가 없겠더라고요. 일단 키가 컸고요. 175cm 정도 되는 것 같았어요. 제가 165cm가 조금 넘는데 저보다 한 뼘은 더 커 보였으니까요. 키 작은 나는 키높이 구두를 신은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키가 큰 여성은 너무 키가 커보지 않게 굽이 없는 구두를 많이 신었더라고요. 이 여성분도 굽이 거의 없는 단화를 신은 얇은 복숭아뼈가 아주... 늘씬하고 긴 머리 쓸어 넘기는데... 눈이 잠깐 마주쳤는데... 심장이... 마치 제게 이런 말을 하는 거 같았어요.. ‘눈 깔아.. 어딜 넘봐...’ 제가 소심하고 자격지심이 심해서 여하튼 와우~! 정말 미인이었어요.
달콤한 향수까지 내 이상향에 가까웠어요. 단지 키가 좀 너무 큰 게 흠이라면 흠이라고 할까요. 전 170을 겨우 넘었는데 거의 제 머리가 제가 그녀 어깨쯤... 아무튼 그녀를 힐끗 보면서도 머릿속에서는 바닥에 떨어진 500원이 생각났어요. 계속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생각을 했어요. 근데 저걸 어떻게 주울까. 음.. 아 , 내가 뭘 흘리면서 줍는 척해야지. 아 그녀 눈웃음이.. 저 여자 남자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부럽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순간 전 제 볼을 꼬집었어요, 집중하자 집중! 하여튼 뭘 떨어트리는 척하면서 같이 주우면 자연스럽게 해치울 수 있을 거야 넘들은 모를 거야 생각을 했죠.
몇 정거장 지나고 아까 그 긴 생머리 키 큰 여자분이 버튼을 누르더라고요. 그리고 버스가 정차하고 여자가 내리는데 슬쩍 구석에 놓인 동전을 차면서 발길질을 하더라고요. 남들이 보면 발을 헛디딘 줄 알겠더라고요. "티잉~!" 하면서 500원이 저 멀리 버스 밖으로 날아가더라고요. 어어.. 내건데.. 키힝... 아니 내가 찜 했는데....ㅠ.ㅠ 창문으로 돌아보니 신발 다시 신는 척하면서 쪼그려 앉더니 5백 원을 자연스럽게 주워 들고 씩씩하게 모델워킹하듯이 돌아가더라고요. 어우야, 눈치도 빠른 게 정확하고 날렵하고.. 거기다가 여자가 생활력도 참 강하네요. 여하튼 부러운 여자였어요.. 어떤 남자인지 그 여자의 남자친구는 로또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헛물만 삼켰죠.
그래도 뭐 제가 오늘 소득이 없진 않았어요. 환승 버스 빨리 와서 시간 절약했고 안구정화하고 무엇보다 교훈을 얻었답니다. 계획했으면 남들보다 빨리 실행해야 뭔가 가질 수 있다는 걸 한다고 배웠으니까요. 집으로 와서 옷을 갈아입었어요. 등 쪽에서 땀이 많이 났어요.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바지를 벗었어요. 어라, 그런데 지갑이 내 지갑이 안보였어요. 운전면허증과 신용카드 그리고 이번 주 용돈 3만 원이 들었던 지갑이 안 보이는 것이었어요. 아.... 하늘이 정말 노래지네요. 어디서 또 칠칠치 못하게 흘려버렸나 봐요. 빨리 분실신고 해야겠어요. 내 지갑을 찾을 수 있을까요? 돈도 아깝지만 신분증 그거 다시 신청하려면 복잡한데... 한숨이 절로 나오네요.